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자연의 섭리에 대항하는 인간의 오만함: 일본은 왜 포경 산업에 집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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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1-09-24 08:45 조회 8,187 댓글 0본문
자연의 섭리에 대항하는 인간의 오만함:
일본은 왜 포경 산업에 집착하는가?
조인정
드넓은 푸른 바다를 가르는 거대한 고래를 난 항상 두려워했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읽은 허먼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1851)이 아마 그 발단이었을 것이다. 흰 고래 모비딕은 자신에게 작살을 던지는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선원들을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상대하고 그들을 깊은 바닷속으로 수장시켰다. 그 살벌한 모습은 나를 잔뜩 겁에 질리게 했다. 그런데 어쩌면 고래에 대한 나의 막연한 두려움이 오히려 내게 있어 ‘일본의 포경산업’란 주제를 흥미롭게 바라보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 대학시절에 처음 접한 이 주제는 여전히 강렬한 인상으로 내 뇌리에 박혀있으니 말이다.
일본의 포경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선
2019년 12월 5일, 일본 중의원은 포경선박과 선원 확보, 고래 포획 및 해체 기술 보급, 학교 급식에 고래고기 사용 촉진 등이 포함된 ‘고래류의 지속적인 이용확보에 관한 법률’이라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같은 해 7월, 한국 언론과 외신들은 ‘일본의 31년 만의 상업적 포경 재개’에 대해 보도했다. 그리고 일본의 포경산업은 다시금 국제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사실 일본은 이미 2018년 12월 26일 국제포경위원회(IWC: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에 탈퇴 의사를 표명했고, 2019년 6월 30일 부로 국제포경위원회에서 공식 탈퇴했다. 2021년 현재 88개 회원국을 보유한 국제포경위원회는 ‘고래의 보존관리 및 포경산업의 질서 있는 발전’을 위해 1946년에 설립되었는데, 지나친 포경으로 위협받는 해양생태계와 고래 보호를 위해 1986년부터는 국제포경규제조약에 기반하여 상업목적의 포경을 금지해왔다.
이러한 조약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본은 ‘과학적 연구나 조사를 위한 포경은 제한하지 않는다’ 는 국제포경조약(ICRW: 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Regulation of Whaling) 제8조의 허점을 이용하여, ‘연구조사’를 명분으로 앞세워 매년 남극해의 밍크고래 300마리 등을 포획해 왔다. 그러나 연구목적으로 포획된이 많은 고래들은 공공연하게 일본 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어 꾸준히 음식점과 가정의 식탁에 올랐다.
▲1951년부터 2019년까지 국제포경위원회의 회원국이었던 일본.
위 지도에서 일본은 탈퇴국을 의미하는 초록색으로 표시되어 있다.(출처:IWC, 2021)
문제는 ‘연구조사’를 앞세우며 장기간에 걸쳐 진행해 온 일본의 연구들이 사실 포경을 정당화 하기는 어려운 연구들이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남극해에 사는 고래수’를 조사의 목적으로 한 일본의 한 연구에서는 약 6,700마리의 고래가 목숨을 잃었다.이 외에도 ‘어류를 섭취하는 특정고래종’, ‘특정고래종의 최대 몸집’ 등에 대한 연구들로 인해 많은 수의 고래가 희생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들은 수중에서 고래의 점액, 배설물, 탈피된 피부등 만을 가지고도 첨단과학 기술력을 활용한 DNA와 호르몬 분석으로 충분히 심층적 분석이 가능했다. 이러한 연유로 2010년 호주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본의 포경 행위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3월 재판소는 “일본이 남극해에서 이행했던 ‘과학적 조사를 명분으로 한 포경행위’가 야기한 고래 살생의 수준은 치명적이며, ‘과학적 조사’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하며 일본의 포경을 국제 위법 행위로 판정했다.
태평양 섬나라들의 표를 얻기 위한 노력
국제포경위원회의 회원국으로 있었던 지난 60여년 간, 일본은 상업용 포경금지 규정을 해제하기 위한 전략적 외교책을 펼쳐왔다. 일본의 외교책은 ‘체크북 디플로머시(checkbook diplomacy)’로, 수표장(체크북)을 들고 다니며 다른 국가에 경제성장과 투자를 지원하고 그 대가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꾀하는 이른바 ‘수표외교’ 전략이었다.
특히 일본 수표외교의 타깃은 국가 경제력이 낮은 태평양 섬나라들이었다. 일본은 이 도서국가들이 국제포경위원회의 회원국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막대한 재정 자원을 제공함과 동시에, 양식장·항구·학교 건설 등 국가 성장을 위한 개발보조금까지 지원하며 일본 포경활동 지지를 위한 표를 매수했다. 이로써 카리브 해의 그레나다, 앤티가 바부다,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등 많은 도서국가들이 일본 포경활동 지지에 귀중한 한 표를 던졌다.
한 예로, 90년대 초 일본은 도미니카연방이 국제포경위원회 재가입에 필요했던 막대한 누적회원비를 대신 지불해 주었고 연안어장 발전계획을 위한 조성자금마저 지원했다. 결국 도미니카 연방의 수도 로조(Roseau)에는 어업 활성화를 위한 항구가 축조되었고 그 주변에는 시장 또한 형성되었다. 일본의 엄청난 투자공세에 도미니카 연방은 일본 포경에 우호적인 한 표를 행사했다.
