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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84) 인도네시아의 보검, 끄리스 (K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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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994회 작성일 2021-09-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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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보검, 끄리스 (KRIS)
 
사공 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

서울에 세종로가 있듯이 자카르타에 수디르만로가 있다. 이도로 입구 중앙에는 한 시절의 영웅이 아니라 나라의 영원한 상징이 된 수디르만 장군의 동상이 있다.
 
수디르만 장군 동상은 네덜란드 재침략에 대항해 죽을 때까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을 담아 낸 것이다. 왼손에는 지휘 지팡이를 들고 있고 코트에는인도네시아 단검인 끄리스(Keris)가 꽂혀 있다. 거수 경례를 하면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는, 출정 직전의 군인의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수디르만 동상 (사진 출처: Harian Pijar(좌)  Megapolitan Okezone(우)

족자의 인구가 반으로 줄었다는 자바전쟁(1825~1830년)을 이끈 전설의 용사 디뽀느고로 왕자(Pangeran Diponegoro) 초상화에서도 가슴에 꽂혀있는 끄리스를 볼 수 있다. 이처럼, 끄리스는 독립전쟁이나 자바전쟁을 이끈 인도네시아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영웅들도 착용했다.
 
 
▲빵에란 디뽀느고로 (Pangeran Diponegoro)
 
1. 세계 무형문화 유산에 등재된 끄리스
인도네시아의  끄리스(kris, keris)는 2005년 11월 25일부터 세계 유산의 걸작으로 인정받았고, 2008년 11월 4일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이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11월 25일 또는 11월 4일을 끄리스 날로 기념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끄리스는 수세기에 걸쳐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무기인 끄리스는 영적인 대상으로서 신비한 힘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종교의식 수행의 완전성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관습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전쟁에서 무기로 사용하였으며 공물의 보완으로도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끄리스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신과 인간이 빚어낸 예술품으로 제작 공정은 문명의 정점을 보여준다. 현재는 주로 의복의 장신구나 문화적 상징품, 미학적인 수집품으로도 가치가 있다.
 
또한 끄리스는 인류문명의 상징으로서 문화상품이라는 점에서 문화의 우월성을 보여준다. 끄리스의 지속성을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문화, 국가, 종교를 초월하여 기념품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연대의 가치를 갖는다.
 
2. 끄리스의 여정
자바어로 “끄리스”는 “무언가를 자를 수 있는 꾸불꾸불한 것 (mlungker-mlungker kang bisa ngiris)” 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측된다. 끄리스 형태의 발달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대부분 사원 부조나 조각상의 인물 분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끄리스는 7~9세기 경 자바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각 민족에 맞게 현지 관습에 맞춰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끄리스는 자바, 마두라, 누사 뜽가라, 수마뜨라, 깔리만딴 해안, 술라웨시의 일부, 말레이 반도, 남부 태국, 남부 필리핀 (민다나오)과 같이 한때 마자빠힛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사용하였다.
 
13세기부터 인도네시아를 여행한 외국인들이 끄리스에 대해 기록한 문서가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정화(鄭和)의 세계 원정(1405~1433)을 수행한 마환(馬歡)은 그의 저서<Yingya Shenglan(瀛涯勝覽)에서 “마자빠힛 왕국(1293~1520)에서는 세 살 이상의 남자는 벨트에 끄리스를 차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1518년의 순다 문헌에 따르면 끄리스는 왕과 기사를 포함한 쁘라부 (Prabu)란 계급이 사용한 무기의 한 종류였으며, 순다 왕국은 쁘라부•농민•성직자 계급이 각 다른 끄리스를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마자빠힛 시대 말에 예배 장소가 된 수꾸(Sukuh) 사원의 부조에는 끄리스를 만드는 음뿌(Empu, 끄리스를 만드는 장인)가 조각되어 있다. 이 양각은 음뿌를 의인화하는 비마(Bhima)가 쇠를 버리고, 가운데에 가네쌰 (Ganesha)가 있고, 또 아르주나(Arjuna)가 송풍기 파이프를 타며 불을 지피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음뿌 뒤에는 끄리스를 포함한 쇠 세공품들이 그려져 있다.
 
