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바틱이 삶이고 생활인 뻐깔롱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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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2-02-07 19:44 조회 14,856 댓글 0본문
바틱이 삶이고 생활인 뻐깔롱안 사람들
사공경/한인니문화연구원장
들어가며…
바틱은 우리 조상의 유물.멀리 외국까지 알려졌지요. 우리 뻐깔롱안(Pekalongan)은 바틱 도시로 유명해요 .먼훗날까지 바틱을 보전하고 발전시켜 조상의 삶을 이어가고 싶어요. 우리는 여러가지 바틱을 만들죠. 즐람쁘랑, 부께딴, 빠쁘링안과 같은 문양이 있어요. 뻐깔롱안 바틱은 우리 조상의 문화적 가보랍니다.
뻐깔롱안 바틱 노래 가사 중 일부이다.이 노래는 주로 바틱 즐람쁘랑 춤(Tari Batik Jlamprang) 공연시에 여자 소리꾼 신덴(sinden)이 자바어로 부른다.
▲자바섬의 바틱 생산지
‘바틱 도시’ 뻐깔롱안 로고의 상징성
바틱의 도시로 알려진 뻐깔롱안(Pekalongan)은 자카르타, 스마랑, 수라바야를 연결하는 자바해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인구 약 30만명의 소도시이다.
뻐깔롱안은 바틱으로 움직이는 도시다. 뻐깔롱안은 시의 로고만 봐도 ‘바틱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된 짠띵(canting, 바틱을 그릴 때 사용하는 도구)과 바틱 문양이 그려져 있다. 말람을 담는 짠띵의 앞부분이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뻐깔롱안 사람들의 열정적인 바틱 사랑(삶)과 활발한 바틱 무역을 말한다. 초록색으로 되어 있는 짠띵의 손잡이는 자라고 있는 벼를,금색 바탕색은 쌀과 풍요를 상징한다.또한 로고에 있는 즐람쁘랑(Jlamprang) 바틱 문양은 바틱 기술을 상징한다고 한다.
▲로고 출처: rkb.pekalongankota.go.id
뻐깔롱안 바틱의 정체성은 다양성
뻐깔롱안은 예전부터 말레이, 부기스, 중국, 아랍, 인도, 유럽, 일본의 상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무역 항구였다. 그 영향으로 뻐깔롱안 바틱은 전체적으로 색상이 화려하고 풍부하다. 문양도 개방적이며 다양하고 대담하다.
내륙지방은 철학적인 깊은 상징이 많은 반면에 해안 바틱은 자연에 바탕을 둔 장식으로 유명하고 밝고 화려한(빨강, 노랑, 핑크, 초록) 매력적인 색상으로 변형. 발전했다. 다른 해안 바틱에 비해 특히 뻐깔롱안 바틱은 네덜란드(유럽)와 중국계 이민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처럼 전통 바틱에 외래 문화가 강하게 반영되어 색채와 바틱 예술의 모티브가 역동적이다. 뻐깔롱안 바틱의 정체성은 다양성이다.
더구나 뻐깔롱안은 엄격한 궁중 문화가 부재하여 다른 도시에 비해 자유분방하여 혁신적인 디자이너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뻐깔롱안은 곧 바틱으로 인식될 정도로 거의 전주민이 바틱을 그릴 줄 알고, 바틱 그리는 전문가, 바틱 디자인 전문가가 많이 있다. 다른 지역 바틱에 비해 색상과 문양의 변형도 더욱 자유로워 계속적으로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에게 모티브를 제공하고 다른 분야 예술가들에게도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다.
뻐깔롱안 바틱을 대표하는 문양
①뻐깔롱안 바틱을 대표하는 문양은 여러가지 있지만,이 중에 즐람쁘랑(jlamprang)문양이 가장 유명하다. 이 문양은 인도와 아랍의 영향을 받았으며, 힌두교의 탄트라 시바를 상징한다. 인도의 빠똘라(patola) 천이 연상되는 즐람쁘랑 문양은 인도의 상인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3~14세기에 인기 있었던 빠똘라 천을 차차 구하기 힘들어지자 16세기 경 빠똘라와 비슷한 천을 만들었는데 그 천이 즐람쁘랑 문양의 바틱이다. 아랍 바틱 제작자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교율에 따라 동물과 식물같은 생물을 그리지 않고 기하학의 문양으로 그린다. 원은 우주를 상징한다.