그러나 2000년, 도미니카연방의 환경계획농어업부장관이었던 에서튼 마틴(Atherton Martin)은 결국 투표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장관직 사임으로 대신하며 물러났다. 그는 작은 섬나라로서 저항하기 힘든 몇 백만 달러라는 유혹에 일본의 제안을 수용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도미니카 연방의 발전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근시안적인 혜택임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더욱이 일본은 사실상 도미니카 연방을 포함한 카리브해의 다른 도서국가들의 환경보존에 관심이 없으며, 여전히 카리브해에 핵 폐기물을 방류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그는 당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고위층이 국제포경위원회 회의에 앞서 도미니카 연방을 찾았고, 만약 도미니카 연방이 ‘어업보호구역 형성’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을 경우 일본은 새로운 어업단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철수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말했는데, 이로써 일본 수표외교의 정황은 완전히 국제사회에 폭로되었다.
포경을 향한 일본의 계속되는 집착의 이유
1. 포경은 일본의 국가 문화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따가운 국제적 반일감정을 자처하고도 여전히 고래잡이에 집착하는 것일까? 우선 일본은 포경이 ‘전통 식문화 고수’를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일본포경협회(日本捕鯨協会)는 서구가 동물권을 앞세워 반대하는 일본의 포경행위가 일본의 전통문화에 입각한 ‘불가결한 문화’라고 반박한다. 일본은 “우리에게 포경을 멈추라 하는 것은, 호주인들에게 미트파이를, 미국인들에게 햄버거를, 영국인들에게 피시앤칩스없이 살아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포경이 곧 일본의 국가문화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일본의 역사에서 포경은 일본의 신석기에 해당하는 조몬시대(縄文時代:기원전1만4500년~300년)의 기원전7000/8000년~3000년 경에 처음 행해졌다고 추정된다. 특히 당시 홋카이도의 쿠시로(釧路)와 사루(沙流)에 거주했던 아이누족의 전통 노래가사를 통해 고래가 그들의 주요 식량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누족은 고래의 살, 지방, 내장, 혈, 골수를 식량으로 섭취했고, 향유를 그들의 주 연료 재료로 사용하여 홋카이도의 강추위에 견뎌낼 수 있었다.
그 후 나라시대(710~794년)에는 궁정이 불교를 국교로 숭상하고 그 교리에 따라 ‘네 발 달린 동물을 살생하고 식량으로 소비하는 것’을 금했다. 어류로 여겨졌던 고래고기는 당시 사람들에게 필수 단백질 원천으로 소비되었다. 이어 아즈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 1573~1603년)에 고래고기는 황제를 위한 특별한 음식으로 쇼군에 의해 바쳐졌다.
그러나 고래고기가 일본 전역에 걸쳐 국가적 식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은 에도시대(江戸時代:1603~1868)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에도시대에 이르러 그물을 사용한 포경이 이루어졌고 고래고기 생산량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사람들은 고래고기를 생선회로, 소금에 절여서, 국으로 다양하게 요리해 먹었고, 복통약으로 섭취하기도 했다. 고래는 에도 사회의 중요한 식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에도시대 대표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제국 명소 백경:히젠 오도 고래잡이
(諸国名所百景 肥前五島鯨漁の図)>, 1859 (출처:Tokyo Museum Collection)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을 접하면서 살짝 주춤했던 포경산업은 전쟁 후 심각한 식량부족을 겪으며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육류에 비해 저렴했던 고래고기가 단백질 섭취를 위한 대체 식품으로 식탁에 오르고, 학교에 보급되며 고래고기 섭취는 다시금 활기를 찾게 되었다. 물론 음식 기호가 바뀌게 됨에 따라 현재는 일본에서 고래고기 섭취가 전체 육류 소비량의 0.1%에 불과할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다. 결국 적은 소비량으로 현재 3700여톤의 고래고기가 냉동창고에 축적되어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70%의 일본 국민들이 포경을 찬성하고 있으며 이를 국가적 위상이라 자부하고 있다. 한편 ‘고래류의 지속적인 이용 확보에 관한 법률’에서 강조된 것처럼, 일본 정치인들은 문부과학성과 협의하여 고래고기로 만든 음식을 제공할 ‘전국학교 급식 주간’(1월 24일~30일)을 만들고 있다. 또한 고래고기를 시장가격의 1/2~1/3 가격으로 전국 초중고교의 점심으로 보급하는 등 수요 촉진 전략 찾기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나가토시(長門市)의 유치원 및 초중학교에서 제공된 고래튀김 요리가 포함된 급식(2019년 2월 1일)
(출처:나가토시 웹사이트)
2. 포경은 해양생태계 균형을 위해 필수적이다?
일본포경협회의 웹페이지에는 “You’re Still Against Eating Whale?(당신은 여전히 고래를 먹는 것을 반대하는가?)”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시되어 있다. 동영상에서 일본포경협회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며 포경의 필요성을 시청자들에게 알린다.