3. 끄리스의 형태와 명칭
끄리스는 직선이 있고, 비대칭이며 꾸불꾸불한 특징이 있는 것도 있다. 직선 끄리스는 신에게 굳건한 신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으며, 직선 모양은 명상하는 뱀과 같아서 조용함과 평안함, 안심함을 상징한다. 따라서 성직자와 종교지도자가 주로 직선 끄리스를 갖는다.
 
한편 기어가는 뱀처럼 보이는 곡선 끄리스는 역동성을 상징한다. 꾸불꾸불한 칼날을 룩(Luk)이라고 하며, 룩이란 곡선은 홀수이며 완벽하지 않은 사람을 상징한다고 한다.
 
▲끄리스는크게3 부분으로나누어져 있다. 칼날인 윌라(Wilah), 받침대인 간자(Ganja), 손잡이인 훌루(Hulu)이다. 손잡이와 칼날은 분리되거나 빼시(Pesi)를 사용하여 통합될 수 있다.
 
크리스는 보통 넓고 비대칭인 본체에 폭이 좁은 칼날을 가지고 있으며, 좋은 끄리스 경우에는 받침대가 있으며, 무기와 의식도구로 사용되는 끄리스는 와랑까(Warangka)란 칼집으로 보호한다. 끄리스는 미학적 가치 외에도 많은 영적 상징을 가지고 있다.
 
끄리스의 형태에서 고려해야할 일반적인 사항은 굽힘과 장식품, 칼날의 색상 또는 광채, 빠모르(Pamor)의 무늬이다. 빠모르는 윌라에 조각이나 그림을 그리는 금속이다.

*윌라(Wilah):윌라는 끄리스의 주요부분이며 끄리스의 형태와 관계없이 부러진 금속으로 만들어진 칼날이다. 다뿌르 (Dhapur)는 자바어로 끄리스의 형태(직선 혹은 곡선)를 말한다. 꾸불꾸불한 칼날을 룩(Luk)을 세는 방법은 끄리스의 바닥에서 시작하여 끄리스의 끝을 향해 볼록한 쪽에서 세고 양쪽(오른쪽-왼쪽)에서 센다. 총 숫자가 룩의 횟수인데, 항상 홀수이다. 가장 작은 룩은 룩3이고 가장 큰 룩은 룩13이다. 그래서 끄리스는 다뿌르(형태)와 룩에 따라 다음의 이름을 가진다.
 
직선 끄리스: 잘락(Jalak), 룩3 끄리스: 장꿍(Jangkung), 룩5: 쁜다와(Pendhawa), 룩7: 슴빠나(Sempana), 룩9: 직자(Jigja), 룩11: 사북인뜬(Sabuk Inten), 짜리따(Carita), 룩13: 씅끌랏(Sengkelat)
 
*간자(Ganja):끄리스의 받침대를 말하며, 간자 가운데에 둥근 구멍이 있고, 그 구멍에 꽂혀 있는 긴 금속인 빼시(PESI)로 윌라와 끄리스 손잡이를 합친다. 윌라와 간자는 링가요니(lingga yoni)를 상징하는데, 간자는 요니를, 뻬시는링가를 표한다.
 
*훌루(Hulu): 끄리스의 손잡이를 말하며 문양이 다양하다. 예를들어 발리에서는 손잡이 모양이 신과 사제, 거인, 무용가, 숲의 은둔자를 닮았고 일부는 금과 보석으로 조각되며 루비가 상감되어 있다. 술라웨시 끄리스의 손잡이는 바닷새를 묘사한다. 이는 술라웨시에 선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새는 안전을 상징한다. 자바 끄리스의 손잡이는 신체를 상징하며, 주로 나무로 만들지만 상아와 뼈, 금속으로 만들기도 한다.
 
*와랑까(Warangka): 끄리스의 칼집을 말하며 눈에 띄는 부분이라 특히 자바에서는 사용자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 칼집은 주로 나무로 만들지만 가끔 상아로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금으로도 만든다. 

와랑까는 와랑까 가야만(Warangka Gayaman)과 와랑까 라드랑(Warangka Ladrang) 2종류가 있다. 와랑까 가야만이 더 길고 크고 위가 뒤쪽으로 구부러진다. 와랑까 라드랑은 더 많이 구부러져 있다.
 
