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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장례 축제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토라자(Toraja)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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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4-10-26 00:45 조회 37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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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행의 기록]

장례 축제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토라자(Toraja)를 가다


글. 사진/조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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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mo 절벽묘지

 

인도네시아에서 사는 동안 언젠가 한번은 꼭 가보고 싶던 곳이 술라웨시 섬 또라자(Toraja)였다. 그 지역의 독특한 장례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부터다. 


그저 특이한 문화여서 보고 싶었던 걸까. 세상 무감해진 나에게 어떤 자극이 필요했을까.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자주 들던 요즘, 죽음의 모양새를 확인하고 싶었을까. 그저 끌렸을까.


혼자서 길을 나설 엄두를 못내던 어느날 또라자 여행길에 함께 할 동지가 생겼다. 기가막힌 타이밍이었다. 오랜 인도네시아 짬을 가진 그녀도 나도 망설일 것이 없었다. 


우리는 일정을 픽스하고 챗GPT까지 끌어들이며 모든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고 항공권, 야간버스 티켓, 숙소, 렌트카까지 2차 만남에 걸쳐 끝냈다. 서로 마주보는 눈은 반짝이고 마음은 들떠 있었다. 


죽은 자들의 무덤을 보러가는 게 뭐라고. 독특한 문화를 보고 싶다는 것이 주된 이유지만, 어쩌면 자바섬, 발리섬 말고도 갈 곳 많은 이 넓은 인도네시아에서 또 다른 섬(술라웨시)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는 설레임과 호기심이 퍽퍽해진 내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우리의 일정은 10월 어느날 월~금 4박 5일이었다. 오고가며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반을 차지하고 또라자 지역의 여행은 꼬박 이틀 뿐이었다. 


첫 날: 자바섬에서 술라웨시섬으로 

자카르타에서 오후 2시 비행기(Sriwijaya)를 타고 마까사르 술딴 하사누딘 공항(UPG)에 오후 5시반쯤 내렸다. (마까사르는 자카르타보다 1시간 빠르다). 또라자행 야간버스는 밤 9시 45분 출발이다. 시간을 여유있게 둔 것은 저가항공사들의 고질적인 출도착 지연 문제 때문이었는데, 스리위자야 항공사는 이날 정시 출도착. 별 게 다 감동이라며 그렇게 깔끔한 시작을 좋아라 했다. 

  548cbd084d053b2a3ff9fb9af533e8d9_1729875541_1822.jpg ▲마까사르 술딴 하사누딘 공항(UPG)


우선 이동을 최대한 줄이고 낯선 길에서 생길 수 있는 변수를 고려해 일단 버스터미널(Terminal regional daya Makassar)로 이동하기로 했다. 공항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린다. 공항 밖에서 블루버스 택시 직원을 찾아 택시를 타고(기본 7만루피아+35,000 추가비용) 버스터미널로 갔는데... 


터미널 근처니 변변한 식당이나 카페가 있을 거라며 거기서 저녁 먹으며 시간을 때우자 했었는데 예상은 제대로 빗나갔다. 시골 버스터미널 그 잡채. 과자음료 정도만 파는 매점들과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였다. 급히 택시를 돌려 가장 가까운 식당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 고카(Gocar)를 불러 다시 터미널로 이동.  


버스 출발 1시간 전에 대기 타라는 안내를 충실히 지키자며 더 일찍 도착한 우리는 버스가 오기까지 약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동네 꼬마 한 녀석이 달려오더니 대놓고 "Minta uang" 돈을 달라고 했다. 너무 해맑은 얼굴이어서 하마터면 돈 꺼내줄 뻔...(난 여기서도 호구 잡힌건가). 꼰대 기질 발동해 근엄하게 잔소리 한마디 해 주고는 이놈저놈 상대하다 그만 꼬마들과 말 트고 사진도 찍어주고 수다도 떨고 말았다. 헤어질 때는 "빠이빠이 또 만나" 큰 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며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다. 


