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아무도 걷고 싶어 하지 않는 도시’ 자카르타에서 도보 여행 문화∙스포츠 편집부 2024-04-2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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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자카르타의 꼬따 자카르타 기차역(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Aditya)
몇 년 전 뉴욕타임즈에서 ‘아무도 걸어 다니기 원치 않는 도시’라고 묘사했던 자카르타를 도보로 여행하는 것은 그동안 그리 추천할 만한 주말 여가 활동이 아니었다. 특히 우범지대를 혼자, 특히 여성 혼자 다니는 것은 오히려 말려야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라메라메 자카르타(Rame Rame Jakarta), 잘란 금비라(Jalan Gembira), 강강안(Gang.Gang.An) 같은 단체들이 도시의 이면들을 소개하면서 자카르타 도보여행이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들은 도심 도보여행팀을 구성해 단체로 도시 빌딩숲 뒤편에 숨겨진 도보여행지를 안내해 주곤 한다.
한편 보행자 연대(Koalisi Pejalan Kaki) 같은 단체들은 보다 나은 도로포장과 대중교통을 장려함으로써 인도네시아의 도심에서 좀 더 걸어 다니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번잡한 중앙통을 살짝 벗어나면 그 뒤편엔 대를 이어 운영하는 음식점들, 작은 공원들, 오래된 역사적 랜드마크 등이 펼쳐지며 색다른 풍경과 소음을 만들어 낸다.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돌아다니기 좋은 곳들을 자카르타포스트가 소개했다.
1. 중부 자카르타의 빠사르 바루(Pasar Baru)
빠사르 바루가 처음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820년의 일로 한때는 쇼핑을 위한 고급스러운 가게들이 즐비한 지역이었다. 지금도 화교와 인도계 커뮤니티가 지배하고 있으며 어떤 도보 여행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주말 목적지이기도 하다.
이곳엔 자카르타에서 가장 오래된 끌렌뗑(Klenteng– 중국식 사원)인 신떽비오(Sin Tek Bio)가 있다. 신떽비오는 1698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래의 고풍스러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곳의 번잡한 도로와 시장을 지나 삔뚜아이르 거리(Jl. Pintu Air Raya)에 들어서면 마치 민간 주택단지처럼 보이는 곳에 또꼬꼬삐 마루(Toko Kopi Maru)라는 카페가 나타난다. 그곳은 인도네시아 최초의 음반사 레이블을 창립한 띠오떽 홍(Tio Tek Hong)의 집을 개조한 곳이다.
그 건너편에는 이스따나 몰(Istana Mall)이 있는데 대체로 비어 있지만 일단의 바틱 가게들과 공기총, 호신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아직도 영업 중이다. 몰의 옥상 주차장까지 올라가면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멋진 풍광이 펼쳐지는데 이스띠끄랄 사원과 국가기념탑(모나스)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일단의 사람들이 2023년 5월 13일 라메라메 자카르타가 조직한 도보
빠사르바루의 중앙도로를 벗어난 골목마다 신선한 과일상자들이 쌓여 있고 향내음도 떠돌며 햇빛이 닿는 곳에는 고양이들이 쉬고 있어 어딘가 평화로운 느낌도 물씬 풍긴다.
그렇게 빠사르바루 도보여행을 마칠 즈음 빠사르자야 마켓(Pasar Jaya Market)의 에어컨 빵빵한 식당에 들어가 앉아 한 잔의 시원한 오렌지 주스로 지친 몸을 달래는 낭만도 즐길 수 있다.
2. 중부 자카르타의 찌끼니(Cikini)에서 곤당디아(Gondangdia)까지
한 해의 어떤 시점엔 부겐빌레아 꽃이 만개한 곤당디아 거리를 걸을 수 있는데 아이들이 농구하는 모습, 남자들이 고가철로 아래에서 작은 채소밭을 가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로 이웃하고 있는 곤당디아와 찌끼니는 일찍이 듀오 앙그렉(Duo Anggrek)의 노래 “찌끼니 곤당디아’로 잘 알려져 있다. 찌끼니에서 곤당디아를 향해 나아가면 유명한 이스마일 마르주끼 공원(Taman Ismail Marzuki)을 지나 메트로폴 XXI 영화관에 이르는 길목에 남은 예술적 역사적 흔적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찌끼니끄라맛 거리(Jl. Cikini Kramat)를 벗어나면 옛날 아편무역 당시의 오래된 철로가 버려져 있고 쁘강사한바랏 거리(Jl. Pegangsaan Barat)에는 마이클 잭슨으로 분장한 사람도 있다. 붐비는 이 거리에서 곁길 골목으로 빠져나오면 고전적 분위기의 주택과 식당들, 로(Roh) 같은 작은 아트 갤러리들도 만날 수 있다.
