정치∙사회 미인대회는 이제 그만 사회∙종교 편집부 2023-10-2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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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일러스트레이션 (Magdalene)
*본 내용의 원문은 인도네시아판 온라인 잡지 Magdalene에 실렸으며 자카르타포스트가 21일자에 게재했습니다.
몇 개월 전 미스 유니버스 인도네시아(이하 MUID) 미인대회 결선에 올랐던 여섯 명의 후보들이 자카르타 경찰서에 성희롱 사건을 신고했다.
보도에 따르면 MUID 주최 측이 후보들의 동의나 사전통지 없이 임시 가설된 파티션 뒤에서 후보들에게 옷을 벗고 ‘신체검사’를 받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섯 명의 참가자가 상반신 노출 사진이 찍혔다.
참가자 중 한 명이었던 드삭 뿌뚜 라띠 위디아르따는 주최측이 엉덩이를 드러내라는 등 부적절한 포즈를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의 나신을 훔쳐보려 한다는 생각에 놀라 겁을 먹었다.
또 다른 참가자인 쁘리실라 즐리따는 신체검사 과정에서 공포와 굴욕감을 느꼈다. 주최측의 요구에 따라 상의를 벗은 후 부끄러워 가슴을 가리자 주최 측이 이를 지적하며 훈계를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들은 내가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며 혼을 냈다. 기분이 나빴지만 신체검사가 미인대회의 공식 절차일 거란 생각에 거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MUID 프랜차이즈 라이선스를 가진 까뻴라 스와스띠까 까르야(PT Capella Swastika Karya) 측 변호인 멜리사 앙그라이니는 문제의 신체검사가 미인대회에서 ‘부적격성’으로 간주되는흉터, 셀룰라이트, 문신 등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며 주최측을 옹호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보도되어 사회적 물의를 빚자 미국의 미스 유니버스 본부는 까뻴라 스와스띠까까르야 및 국가별 책임자인 뽀삐 까뻴라(Poppy Capella)와의 계약을 즉시 종료시켜 해당 사건의 불똥이 튀는 것을 차단했다.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 본부 측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번에 MUID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이 미스 유니버스 프랜차이즈 가이드북에 명시된 해당 브랜드의 표준, 윤리강령, 기대치에 모두 부합하지 않는다는 포스팅을 올려 MUID 사태를 앞장서 비난했다.
성적 대상화의 온상
미국 하와이 대학교 여성 젠더와 섹슈얼리티 학부 L. 아유 사라스와띠 교수는 이번 미인대회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미인대회란 본질적으로 여성 대상화에 의존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대상화란 여성을 사고 파는 대상, 즉 상품으로 인식하고 취급하는 행위나 마음가짐을 뜻한다.
모든 미인대회는 근본적으로 여성이란 구경거리, 평가할 대상, 성적 상대방이라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현대의 모든 미인대회는 그런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여성들을 줄 세워 외모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상황에서 여성의 인격은 자연스럽게 말살되고 단지 수치로 표시된 상품으로 전락하여 결과적으로 폭력, 특히 성폭력에 더욱 취약해진다. 미인대회 이면에 숨은 고질적인 성적 대상화 문제는 사실 이제 와서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일설에 따르면 첫 미인대회는 여성이 등장하는 쇼와 서커스를 처음 만든 쇼맨이자 사업가이며 한때 시장도 역임했던 바넘(PT Barnum )이 1854년 도입했다고 한다. 바넘은 영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에서 휴 잭맨 배우가 연기했던 인물이다.