'그 아이들이 돈을 달라고 한 건 그저 놀이같은 게 아니었을까. 버스터미널을 놀이터 삼아 놀던  아이들에게 나타난 이국 사람은 그들에겐 그저 놀이의 대상이 아니었을까...2천 루피아 달랬는데 놀이처럼 그냥 줄 걸 그랬나...' 버스에 누워 휙휙 지나가는 까만 창밖을 보면서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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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까사르 버스터미널(Terminal regional daya Makass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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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미널을 놀이터 삼아 놀던 아이들 


처음 타보는 침대 버스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신발도 벗어 따로 보관하고 한 사람이 누워 갈 아늑한 공간에 담요와 배게 쿠션까지 준비되어 있다. 우리가 탄 버스는 2층이었고. 위아래 합치면 한 버스에 대략 20명 정도 탈 수 있는 규모다. 버스 차장도 2명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탑승객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밤새 운전해야 하는 운전사의 졸음도 쫒아주진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봤다.


밤 10시에 출발한 '달리는 침대'는 밤새 8시간을 달려 내일 새벽 또라자에 우리를 내려줄 것이다. 달리는 버스에 누워 바라보는 까만 창밖 풍경은 낯설다 못해 영화를 보고 있는 듯 했다. 다음 장면을 예상할 수도 없을 만큼 장면들은 너무 빨리 지나갔고. 뜻밖에 보게된 재미진 영화처럼 내 시선은 내내 창밖에 머물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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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a&Co Sleeper Bus  


*버스 예매 : 온라인 예매사이트가 몇군데 나오는데 우리는 traveloka에서 Lita&co 버스로 예매.(여러 사이트를 몇 번을 다시 검색하고 확인해야 함.) 마까사르-또라자 슬리퍼 버스(sleeper bus,30만 루피아/1인) /침대버스를 슬리퍼 버스라고 함. 


*버스 탈 때 미실리아니(Misiliana)호텔 앞에 내려달라고 미리 얘기하면 정문 앞에 내려줌. 호텔이 바로 길가라서 가능함. 암튼 이것이 인도네시아 클라스.


*Mr.한도꼬(0821 9324 8062) /렌트카: 아반자 기사포함(50만 루피아/일)


둘째 날: 또라자 장례축제를 가다 

렌트카를 소개해주고 또라자 일정을 적극 도와준, 알고보니 미실리아나 호텔(Misiliana)직원인 한도꼬(Handiko)아저씨가 근처 동네 장례식을 볼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또라자만의 독특한 장례문화를 보러 온 첫날 마침 그 기회라니, 이번 여행은 정말 착착 잘도 들어맞는다며 우리는 조용히 들떠 있었다.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는데 대놓고 좋아할 일은 아니지 않냐며... 비올 것 같던 날씨도 맑게 개어 있었다. 또 알고보니 나의 동행자가 날씨요정이었더라는. 


또라자의 장례문화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가자. 인터넷에 또라자에 관한 정보들은 차고 넘치니.


또라자 주민들은 가족 누군가가 죽으면 시신을 미이라처럼 처리한 후 장례식을 치를 수 있을 때까지 한 집에 모셔두고 생활한다. 독특한 장례 문화의 일부다. 또라자 사람들은 장례식을 축제(pesta)라고 말한다. 이 축제에는 제물이 될 많은 물소와 돼지 등을 잡아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력이 필요하다. 가족이 죽고 나서 장례축제를 치를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죽음 이후 장례축제까지 한 달이 걸릴 수도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동안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집 안에 두고 함께 지낸다. 


돈이 많을수록 계급이 높을수록 많은 물소를 제물로 바치고 바위묘지의 위치도 높은 곳에 자리하게 된다. 죽어서도 나뉘는 계층. 이러한 장례축제 문화는 그들의 오래된 전통문화다. 


장례식장은 장례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야외 공간으로 조성돼 있었다. 참관할 때 지켜야 할 매너나 주의할 점 등이 있는지 운전기사 양반에게 물었는데..딱히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기사 양반이 또라자 출신이 아니어서 알려주는 정보에 대한 확신은 좀 떨어짐) 


사뭇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서양 여행객들도 꽤 보인다. 곳곳에 물소가 매여져 있었고, 발이 묶인 돼지들은 거꾸로 매달려 줄줄이 장례식장 안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옆팀 여행객 가이드의 말을 컨닝하자니 이날 물소를 17마리 잡는다고 했다. 이 정도면 중산층에 속하는 수준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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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그림이 붙여진 관은 전통가옥 똥꼬난(Tongkonan)에 모셔두고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진행자는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고인의 가족 친지로 보이는 사람들은 화려하게 옷을 맞춰 입고 의식을 치른다. 마당에 늘어놨던 돼지들은 뒷쪽으로 물려지고 물소 한 마리가 마당 한 가운데로 이끌려 나왔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물소에 쏠렸다. 주인공의 등장인가.. 


