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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인도네시아 프라보워의 시대, 연약한 민주주의에 드리운 군의 그림자 정치 편집부 2025-01-3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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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된 당시 쁘라보워 수비안또 (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Aditya)

 

인도네시아 수하르또 정권이 저문 지 30년이 거의 다 된 지금 신임 쁘라보워 수비안또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비전을 시행하기 위해 한때 전능했던 군대에 점점 더 기대는 모습에서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일부 국민들의 불길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전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한 쁘라보워 대통령은 민간인들이 배정되는 공직에 현역 군인들을 배치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어 과거 수하르또 시대의 드위풍시(Dwi fungsi)라 부르던 군의 이중 기능이 되살아 나려는 전조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 군의 드위풍시는 결과적으로 국가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때려잡으며 민간인들의 삶을 짓누른 바 있다.

 

지난 해 대선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 쁘라보워 대통령은 취임 3개월 사이에 여러 민간영역에서 군의 영향력을 급속히 증가시켰다. 심지어 그의 핵심정책 중 하나인 무상급식에서도 군은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1998년 경제위기와 민중 폭동 속에서 수하르또가 하야한 후 군의 이중기능이 다시 부활하지 못하도록 걸어놓은 안전장치들을 해체하여 쁘라보워가 더 많은 현역 군 장성들을 정부 요직에 등용하는 것을 돕기 위한 입법을 쁘라보워와 손잡은 국회 내 세력들이 준비 중이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작년 선거에서 쁘라보워에게 압도적 승리를 안겨준 유권자들 대부분을 군대를 하수인처럼 부리며 철권을 휘둘렀던 수하르또의 신질서 정권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젊은 층이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혹하기 짝이 없었던 무자비한 독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이 땅에 다시 철권통치시대를 소환하려 하는 형국이다.

 

쁘라보워의 장인이기도 한 수하르또는 1966년 아직 소장파 군 장성이었던 시절 초대 대통령인 수까르노를 밀어내고 정권을 빼앗았다. 쁘라보워는 저명한 경제학자 수미뜨로 조요하디꾸수모의 아들로 장인인 수하르또가 32년간 독재를 하던 정권에서 특전사령관까지 역임하다가 인권침해 혐의로 군복을 벗었다.

 

하지만 당시 인권침해 혐의는 아직까지도 증명되거나 소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의 인권침해 혐의를 부정하는 열성 지지자들은 중요한 프로젝트에 군을 끌어들이는 것이 효율성 제고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군사령부 구조를 확대한 쁘라보워의 행보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에 군국주의 수준의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쁘라보워의 전임자인 조코 위도도의 대통령 비서실 차장 출신 야누아르 누그로호는 쁘라보워가 시민들에게 주권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쁘라보워는 오히려 과거 군이 모든 영광을 누렸던 시절을 재현하려 하며 다양한 민간부문의 활동을 군이 관장하도록 허용하면서 그 편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쁘라보워의 대통령실은 정부 프로젝트들에 군 인사들을 대거 포진한 것에 대해 묻는 매체들의 반복적인 질문에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설령 과거 군의 이중기능을 다시 구현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는다 해도 쁘라보워가 정권 초창기부터 군에 너무 의존하는 모습은 수하르또 하야 후 그간 인도네시아 사회가 성취해 온 모든 민주적 개혁성과들을 무위로 돌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분석가이자 인도네시아 전문 뉴스레터 주간 개혁(Reformasi Weekly)의 저자 케빈 오루크(Kevin O'Rourke)는 쁘라보워가 과거 자신의 장인 수하르또 시절의 정책들을 되살리려는 조짐들이 다수 엿보이고 있는데 정치무대에서 군의 역할을 과거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것도 그런 신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오루크는 수하르또 정권 당시 군부가 정치는 물론 민간사업부문까지 개입해도 이를 견제하거나 균형을 잡아줄 주체들이 없었는데 쁘라보워도 이제 그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며 군으로 하여금 정부기관의 민주적 감독 기능을 침식하여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했다고 덧붙였다.