                     
와랑까 라드랑은 대부분 왕과 대면하는 공식 의식이나 궁전행사(대관식, 왕실관리의 임명, 결혼식 등)에 존경의 표시로 사용한다. 사용방법은 허리 뒤쪽의 벨트/스타겐(Stagen) 접은 부분에 끄리스의 축을 넣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왕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와랑까 가야만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며 앞쪽(허리​​근처) 또는뒤쪽(허리뒤쪽)에 넣는다. 간결하고 실용적이고, 단순한 형태라 더 빠르고 쉽게 끄집어 낼 수 있기에 전쟁에서도 사용된다.
참고로 수디르만 장군이나 디뽀느고로 왕자가 차고 있는 끄리스의 칼집은 와랑까 가야만이다. 또한 그들은 전시에 대비해 끄리스를 앞에 찬 것이다.
 
끄리스에 사용되는 물질은 기본적으로 금속과 빠모르 금속으로 만들어지며 받침대의 뻬시(Pesi) 부분은 강철로 만들어진다. 다른 금속과 섞어 더 가볍게 만들 수도 있다. 현대 끄리스는 보통 니켈로, 고대 끄리스는 다양한 철광석, 즉 니켈이나 코발트, 은, 주석, 크롬, 안티모늄, 구리 외에 티타늄 함량이 높은 운석으로도 만들어졌다. 유명한 운석은 19세기에 쁘람바난(Prambanan) 사원 단지에서 떨어진 쁘람바난 운석이다.

4. 유산/국보 박물관 (Museum Pusaka)에서 만난 끄리스
 
▲Museum Pusaka: 민속촌(Taman Mini, 따만 미니)끄리스 박물관의 정식 명칭

민속촌(Tamanmini)에 군인 박물관과 곤충 박물관 사이에 있는 건물의 지붕 위에 우뚝 솟은 끄리스가 보인다. 이를 보면, “아, 여기가 그 유명한 끄리스 박물관이구나”라고 알 수 있다.  (1993년 개관)
 
이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유산들은 처음에는 마스 아궁 (구눙 아궁 서점의 창업자)의 개인 소장품이었다. 유산 박물관은 미래세대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무기에 대한 연구를 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전시실에서는 누산따라 전역에서 수집한 끄리스를 포함해서, 끄리스를 만드는 음뿌(Empu)의 작업장 및 장비들도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끄리스는 매일, 혹은 특별한 의식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착용하며, 끄리스는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신성한 가보이며, 마력을 지닌 부적, 무기, 궁정 군인을 위한 보조 장비, 의복용 액세서리, 사회적 지위의 지표, 영웅의 상징 등으로 전시에 사용됩니다.”라고 설명하는 음뿌의 눈빛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마침 무하람(Muharram, 이슬람력 1월)달이라 “끄리스 처리”에 관한 의식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2016년 찌르본 왕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끄리스 씻는 의식(Memandikan keris: ‘끄리스 처리’라고도 함)”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의식은 자바에서는 매년, 이슬람교도들이 거룩한 달이라고 생각하는 무하람(Muharram) 또는 수로(Sura) 때 거행하는 전통이 있다.

먼저 끄리스를 오래된 향수로 씻고 코코넛 액체나 라임주스와 같은 산성 액체로 칼날에 나온 녹을 없애고, 씻은 끄리스에 와랑안을 바른다. 이는 빠모르를 선명하게하기 위한 절차이다. 다시 씻은 후, 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칼날에 향수 오일을 칠한다. 장엄하기까지 한 의식은 몇 시간이나 진행되었다. 오래전 끄리스 박물관에서 만난 음뿌가 이 의식에 대해 왜그리 열심히 설명해주었는지, 끄리스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유산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가장 오래된 끄리스는 8세기 끄리스였다. 직선 끄리스이며 중부 자바의 끌라뗀(Klaten)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길이 26센티, 무게 250그램이다. 와랑까 (Warangka) 칼집이 티크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보통 가장 많은 룩이 13룩이지만 특별하게도 룩이 99개까지 있는 전시품도 있었다. 이는 이슬람교 99신을 상징한다. 이 끄리스는 마두라(Madura) 원산인데 추가 장신구로 발리 무늬를 사용했다.
 