물소를 다루는 아저씨는 순박하게 주름진 웃음을 지으며 허리춤에 있던 칼자루를 꺼내 천천히 물소의 머리를 들어올리고는 단칼에 목을 그어 피를 냈다. 커다란 소가 쿵하고 쓰러졌다. 많은 사람들이 물소의 몸부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이어 또 다른 물소가 그 현장에 들어오고 순식간에 또 목이 그어졌다. 


우리는 더 이상 지켜보기가 힘들어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땅만 보고 걸었다. 또라자 여행 첫날 아침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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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제물로 바쳐진 물소 


다음 목적지는 께떼 께수(Kete kesu)마을이다. 마을 뒷쪽의 절벽과 동굴에 시신을 안치하는 또라자 스타일의 묘지인 셈이다. 


내가 가는 길가에 똑같은 물건을 파는 기념품샵이 있다면 그곳은 관광지가 맞다. 기념품샵이 끝난 곳에는 넓은 마당에 또라자 전통가옥 똥꼬난(Tongkonan)이 줄지어 마주 서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신분이 높고 부자였던 특별한 사람들만 따로 보관해 둔 별도의 관 집(?) 커다란 똥꼬난이 있다. 그 앞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닮은 목각인형(따우-따우 tau-tau라고 불림)이 유리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돈이 많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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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te kesu 마을의 Tongkonan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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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관 속에 고인의 실물 목각인형(tau-tau)가 보관되어 있다.  


그 윗쪽으로 올라가면 벽 외벽에 관을 올려두거나 돌 속에 관을 넣어둔 절벽이 보이고 그 길 위에는 작은 동굴이 있다. 관을 보관하는 곳이다. 너무 오래돼 허물어진 관에서 나온 뼈와 해골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 동굴 입장시 후레쉬 값 5만 루피아+가이드팁 알아서-우린 2만 루피아 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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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te kesu 마을의 절벽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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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te kesu 마을의 동굴 무덤 입구


다음 일정은 바뚜뚜몽아(Batutumonga) 마을의 바위 무덤이다. 제법 산을 올라 아랫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꼭대기 식당에서 점심을 먼저 먹었다. 여기는 그냥 뷰 맛집인걸로. 산바람이 불어 제법 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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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뚜뚜몽아 바위무덤은 커어어다란 바위에 여기저기 관을 넣어둔 문이 보인다. 커다란 자연 바위를 사람이 뚫어 만든 바위 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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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뚜뚜몽아 바위무덤 


내려오는 길에 실제로 살고 있는 똥꼬난 집 구경 한번 해보자고 들른 어떤 아저씨 집은 얼마전 돌아가신 어머니 시신을 모시고 있다고 해서 내부를 들어가 볼 순 없었다. 


다음은 깔림부앙 보리(kalimbuang bori): 땅에 박힌 선돌과 아기무덤나무가 있는 곳. 

커다란 돌이 땅에 수직으로 박혀있는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된 인도네시아 문화유적지 중 하나라고 한다.영국의 스톤헨지와 유사하다고.. 


84afe69f4e797db24397e8b6a3a5a4a5_1729876930_4355.JPG깔림부앙 보리(kalimbuang bori) 선돌 


아기무덤나무(passiliran) 찾는데 정신이 팔려 사실 돌은 제대로 보질 못했다. 또라자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이가 나기 전에 죽은 아이는 돌이 아닌 커다란 나무 구멍에 넣고 장례를 치루었단다. 


채인숙 시인의 '나무어미'(시집 여름 가고 여름 /민음사)라는 시를 다시 읽으며 또 한번 마음이 덜컹한다. 

'술라웨시 섬 깊은 숲속에서 /아이는 죽어서도 /자란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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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림부앙 보리(kalimbuang bori)의 아기무덤나무(passiliran) 


오늘의 일정 끝으로 사단(Sadan)마을을 들렀다. 또라자의 직물(Tenun)을 직접 짜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들었는데... 똥꼬난 가옥만 있고 휭하니 뭐가 없다. 늦은 오후이기도 했지만 직물짜는 할머니들이 요즘은 거의 활동을 안 하신다고...우리를 보더니 한 기념품 가게가 부랴부랴 샷다문을 열었지만 그곳만의 특별함은 없어보였다. 본 것도 없고 들어만 갔던 건데 돈 내라고 해서 3만 루피아 삥 듣긴 기분. 