▲중부 자카르타의 곤당디아 사거리 (사진= Harriet Crisp 제공)
3. 동부 자카르타 자띠느가라(Jatinegara)
자띠느가라는 사실 우범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어 도보여행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이 지역은 광대한 시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꽃병에서 비둘기까지 온갖 종류의 상품들이 거래된다.
토끼기차라는 뜻의 끄레따끌린찌(keretakelinci)가 엄마와 아이들을 태우고 거리를 달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요란한 당둣 음악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오감을 풍부하게 충족시키는 이곳은 사실 도보여행에도 더 없이 좋은 장소다.
자띠느가라 지역은 예전 식민지시대에는 미스터 코넬리스(Meester Cornelis)라 불리며 주로 아랍인 커뮤니티와 기독교인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교회들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요즘 자띠느가라는 젊은 세대들이 많이 다니는 예술운동의 거리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일주일 내내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를 여는 허름한 창작 허브이자 레스토랑, 동시에 상점인 콩시8(Kongsi8)을 찾아 모여든다.
▲2022년 9월 동부 자카르타 자띠느가라의 꽁시에 모여든 손님들(사진= Harriet Crisp제공)
4. 서부 자카르타의 글로독(Glodok)
자카르타의 차이나타운은 세계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으로 전통적인 루꼬들, 젱끼(jengki, 식민지 이후 시대의 인도네시아 건축양식) 건물들과 현대식 건물들이 뒤섞인 골목들이 미로를 이루고 있다.
그중 글로독(Glodok) 지역은 다양한 음식과 전자제품 매장들로 유명하지만 자카르타 역사의 여러 시대가 중첩되어 있어 도보여행에 최적지이기도 하다.
시간여행을 하듯 자카르타가 바타비아라고 불리기 이전 시대의 해안 정착지부터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이던 1700년대에 건설된 중국 마을(Kampuing Cina)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꼬따 열차역(Stasiun Kota)부터 글로독의 전설적인 카페인 빤쪼란 티하우스(Pantjoran tea house)를 지나 새로운 MRT 전철역으로 이어지는 지붕이 있는 통로다.
이 조용한 상가를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벽화, 낡은 건물을 뚫고 나온 나무들, 정체모를 주술적 반지와 캐리커처를 파는 사람들, 다양한 동물들과 연못이 있는 작은 정원도 만나게 된다. 이곳을 걸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들은 때론 말로 다 설명이 안 될 때도 있다.
5. 남부 자카르타의 뜨븟(Tebet)
새롭게 단장된 뜨븟 에코파크(Tebet Eco Park)는 싱가포르 디자인 위원회(SingaporeDesign Council)에서 2023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최근 개발된 이곳은 우선 광대한 면적을 가졌고 뜨븟 역과 에코파크 버스 정류장이 있는 가똣수브로또 거리(Jl. Gatot Subroto)와 뜨븟 역까지 이어지는 도로에 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오아시스 같은 그늘을 제공한다.
뜨븟 에코파크는 몇몇 조깅족들만 오가는 이른 저녁이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그 시간쯤이면 공원의 상징물과 같은 다리 위로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나무들의 꼭대기를 물들인다.
퇴근시간의 번잡함이 수그러드는 시각에 뜨븟 에코파크를 나와 서부 뜨븟의 주택가 좁은 골목을 걸으며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들과 낙엽이 잔뜩 쌓인 광장들을 지나게 된다.
녹지들마다 배드민턴 코트나 아이들을 위한 정글짐(jungle gym) 들이 설치되어 있어 도보 여행자들에게는 잠깐 숨돌릴 쉼터를 제공한다.
▲남부 자카르타 뜨븟 지역 골목에 내걸린 색색가지 빨래들(사진= Harriet Crisp 제공)
골목들을 지나며 동네 고양이들을 쓰다듬어주고 모퉁이마다 간헐적으로 설치된 자경단 초소에서 체스를 두는 남자들과 눈인사를 하다 보면 서부 뜨븟 시장에 도달하게 된다. 거기서 출출해진 배를 채울 수 있는데 그곳 가게의 쁘쯜렐레(pecel lele, 튀긴 메기)는 양이 많기로 유명하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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