▲출처: Tribunnewswiki.com / youtube.com/ https://id.m.wikipedia.org/wiki/Tantrisme
②뻐깔롱안 바틱 문양 중 부께딴(buketan)은 꽃다발(bouquet) 문양으로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문양이다.그 외에도 유럽의 꽃과 과일, 꽃다발, 유럽 동화, 레이스, 리본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개인 소장:사공경
③빠쁘링안(papringan) 문양은 대나무 문양이다. 자바어로 pring이 대나무이다. 대나무문양은 뻐깔롱안 고유의 문양은 아니나 자바에서 널리 사용하는 문양이다. 대나무는 인도네시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 바틱은 동양화가 연상된다. 불사조(phoenix)를 보면 중국 영향을받았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그외 중국의 영향을 받은 문양은 국화, 모란꽃, 봉황새가있다.
마게딴(magetan) 고유의 대나무 문양이나 자바에서 흔히 사용하는 문양이다. 불사조(위에 있는 새)를 보면
중국과 자바의 혼합문양이다. 아래에 있는 새는 인도네시아 특히 발리에 많은 찌르레기이다.
④중국 도자기의 색상과 문양이 연상되는 바틱 은찜(Batik Encim)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뻐르아낙깐(peranakan)이 많이 입고 다녔다. 또 그들은 유럽풍의 감성에도 젖어 들었다. 바틱 은찜은 디자인이 단순하며, 천 한 장에 몇개의 꽃다발이 배치되어 있다. 장미꽃과 카네이션, 목련과 같은 꽃 문양을 자주 사용했으며. 꽃다발 주위에 나비와 새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바틱 은찜은 중국과 네덜란드의 문화가 혼합된 것을 알 수 있다.
▲ Batik encim 출처: pinterest.com
▲소장:경운박물관
⑤뻐깔롱안 바틱에는 유명한 빠기-소레(pagi-sore) 바틱이 있다. 이 문양은 1930년에 뻐깔롱안에서 시작이 되었으며 사선을 그어서 한 천에 전혀 다른 느낌의 문양이나 두가지 색깔로 만들어진다. 보통 한쪽은 화려한 식물들이 있고, 다른 쪽은 기하학적 문양이다. 두 부분은 작은 꽃들로 연결 되어있다. 아침(pagi)에는 어두운 쪽을 앞으로, 저녁(sore)에는 밝은 쪽을 앞쪽에 착용한다. 경제대공황으로 천의 공급이 매우 부족한 시기에 경제적 측면을 고려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제작된바틱이다. 이처럼 한정된 재료로 다양한 장식 효과를 얻기 위해 복합적인 문양을 추구했다.
▲소장(위):디자이너 Freddy Ardyansiah / 소장(아래): 경운박물관 (아래)
▲소장:자카르타 직물박물관 –일본 영향을 받은 자와 호코카이(Jawa Hokokai) 바틱
빠기-소레, 자와 호코카이 바틱은 일본 점령 이후 빠르게 성장하였다. 파스텔 톤이며 벚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뻐깔롱안 바틱의 역사
위에 몇 가지 문양에서 보듯 아주 독특한 뻐깔롱안 바틱은 나름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족자와 수라카르타 지역의 술탄들은 18세기 때 궁중에서 만들어진 바틱 문양의 예술성과 제작기술이 평민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자 특정 문양에 대해 일반인들이 착용하지 못하도록 칙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안지역 사람들, 특히 왕궁이 없는 뻐깔롱안 사람들은 이 칙령에 개의치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바틱을 만들어 착용하였다.