셋째 날: 거대 예수상 직관-고인물을 만나다.

아침에 서둘러(?) 9시반에 분뚜 부라껜(Buntu buraken)의 거대 예수상을 보러 출발. 따나 또라자의 행정중심지 마깔레(Makale)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 예수상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좀더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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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뒤로 꺾어가며 사진찍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접근. 우리는 당연 경계했지만 기사양반이 찍힌 사진을 보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과 손을 맞잡은 사이가 되었다는... 그 아주머니는 그곳에서 관리하시는 분이라고. 핸폰 카메라를 다루는 솜씨가 어찌나 빠르고 능숙하시던지. 사진찍는 장소와 포즈까지 정해 주시는 메뉴얼 장착 제대로. 감사의 표시로 팁 쪼끔(2만 루피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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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원한 뷰를 감상하며 또라자 커피 한잔 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었지만 그럴만한 장소는 없었다. 이 좋은 공간에 커피숍하나 없다니 너무 아쉬웠다. 없는 이유가...있겠지?  


다음 장소 상갈라(Sanggalla) 지역으로 이동. 이곳에도 아기무덤나무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어제 본 것보다 더 확실하다. 아기무덤의 문처럼 보이는 덮개가 한 나무에 서너 개 있었다. 나무 속 아기는 내 나이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나보다. 그 아이의 엄마도 이미 이 세상에 없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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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갈라 아기무덤나무 (passiliran) 


상갈라 지역의 또 다른 절벽무덤 리앙 수아야(Liang Suaya)로 갔다. 왕족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했다. 절벽 곳곳에 왕족들의 따우따우가 세워져 있고 대부분 오래된 흔적이 보인다. 왕족들의 무덤이어서 더 그랬을까? 어쩐지 더 쓸쓸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왜 그때 떠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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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앙 수아야(Liang Suaya):왕족 절벽묘지


왕족들의 무덤을 나와 마깔레 시내를 통과하면서 레모 절벽무덤으로 향했다. 시내를 지나는 동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예수상의 앞뒤옆 모습이 멀리 보인다. 80% 이상이 기독교인, 천주교인인 이 동네 사람들 든든하겠다. 


레모(kuburan batu pahat Lemo)의 절벽 무덤은 양쪽으로 두 군데다. 이곳은 또라자 귀족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고 약 16세기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봤던 바위 무덤들보다 주변 풍광이 좋고 공간도 넓직해서 따우따우가 촘촘히 있는 절벽이 마치 캔버스에 그린 그림처럼 아티스틱한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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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kuburan batu pahat Lemo)의 절벽 무덤
 

다음 장소로 가는 중에 또라자 전통 직물샵(Todi ikat shop)에 들렀다. 우리가 들어가니 안주인이 나와 직물짜기 시연을 보인다. 이것저것 잘 구경하고 기념품도 하나 사왔다. 관람료는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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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지막 묘지 론다(Londa). 한 가문이 사용하는 바위산 묘지다. 우리로 치면 선산같은 거라고 이해했다. 최근 입고된 신생 관은 3개월 전 것이라고..가문이 이어지는 동안 이 바위산 묘지에도 죽은자들이 쌓여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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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의 자연 동굴 속은 오래된 관과 해골, 유골들의 전시장 같다. 이쯤되면 이곳이 무덤인지 저것이 해골인지, 무섭기보다 비현실감이 더 든다. 심지어 동굴 속에서 쪼그려 앉아 가이드가 전해주는 두 해골의 안타까운 사연에 귀를 기울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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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을 빠져나오니 늦은 오후, 외벽 따우따우가 있던 공간에 샷다가 내려져있다. 도난 방지 차원이란다. 앤틱 좋아하는 서양사람들에게 팔 목적으로 훔쳐가는 이들이 있다고. 죽은 사람의 실물과 닮은 목각인형을 훔쳐다 팔 생각을 하다니...귀신보다 돈이 더 무서운 사람들.


동굴을 나와 다른 쪽 길로 돌아 나오다 보면 동굴 위쪽에 구멍이 2개가 더 있는 것을 멀리서 볼 수 있다. 그곳에도 관을 넣는 곳인데 지위가 더 높은 사람들이 차지하는 곳이다. 역시 고위층. 저 높은 절벽에 관을 가지고 올린다는 게 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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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nda 동굴 옆 절벽 높은 곳에 커다란 구멍이 2개 더 있다. 