 

전투 훈련을 받은 요리사와 농부들

쁘라보워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즈음한 여론조사에서 국정지지율 81%를 보이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을 군에게 넘겨주는 일에 거침이 없었다. 그러한 현상은 매년 280억 달러( 40조 원)라는 거액이 투하되는 그의 대표적인 주력 프로젝트 학교 무상급식 프로그램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할림 쁘르다나꾸수마 공군기지에서 근무하는 사뜨리야 다르마 위자야 대령은 항공기 정비가 원래 그의 전문 분야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이후 그는 매일 자카르타의 수천 명 어린이들에게 공급할 음식 조리를 위해 한동안 스토브와 냉장고, 프라이팬 등을 구입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할림 기지에서 과거 군인들을 집합시켜 임무 배정을 하던 공간이 지금은 새로 확장한 주방시설로 잔뜩 채워졌다.


군은 국가영양청을 도와 무상급식 프로그램 시행 첫 날 가동된 190개의 주방 중 100개를 운영해 57만 명의 학생들에게 조리한 음식을 공급했다.

 

육군참모총장 마룰리 시만준딱 대장은 농업, 어업, 축산 분야에 배정할 100개의 특별 영토개발부대 창설 계획이 현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쁘라보워 대통령은 국방장관 시절부터 군이 관할하는 여러 분야의 프로젝트들을 크게 확장시켰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이른바 푸드에스테이트라 부르는 식량안보를 위한 농경지를 당초 6만 헥타르에서 300만 헥타르로 50배 확장하기 위해 군을 동원해 정글과 임야를 대대적으로 개간한 것이다.

 

그는 무상급식 프로젝트를 위해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광대한 토지에 벼와 옥수수를 심고 이를 군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관리하도록 만드는 등 군을 수족으로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빈곤한 격오지의 배수와 관개시설을 위해 배관 설치작업을 하는 군 주도의 세 번째 소규모 토목공사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고 선언했다.

 

군을 중용하는 쁘라보워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현 군 지도부는 환영 일색의 반응이다. 시만준딱 육군참모총장은 대형 프로젝트를 운영하려면 강력한 지휘계통이 확립되어 있는 군을 동원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군이 민간부문에 크게 진출하면서 수하르또의 신질서 시대로 돌아갈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군의 압제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군인들이 지배하는 내각?

현역 군 장교들을 행정부 고위직에 기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은 쁘라보워의 동맹 정당들이 국회 의석의 74%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정치지형 상 곧 통과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수하르또 시대가 끝난 지 수십 년 만에 현역 장성들이 장관으로 기용되는 상황을 다시 맞게 된다.

 

해당 법안은 이미 국회에 상정되었으며 몇 달 안에 심의를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쁘라보워 대통령의 군 사랑은 각별하다. 그가 외무장관으로 기용한 수기오노 조차도 육군 특수부대 출신이다.

 

쁘라보워의 그린드라당 소속 국회부의장인 수프미 다스코 아흐맛은 대통령이 정부 내 어느 곳에나 현역 군인을 임명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적 프로그램들을 강력히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기강 있고 헌신적이며 책임감과 규율을 갖춘 훈련된 사람(군인)들이 요직에 기용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는 군인이 민간인보다 우수하다는 쁘라보워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

하지만 쁘라보워가 군대를 지원하려는 본능적 경향에 대해 군 출신들조차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하르또 정권이 무너진 후 군 개혁을 이끈 여러 장성들 중 한 명인 아구스 위조요 예비역 중장은 쁘라보워에게 군 장성들을 정부 내 어느 요직에든 임명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주는 순간 국가 시스템이 망가지기 시작해 결과적으로 민간 기관들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분석가 야누아르는 쁘라보워가 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와 권력의 과도한 중앙집중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쁘라보워가 국회 의석의 대부분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군이 행정부 요직을 차지한다면 쁘라보워는 이미 수하르또와 다를 바 없는 위상에 오르는 것이며 군의 드위풍시(이중기능)도 사실상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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