 ▲사자와 코끼리의 조각이 있는 특별한 끄리스도 전시되어 있다. 마자빠힛 전쟁에서 사용되었고,
또한 마따람 왕국의 술딴 아궁(Sultan Agung) 왕이 빠띠(Pati)에서 생긴 반란을 진압할 때 사용한 끄리스로
특별한 유산이 되었다고 한다.

2010년경 박물관에 들렀을 때 음뿌는 자부심 보다는 염려를 표했다. “지난 30여년 동안 끄리스는 사회적, 영적 의미가 두드러지게 축소되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품질의 끄리스를 제작하는 명예로운 장인(Empus)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기술을 전승받을 사람을 찾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인가 끄리스가 새로운 문화에 잠식되지 않도록 2017년 조코위 대통령에 의해 누산따라 박물관 (Museum Keris Nusantara)이 솔로(수라까르타, Surakarta)에 개관된다.
 
▲이 박물관은 끄리스 수집가와 단체에서 증여받은 고대 끄리스를 350개 보관하고 있으며, 조코 위도도 (조코위) 대통령이 소유하는 끼야이 뜽아라 (Kiai Tengara)란 끄리스도 박물관의 특별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수라까르타 (Surakarta)식의 조각을 가진 끼야이 뜽아라 끄리스는 땅과 해양, 공기의 3차원의 지배를 나타낸다. 5개의 룩은 빤찌실라 (Pancasila)를 상징하며 칼집이 귀족을 상징하는 빨간색이다.

그 외에 끄디리와 싱아사리, 마자빠힛, 마따람, 수라까르타, 욕야까르타 왕국에 유래된 고대 끄리스도 있다. 전시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7세기 자바 순다의 갈루(Galuh) 왕국에서 유래된 끄리스이다.
 
끄리스 누산따라 박물관은 5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층은 찝따 아딜루훙(Cipta Adiluhung)이라고 하며 보로부두르 사원과 수꾸(Sukuh) 사원 시대 때 끄리스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방문객이 끄리스를 칼집에서 꺼내는 방법이나 자바 전통 의상에서 끄리스를 차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5. 족자 왕궁에서 만난 끄리스
30년 전 처음으로 사원의 도시, 왕궁의 도시, 바틱의 도시, 교육의 도시 족자에 갔다. 사람들은 족자의 왕궁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하며, 시간이 부족하면 왕궁은 방문하지 않아도 좋다고 조언을 해 주었다.
 
별 기대없이 왕궁에 갔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압디 달름(Abdi dalem)이란 왕궁 지킴이였다. 압디 달름의 의상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뒤에 차고 있는 끄리스는 바틱치마(자릿: jarit)와 하나가 되었으며, 끄리스는 그 의상의 화룡점정이었다. 왕궁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그들의 의상을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의상의 한 부분이 된 끄리스를 차지 않는 압디 달름을 상상해 보라.

자바 왕이 궁중 군인이나 사병, 압디 달름에게 준 소중하고 값진 선물은 끄리스였다. 당시 끄리스는 자기 정체성이나 궁전에서 지위의 상징이었다. 족자 압디 달름은 12계급으로 되어 있으며, 항상 끄리스를 차고 활동한다. 2년 간의 견습 과정을 거친 후 압디 달름 자격을 부여 받기 때문일까. 끄리스와 함께 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압디 달름은 2번째 계급인 부끌 급부터 가장 높은 빵에란 슨따나 급까지 끄리스를 차고 다녀야 한다. 가장 낮은 자자르 급은 끄리스를 차지 않는다. 특히 족자 왕궁의 압디 달름에게 끄리스는 일상생활 속의 의식이며, 보는 누군가를 즐겁고 편하게 해 주기도 하는 의복의 일환이기에 미적인 가치가 있어야한다.
 
자바에서는 압디달름처럼 다른 사람이 무기를 볼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끄리스를 뒤에 찬다. 무기가 보이면 상대방을 협박 혹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즉 오만함을 피하고 공손하게 폭력보다 외교를 우선시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압디 달름인 왕궁지킴이 경우에는 쪼그리고 앉기 때문에 뒤에 차는 것이 편하다. 또한 왕에 대한 복종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다. 앞쪽에 차면 왕에게 반역한다는 뜻이다.
 