뻐깔롱안 바틱은 인도네시아에 오래 거주한 유럽 여성들(인도-유로피안)이 바틱에 매료되어 그들의 정장으로 착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히 번창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인들을 중심으로 바틱 수요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1800년대에 뻐깔롱안을 중심으로 바틱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1870년에 쁘갈롱안에서 처음으로 바틱에 디자이너의 이름을 넣기 시작했다.바틱 브랜드가 생긴 것이다. 당시 유명한 디자이너는 주로 *인도·유로피안들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여기서 말하는 인도인은 인도네시아에 오래 살아 인도네시아 문화에 동화된 유럽인이나 그 가족을 말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탄탄하게 성장 발전한 뻐깔롱안 바틱은 1950년-1970년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바틱산업은 뻐깔롱안 사람들에게 부를 가져다주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1976년부터는 프린트 바틱이 생산되어 바틱산업이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는 바틱이 구세대 패션이라는 인식으로 주춤하였다. 2000년대부터는 말레이시아와의 바틱 오리지널 소유권 문제로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바틱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바틱의 가치를 알고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특히 뻐깔롱안은 바틱이 산업의 중심이 되어 중부자바의 경제 성장의 중심지가 되었다. 뻐깔롱안 바틱 산업은 큰 자본을 가진 소수의 기업가가 아닌 수백 명의 소규모 기업가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뻐깔롱안에서는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바틱 생산 과정은 가내수공업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뻐깔롱안 사람들의 삶이 바틱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 바틱은 뻐깔롱안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이 되었다.
뻐깔롱안은 바틱으로 물든 도시
▲출처: mediaindonesia.com
뻐깔롱안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틱 사랑을 바틱 즐람쁘랑 춤(Tari Batik Jlamprang)으로도 표현하고 있다. 이 춤은 뻐깔롱안 시의 상징이 된 바틱을 전시하는 춤이며, 바틱을 만들고 있는 뻐깔롱안의 소녀들을 묘사한 현대 춤이다. 이 춤은 여성만이 추는데, 여성의 우아한 몸놀림은 매혹적이고 찬란하다. 즐람쁘랑 문양처럼 반복되고 확고하고 대칭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진 역동적인 바틱 춤이며, 바틱 예술활동에 필요한 인내와 끈기, 성실함이 녹아 있다.
▲출처: docplayer.infohttps://youtu.be/xvhtFuM7fb8
2013년 독립기념일인 8월 17일에 대통령 궁(Istana Negara)에서 국기 강하식 때 즐람쁘랑 바틱 댄스 공연을
펼쳤다. 유도요노 대통령이 극찬한 춤이다.
‘세계의 바틱 도시’ 뻐깔롱안
2009년에 뻐깔롱안 바틱 박물관(Museum Batik Pekalongan)이 인도네시아 바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바틱 박물관이 바틱 전통 보전 및 훈련 프로그램을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아 등재되었다.
또한 유네스코는 2014년에 뻐깔롱안을 공예 및 민속예술분야의 ‘세계 창의 도시 네트워크(World's Creative Cities Network)’에 포함시켰다. 동남아 도시 중 최초로 포함되었다. 뻐깔롱안이 세계 창의 도시 네트워크에 포함됨으로써 바틱 자산을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 세계의 타 도시와 그 창의성을 공유하고 공동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로써 뻐깔롱안은 ‘세계의 바틱 도시(World’s City of Batik)’라는 브랜드를 가지게 되었다. 이 브랜드는 뻐깔롱안시가 제정 및 활용하고 있다.
현재 바틱은 그 실용성과 예술성으로 인해 패션상품으로서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으며, 순수 예술로도 계속 발전되고 있다. 4차혁명 시대에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틱이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뻐깔롱안 바틱은 귀족들의 바틱이 아니라 서민들의 바틱을 대표한다.뻐깔롱안 바틱은 전통과 외래가 만나는 경계에 꽃이 피는 문명의 여정을 담고 있다.바틱을 통한 창의성은 그들의 일상생활에 녹아 있다.그 꽃은 부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예술"이며 문화적 언어를 담고 있다.
▲개인 소장:사공경- 빠랑(Parang, 끄리스)문양을 변형한 뻐깔롱안 빠랑 문양
뻐깔롱안 바틱은 다른 지역 바틱에 비해 색상과 문양 변형이 더욱 자유로워 무한한 문양을 만들 수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
https://en.unesco.org/creative-cities/pekalongan
https://meradelima.store/kebaya-batik-encim-pekalongan/
https://meradelima.store/kebaya-batik-encim-pekalongan/
https://1001indonesia.net/batik-encim-batik-pekalongan-bergaya-tiongkok-belanda
『The Globalization of a Craft Community』 by Michael Hitchcock&WienduNuryanti
『Batik Belanda 1840-1940』byHarmen C. Veldhuisen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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