첫째, 1986년 상업포경 모라토리엄(행위정지)이 시행되면서 고래 수는 연간 4%씩 증가해왔다. 그리고 이 고래들은 인간들이 소비할 수 있는 해양자원양의 약 3~5배를 소비해왔다. 이러한 추세는 결국 인간들에게 식량고갈 문제를 초래할 거라는 것이다.
둘째, 전세계에서 흰긴수염고래 등 몸집이 큰 고래들은 남획으로 인해 그 개체수가 급감해왔다. 한편, 이로 인해 같은 먹이를 먹지만 빠른 번식력을 자랑하는 작은 고래 종들은 그 수가 급증하여 해양생태계 균형을 위협하고 있다. 즉,생태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작은 고래들 포획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01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전 일본 농림수산성 장관이었던 마사유키 코마츠는 “(상대적으로 작은 종인)밍크고래는 바다의 바퀴벌레다. 개체수가 너무 많고 헤엄이 너무 빠르다”라고 하며, 밍크고래 포획을 통해 해양 생태계의 고래 수 불균형 해결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더 나아가 일본포경협회는 ‘2000마리 정도의 밍크고래는 연간 포획되어도 그 개체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국제포경위원회의 조사를 앞세우며 상업포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영상 “당신은 여전히 고래를 먹는 것을 반대하는가?”에서 등장하는 포경의 필요성 2가지
(출처:일본포경협회,2014)
3. 정치 관료들의 실리를 위함이다?
포경행위가 ‘전통식 문화고수’와 ‘해양생태계 평형유지’를 위함이라는 일본의 외면적 주장을 한 꺼풀 벗겨내면 포경을 집착하는 일본의 또 다른 이유를 알게 된다.
일본의 팽배한 관료주의와 관료들의 실리 추구가 바로 그것이다. 포경 관련 부서를 맡고 있는 관료들은 그들 부서와 인사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또한, 낙하산 인사관행인 ‘아마쿠다리(天下り, ‘하늘에서 국토로 강림’이라는 뜻)’ 존속에도 포경은 반드시 행해져야만 했다. 2019년 통과된 ‘고래류의 지속적인 이용 확보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 일본 수산청은 오랜 기간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거금을 들인 로비활동을 이어왔다.
이러한 노력의 내면에는 수산청 관료들이 퇴직 후 일본고래류연구소(日本鯨類研究所)에 재취직하여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기회 마련이라는 본래 목적이 있었다. 이는고질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일본의 정치구조적 부정부패, 특히 중앙성청 고급관료들의 낙하산 인사관행 실태를 대표하는 실례이기도 하다.
모비 딕의 교훈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되지 않는 흰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흰 고래 모비 딕을 발견한 피쿼드 호는 모비 딕에게 집요하고 맹렬하게 공격하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혹독한 대가를 받는다. 주인공 이스마엘을 제외한 모든 선원은 목숨을 잃고 선박과 함께 바닷속으로 침몰한다.
작가는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고래와 그러한 생명체를 해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한다. 지구상 상업포경의 금지를 외치는 국제사회의 압박에 맞서서 포경을 이어가려는 일본. ‘해양생태계 보존’과 ‘고래보호’ 라는 국제사회의 공동의 목표에 반하여 고래 사냥을 이어가는 일본의 모습에서 모비 딕을 향해 작살을 겨누는 피쿼드 호의 모습이 겹쳐지는 듯해 우려가 앞선다.
다시금 난 생각에 잠겼다. 인간중심주의에 기초한 일본의 주장, 인간들의 생존을 우선시하고 인위적으로 생태계 균형을 조작하려는 그 모습이 곧 피쿼드 호 선원들의 파멸을 이끈 ‘자연의 섭리는 어기는 인간의 오만함’이 아닐까? 더욱이, ‘열강 도서 국가들의 희생’이란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과정이 수반하는 파멸, 즉 인간의 오만함이 낳은 다른 인간들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물론 일본의 ‘전통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연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인간이 형성한 전통도 결국 자연의 공존과 화합의 정신에 준수되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일본 포경은 모비 딕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처럼 마음 한 켠을 무겁게 한다.
<참고문헌>
1)ABC News. “Japanese Whaling Accused of Corruption.” ABC News, June 10, 2010. Accessed September 23, 2021. https://www.abc.net.au/foreign/japanese-whaling-accused-of-corruption/859288.
2)Bredow, Rafaela. “Will Commercial Whaling Soon Become Legal?”SPIEGEL International, June 21, 2010. Accessed September 23, 2021.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world/the-global-battle-over-the-whales-will-commercial-whaling-soon-become-legal-a-701835.html.
3)Japan Whaling Association (2014, August 27). You’re Still Against Eating Whale? [Video].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5-YbCMZGExE
4)류애림(2019.07.18). 왜 일본은 고래잡이에 나섰나.시사저널.Retrieved from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88223
5)황현택(2019.12.11).[특파원리포트] “100년 잡아도 끄떡없어”…日 ‘고래의 날’에 한 일은? KBS News. Retrieved from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340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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