자바와 달리 수마뜨라와 깔리만딴, 브루나이는 끄리스를 앞쪽에 찬다. 또 자바는 주로 농업 지역이지만 다른 섬의 사람들은 거친 바다나 숲에 의지해 살아가기 때문에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 선미에서 뛸 때 끄리스를 잃어버리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앞쪽에 차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 음뿌의 손길을 통해서 끄리스의 예술성과 영적인
음뿌는 문학•역사•신비주의•비술의 지식 그리고 과학에 대한 지식까지 갖춘 존경받는 끄리스 장인 예술가이다. 음뿌는 철광석과 니켈 층을 여러 겹으로 둘러 칼날을 만든다. 고급 끄리스 칼날의 경우 금속은 수백번 내지 수천 번 겹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끄리스는 신과 인간의 결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음뿌 예술가가 있다.

끄리스의 미적 가치는 다뿌르(dhapur: 칼날의 형태와 디자인, 약 40가지 변형 포함), 빠모르(pamor: 칼날에 선, 곡선, 원 얼룩, 점 또는 모티브의 형태, 금속 합금 장식 패턴, 약 120가지 변형 포함), 그리고 땅구(tangguh, 끄리스의 제작 연도와 제작 장소,역사의 함축성을 포함) 등의 요소로 평가된다.여러 번 끊이고 담금질 할수록 빠모르의 문양은 정밀하고 뚜렷하다.
 
▲보통 음뿌는 흰색 두건과 흰색 의상을 입고 제작에 임한다.(사진출처: kratonjogja.id)
 
끄리스의 제작 과정에서 의례는 필수적이다. 모든 의식은 끄리스를 작업하기 위한 올바른 마음가짐을 준비하는 것이다. 음뿌는 기도를 하고 금식을 한 후에 금속을 가공한다. 다양한 금속의 혼합물인 모든 재료는 광산처럼 자연을 착취하거나 자연에 해가 되는 방식이 아니라 환경보존을 위해 자연이 제공하는 그대로 사용한다.
 
음뿌, 조수(판작), 의뢰인은 신과의 교류를 함께 하고자 끄리스 형태와 문양을 만드는 기간과 필요한 영적의식을 의논한다. 음뿌는 개시의식(위위딴)이 끝나면 금속을 세척(와수)한다. 이후 불에 달궈진 금속을 망치로 쳐서 철의 불순물을 제거한다.
 
또한 세척은 음뿌와 의뢰인의 나쁜 기운을 씻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다음은 백철을 끄리스에 문양을 넣고 접는 공정인데 이때 위니빠모르, 즉 빠모르의 기본문양이 만들어진다.
 
이어지는 접는 공정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일상생활에서 노력하고 실천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로 달군 금속이 접힐 때까지 수천 번 두드리는 과정은 인간은 이상을 좇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 신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나서 와자(강철)를 넣는다. 자바어로 와자는 힘이나 치아를 의미하고 이 부분이 끄리스의 칼날이 된다. 위니빠모르에 넣는 강철은 단단하고 예리하고 강인한 인간의 영혼을 상징한다. 와자를 위니빠모르에 넣는 과정을 닐로록이라고 하는데, 이는 영혼의 정수를 찾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인간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이 핵심이다.
 
닐로록 공정 다음으로 최종 모양은 길쭉한 금속판이며 그 다음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자른다. 이를 꼬도깐(Kodhokan)이라고 한다. 끄리스 제작 과정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꼬도깐을 만드는 과정은 사실 거꾸로 진행되는데, 위가 아래로, 아래가 위가 된다. 이것은 끄리스에는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창조자를 만나는 본질이 보편적임을,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한 창조자임을 말한다.
 
다음 단계는 빠모르 공정이다. 빠모르 문양은 위니빠모르 상태에서 작업할 수도 있고, 닐로록 공정 이후에 만들 수도 있다. 꼬도깐 각인 작업을 끝으로 기본작업이 종료된다.
 
다음 공정에서는 끄리스를 줄칼로 다듬고 세밀하게 조각한다. 다뿌르(끄리스유형)에 맞춰 끄리스 모양이 만들어지면 이어서 돌로 상글링 과정을 거친다. 상글링의 목적은 본래의 모습을 지키면서 끄리스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것이다. 니켈과 강철의 경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금속 혼합물을 문지르면 빠모르에 문양이 나타난다.
 