바넘은 미인대회를 열어 여성들을 무대 위에 도열시키고 관객들이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점수를 매겨 우승자를 가리게 했다. 사실 이 방식은 현대의 미인대회에서도 여전히 근간을 이루는 심사 방식이다. 그후 미인대회는 각종 카니발과 여성들의 외모가 매력 포인트가 된 노동자 계층의 오락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바넘은 사진 콘테스트 방식의 미인대회도 고안해 냈는데 무대위에서의 미인대회와 달리 사진 콘테스트는 여성들이 스스로 찍어 보낸 자기 사진들을 토대로 점수를 매겼다.이러한 미인대회는 노동계층을 넘어 곧 상류층으로도 번져 나갔고 신문사들이 자사 신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인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로부터 60여년 후 비로소 현대적 의미의 미인대회가 시작됐다. 그 첫 번째는 아틀래틱 시티에서 여름 관광객들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1921년에 ‘아틀랜틱 시티 도시 대항 미인대회(Atlantic City Inter-City Beauty Pageant)를 연 것인데 이는 이후 미스 아메리카 미인대회의 전신이 된다.
이 대회 승자는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관객들의 박수로 결정되었는데 관객 박수가 결선 점수의 50%를 차지했다.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여성이 승리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대회에 참가한 여성들은 관객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누구보다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고 다음날 ‘배서의 야외극(Bather's Revue)’이라 불리는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 퍼레이드에는 200여명의 여성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길거리를 행진했다.
미인대회는 그렇게 인기를 얻으면서 더욱 상업화되었고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다가 1951년 미스 월드 대회가 시작되었고 1952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막을 올렸다.
개념의 문제
2019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조지비니가 우승했다.
수상 연설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진 여성의 짙은 피부색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지던 성장기 시절을 이야기하며 그녀의 이번 미스 유니버스 우승이 앞으로 그녀와 같은 여성들이 다른 이들 못지않게 똑같이 아름다우며 국제무대에서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연설이었고 그 사건을 전환점으로 세계미인대회는 일제히 유색인종들을 끌어안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다 된 것일까? 대답은 No다.
아유 교수는 조지비니의 메시지가 아무리 진보적으로 들린다 해도 미인대회란 본질적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이란 토대 위에 세워진 화려한 첨탑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대중의 개념과 사상이 굴레가 되어 여성들의 목을 옥죈다는 것이다.
미인대회는 아름다움을 여성의 자산으로 평가한다. 그런 개념을 충족시키는 미의 기준, 즉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반드시 밝은 톤의 피부와 날씬한 몸매, 셀룰라이트도 주름도 한 점 없이 어려 보이는 외모 등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는 황금율은 어쩌면 여성 대중에 대한 폭력이다.
그래서 미인대회에는 그런 조건을 가진 비슷비슷한 체형과 연령의 여성들이 나오므로 사실상 신체적 변별력이 거의 없어 똑같은 마네킹에 각각 다른 옷을 입혀 놓은 것과 다름 아니다. 거기에 최근 트랜드에 따라 밝은 톤의 피부를 가진 흑인 여성이라면 우승 가능성이 높아질 뿐이라고 아유 교수가 꼬집었다.
그래서 신체와 선천적 외모가 이상적인 미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이를 ‘추악한 것’으로 인식해 감추거나 전체적으로 갈아엎어 개선하려 한다. 그래서 이상적 미의 표준에 근접하기 위한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이 자연스럽게 창궐하고 사회는 이를 허용하다 못해 대놓고 권장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여성들은 그러한 표준, 대개의 경우 거의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며 시간과 돈, 에너지와 감정을 한없이 쏟아 붓는다.
문제는 여성들의 이상적 아름다움이 비단 외모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태도와 매너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미인대회에 참여한 여성들은 우아한 발걸음으로 무대를 걸어야 하며 우호적인 태도로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하고 어떤 일이 벌어져도 강철 같은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무대 위의 여성들은 외모로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매너와 태도에도 점수가 매겨져 그 결과에 따라 찬사를 받기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내포한 메시지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위해서는 ‘올바른 처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여성은 자신이 연령과 몸무게, 피부색, 젊음 등 여러 요소들로 인해 영원히 차별당할 수밖에 없다.
미의 기준을 충족시킨 여성들이 미인대회에 나오면 나올수록 이러한 차별문제는 더욱 심화될 뿐이다. 그러니 그들 중 흑인이나 남아공 여성을 우승자로 뽑는 정도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아유 교수는 “미인대회는 모두 폐지되어야 하고 현재 일반화되어버린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도 모두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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