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영화 <VINA: 이레가 지나기 전>이 보여준 ‘크라임테인먼트’ 문화∙스포츠 편집부 2024-05-3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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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 이레가 지나기 전> (INSTAGRAM @deecompany_official)
영화 <비나: 이레가 지나기 전(Vina: Sebelum 7 Hari)>은 2016년 실제로 발생한 비나 데위 아르시따와 벌어진 강간 살인사건을 다뤘다. 같은 사건에서 비나의 연인 무하마드 리즈끼(에끼)도 함께 살해당했다. 두 사람은 피살되던 당시 16세 고등학생이었다.
이 영화는 지난 5월 22일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과 대중의 폭넓은 관심을 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이 영화가 실상을 얼마나 반영했느냐, 비나 가족의 동의를 받았느냐 등 다양한 논란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당시 엽기적이었던 해당 사건을 대중들에게 상기시키고 미진한 수사를 벌여 일부 범인들을 놓치고도 8년간 손 놓고 있던 경찰을 곤란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당시 검거를 피한 세 명 중 한 명인 뻬기 뻬롱(Pegi Perong)을 이번에 체포하는 성과를 거두도록 등 떠밀었다.
크라임테인먼트
<비나: 이레가 지나기 전>은 크라임테인먼트(crimetainment)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크라임테인먼트란 범죄를 뜻하는 크라임(Crime)과 연예 오락을 뜻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조합어다. 실제 범죄를 소재로 연예오락 작품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새삼스러운 장르, 흔치 않은 시도가 아니다. 실제 범죄 사건을 극적으로 편집, 조명하고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러한 장르는 영화, TV 시리즈, 다큐멘터리의 형태로 흔히 만날 수 있다. 크라임테인먼트는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시청자의 호기심, 분노, 공감 등이 결합되어 그 자체의 독특한 흡입력을 가진다.
크라임테인먼트는 법집행에 있어서도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 <비나: 이레가 지나기 전>같은 영화는 미해결 범죄사건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법집행기관이 그간 사건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해도 급변한 상황과 여론에 떠밀려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효과를 보인다.
특히 이 영화가 그랬다. 당시 살인사건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켜 그때 붙잡히지 않았던 세 명에 대한 수사와 검거를 촉구했고 결국 도망자 중 한 명을 검거하는 쾌거에 기여한 측면이 크다.
반면 범죄에 희생된 개인의 비극이 상업적 목적에 이용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비나~>에서 폭력과 강간 장면을 재현한 것이 제작사 측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처절한 고통을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피해자 가족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문화적 연구의 측면
이 영화가 사회적으로 어떤 인식을 형성하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문화적 측면의 접근과 연구 역시 필요하다. 꼼빠스닷컴은 그간의 상황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어 몇 가지 측면들을 조명해 보았다.
문화적으로 그 첫 번째 측면은 정체성, 권력구조, 이념, 표현방식의 문제다. 이 영화는 그 스토리 전개를 통해 관객들이 해당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 그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정체성이 결정되고 관련 인식이 어떤 식으로 전파될 것인지 역시 결정해 버렸다. 영화제작자가 지나치게 사건의 성격 규정에 개입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대중은 영화가 보여준 인식과 방향에 대체로 동의하고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한 대중의 반응이 관객수라는 흥행성과에 투영됐다.
두 번째는 개인이나 집단의 고통이 대중이 소비하는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 즉 비극의 상품화 문제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비나 데위 아르시따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대형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해당 스토리를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포장했다.
이런 식의 상품화는 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 가족들의 입장, 누군가의 고통을 상품화하는 것의 윤리적 측면을 고려했는지 반문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성공이 비나의 유가족들에겐 어떤 식으로 다가올 것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 잡히지 않던 범인 한 명이 잡혔으니 마냥 기뻐해야만 할 것인가?
세 번째는 미디어 파워와 영향력이다. 미디어는 여론을 형성하고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비나: 이레가 지나기 전>으로 인해 8년간 잡히지 않던 범인들 중 한 명이 영화의 개봉 한 달 만에 검거되었다는 점에서 ‘No Viral No Justice’라는 최근의 신조어가 다시 힘을 얻는다.
‘사회적으로 크게 알려져 대중의 분노를 일으켜 압도적 여론이 형성되어야만 비로소 정의가 구현된다’는 의미다. 떠들고 소란스럽게 만들어야만 게으르고 무감각한 당국이 귀찮지만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뭔가 도움될만한 행동을 한다는 인식이 이 개념의 저변을 이룬다.
그렇다면 제작사가 이 영화를 만들어 피해자 가족들에게 다시 고통을 안기고 피해자의 비극을 돈벌이에 사용했다는 비난과 이 영화로 인해 마침내 효과적인 법 집행이 이루어지고 정의가 구현된다는 범죄억제의 순기능, 그 어느 쪽으로 저울추가 기우는 것일까?
이 영화는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의 문제, 성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권리보호, 영화가 사회적 인식과 가치관을 어떻게 바꾸고 사회적 규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교육적 측면 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 사회 변화를 장려하여 범죄를 억제 또는 해결을 촉구한다는 긍정적 측면은 분명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상업적 이익을 위해 개인적인 비극을 돈벌이에 앞세우는 것을 최소화하고, 영화를 제작한 측이 영화 속 표현에 세심한 배려와 최대한의 책임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이번 <비나: 이레가 지나기 전>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새삼 극명히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영화 개봉 후 많은 논란과 화제 속에서 비나 피살사건이 보여준 많은 문제들에 대해 일정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가장 긍정적인 측면이라 평가된다.[꼼빠스닷컴/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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