론다를 끝으로 우리의 묘지 투어는 끝이 났다. 이동하는 동안 마을의 곳곳에 크고작은 바위묘지가 제법 눈에 띄었었다. 지금도 또라자 사람들은 그렇게 장례의식을 치르고 바위 속에 시신을 앉히고 있다는 얘기다. 


굳이 어렵게 바위 속을 깍아 그 곳을 묘지로 쓰게 된 건 아마도 그 지역에 돌산이 많아서가 아닐까..산세 깊은 그곳에서 멀쩡한 땅은 농사를 지어야 하고 여기저기 바위산에 돌은 많으니 죽은 자들을 그곳에 두기로 한 건 아닐까...순전히 나의 뇌피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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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는 동네 길가에 있던 바위무덤 


숙소로 가기 전 호텔 가까운 카페(kaa Toraja coffee)에서 또라자 커피(커피계에서 껌좀 씹는)를 샀다. 주인 할머니는 원두를 골라내고 계셨고 원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고수같은 느낌적 느낌.그 자리에 카페를 오픈한 지 9년째라고 하신다. 커피 원산지인데 싸지 않은 가격이다. (200그람 1봉=8만 루피아). 요즘 아라비카 원두 가격이 많이 올랐다더니 그래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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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호텔에서 컵라면과 튀김 몇조각, 날씨요정이 가져온 참치김치볶음과 와인으로 해결했다. 여행에서 컵라면 빠지면 섭하다는 걸 우린 너무 잘 아니까. 또라자의 마지막 밤이라며 좋은 여행이었다며 우리는 기분좋게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깜깜한 밤 반딧불이 한마리가 반짝거리며 어디론가 날아간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온통 묘지로만 가득했던 또라자 일정의 마무리가 생전 처음 본 반딧불이라니...감동이었다. 또라자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반짝였다.


넷째 날: 다시 마까사르로 

친절한 한도꼬씨가 버스 타는 곳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비록 5분 거리였지만 물론 공짜는 아니다. (5만 루피아). 이번에는 올 때처럼 버스가 호텔 앞에 세워주지 않아서 가깝지만 정류장까지 이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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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에서 친절한 한도꼬 아저씨 


우리가 탈 버스는 오전 8시에 출발하는 일반 우등버스다. 우리가 지나온 8시간의 낮 풍경을 확인하고 싶어서 야간 버스를 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우등버스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꽤 불편했지만 깊은 산세가 펼쳐지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으로 퉁쳤다. 


버스는 산꼭대기 어딘가 식당에서 우리를 내려주고 점심을 먹으라 했다. 교통비에 포함된 줄 알고 왠일이냐 했지만 그럼그렇지. 식사는 나쁘지 않았고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맛을 더했다. (생선 정식 5만, 닭 정식 4만 루피아. 뷰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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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가 데려다 준 식당의 생선정식과 풍경


우리는 자다 깨다 10시간 만에 마까사르에 도착했다. 자카르타로 돌아가는 건 내일이지만 또라자에서 나오는 이동시간이 길어 오던 날처럼 여유있게 하루 전날 마까사르로 온 것이다. 모처럼 화아려한! 도심의 호텔에서 야경을 보며 하룻밤을 보낸다. 


*또라자-마까사르 버스 예매: 우리가 준비하던 시기에 온라인에서는 티켓을 찾을 수가 없었음. 한도꼬 아저씨한테 물어봤더니 티켓 예약해주겠다고 함. 나오던 날 알게 된 사실인데 현지 사람들은 버스회사에 직접 전화해서 티켓을 구입한다고...아직 작동하는 믿음과 정이 오가는 아날로그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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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버스 티켓/ 또라자에서 나오는 버스는 버스회사에 직접 전화해서 예약할 수 있다.(인당 20만 루피아)


마지막날: 전동 인력거 타고 마까사르의 로사리 해변(Pantai Losari)과 로떼르담 요새(Fort Rotterdam) 돌아보고 자카르타로 복귀.


또라자에서는 시신을 꺼내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마네네(Manene) 행사도 가끔 하는데, 아마 건기에 의식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올해는 8월에 이미 한 듯.우리가 갔던 10월의 또라자는 잠깐씩 비 뿌리며 우기로 접어드는 계절이었다. 


나는 또 그곳에 가고 싶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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