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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57) 안 보고 안 먹고 운동 안 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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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361회 작성일 2020-09-2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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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고 안 먹고 운동 안 할 자유
 
조연숙
 
텔레비전 화면에 연예인의 고개 숙인 모습과 자막과 함께 이혼 이야기가 반복해서 흐른다. 개인의 애정사가 전국민의 현안이 됐다. 바람을 폈네 말았네… 불똥이 당사자 주변인에게 튄다. 잠시 후 어느 당 국회의원의 막말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막말한 국회의원은 당장은 욕을 먹는 것 같으면서도 인지도가 급상승해 대선 후보급이 됐다. 폭우가 내릴 거라고 주문을 외운다. 이어 침수된 논과 콸콸 흘러 넘치는 물이 화면에 가득 차서 안 빠진다. 발리 화산 분출 장면이 반복된다. 홍수가 난 곳도 화산이 분출한 곳도 이제 다 진정이 되어서 정상생활로 돌아왔지만 사람들의 뇌리에는 여전히 재난 지역이다.
 
스크린에 시선이 머물자 생각이 멈추었다. 말을 하다가 잠시 텔레비전 화면이 눈에 들어왔는데... “어디까지 말했더라?” 대화가 끊겼다. 무심코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한 장면을 보았는데, 설거지도 못하고 나가게 생겼다. 스포츠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도 올림픽과 월드컵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다시피 하고 누가 메달을 땄는지 다 안다. 건물 외벽, 식당 벽과 기둥, 이민국 대기실, 공항 대합실, 열차 안, 버스 안 등등 어디에나 스크린이 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수한 장면이 반복적으로 뇌리에 박힌다. 세뇌 수준이다. 보고 싶지 않다. 이쯤 되면 보는 게 독이다.
 
 (사진=조연숙)
 
성인병을 예방하려면 부아메라를 꼭 먹으란다. 비타민C를 보충하기 위해 아세로라를 먹고, 유산균을 위해 막걸리를 마시고,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오리 고기를 먹고… 눈을 보호하기 위해 카로틴이 많이 든 당근을 먹고, 튼튼한 뼈를 만드는 칼슘을 채우기 위해 멸치도 많이 먹어야 한다. 양파도 먹고 피망도 먹고 가지도 먹고.. 먹고 먹고 또 먹고 계속 먹어야 한다. 내 몫으로 나온 음식은 남기면 안 되고, 편식하면 얼굴이 미워진단다.
 
모범적인 어린이가 되기 위해 내 그릇에 담긴 국을 국물까지 먹었더니 배가 빵빵하고 체할 것 같았다. 피망은 맛을 모르겠고 소화도 안 된다. 당근을 익혔을 때 강해지는 특유의 향이 거북하다. 어떤 때 고등어를 먹으면 몸이 가렵다. 포도주는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속이 울렁거린다. 빈 속에 주스를 마셨더니 속이 쓰리다. 이쯤 되면 음식이 독이다.
 
열심히 먹으라고 하더니 이제는 살을 빼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단다. 걸어라, 달려라, 자전거를 타라, 유산소 운동만 하지 말고 근육 운동도 해라. 국민체조, 에어로빅, 요가, 필라테스 등등 나날이 운동도 발전한다. 똥배 없는 납작한 배, 잘록한 허리, 근육이 탄탄한 등, 날씬한 팔뚝, 곧은 다리, 매끈하고 탄력 있는 피부… 누군가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차 사고가 났고, 누군가는 마라톤 중독으로 연골이 닳아 없어져서 오히려 못 걷게 됐다. 이쯤 되면 운동이 독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안 보고, 먹고 싶지 않은 것을 안 먹고, 운동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라!!!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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