다음 단계는 끄리스를 날카롭게하고 탄력성을 더하는 세뿌이다. 끄리스는 끝은 단단하고 아래는 탄력이 있어야하는 뾰족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코팅이 된다는 것은 뭔가 더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더 나은 사고방식,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을 상징한다. 세뿌를 마치면 끄리스는 상글링 단계로 돌아가 황과 소금이 섞인 용액에 끄리스를 적시는 공정을 한다. 이 단계에서 끄리스의 구멍이 열리고 선이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이후 비산에 담그는 와랑 단계로 이어지는데 색은 더욱 선명해지고 선은 뚜렷해진다. 비산은 철과 강철을 검게, 니켈을 희게 만드는 성질이 있어서 와랑 단계가 지나 빠모르라고 불리는 추상적인 장식 문양의 색이 살아난다. 와랑 단계가 완료되면 끄리스에 오일 코팅을 한다. 비산은 녹은 방지하나 유독하다. 따라서 오일로 코팅하면 끄리스 주인의 건강이 상하지 않게 된다. 끄리스 제작 과정이 끝나면 칼집을 만든다.

투투판(종료) 의식을 거쳐야 완전히 마무리된다. 투투판 의식은 주로 밤에 진행되며 끄리스에 새겨진 상징적인 가치를 의뢰인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투투판 의식의 절정은 주변 지역을 왼쪽 방향으로 도는 축제로 조화로운 인간의 삶을 말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끄리스가 주인의 비전이 담긴 문화적 작품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의뢰인에게 전달된다.
 
이처럼 제작 과정을 통한 음뿌(Empu) 세밀한 손길을 따라가 보면, 끄리스가 인도네시아인에게 영물(靈物)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있게 된다. 정성과 영감이 들어간 단검을 중심으로 풍부한 영성과 신화가 발전했다는 것을 있다.
 
디뽀느고로 왕자는 많은 끄리스를 가지고 있었다. 끄리스의 보호로 그는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가져간 노고 실루만(Kiai Nogo Siluman) 끄리스가 있고, 디뽀느고로 왕자의 분신 같았던kiai ageng bondoyudo 끄리스는 그의 시신과 같이 묻혀 있다고 한다.
 
자바 전쟁(1825~1830)이 끝나고 1831년에 Cleerens 대령이 노고 실루만 끄리스를 Willem 1세 왕에게 네덜란드 승리의 선물로 바쳤다. 그 끄리스는 그동안 네덜란드 라이덴 박물관에서 보관했는데 마침내 2020년에 인도네시아로 돌아왔으며 지금 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되어 있다.
 
1805년에 디뽀느고로 왕자가 남쪽 해변 (Pantai Selatan)에 있는 유령 동굴 (Gua Siluman)에서 밤을 보냈는데, 그 때냐이 로로 끼둘 여신은 빛의 모습으로 디뽀느고로 왕자에게 왔다. 실루만 끄리스가 자바의 남해에 던져져 신의 세계의 문이 열려, 디뽀느고로 왕자와 남쪽의 여왕 라뚜끼둘을 연결했다. 끼둘이 네덜란드인을 추방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힘의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디뽀느고로 왕자는 세상의 일에 신(초자연의 세계)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처럼 끄리스가 인간 세계와 신(초자연적)의 세계를 연결하는 일화도 있다.
 
수디르만 장군은 게릴라 전쟁동안 항상 위험(재난)을 방어하는 끄리스를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그 끄리스는 동부 자바의 빠찌딴(Pacitan)에 있는 이름없는 꺄이(Kiai, 이슬람교의 지도자)의 선물이었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지 4년 후, 즉 1949년 1월 초에 네덜란드 항공기가 중부 자바의 응안죽 (Nganjuk) 마을에서 폭탄을 투하고 게릴라 요원들을 찾고 있었다. 수디르만의 게릴라군은 궁지에 몰렸고, 네덜란드군의 포위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항공기가 마을을 접근할 때 수디르만 장군은 8명 친구에 의해 둘러싸여 마법의 힘을 가진 많은 가보인 끄리스를 꺼냈다. 그리고 끄리스를 앞에 놓고 기도를 했다. 신비롭게도 그 끄리스는 스스로 서서 하늘로 쳐들었다가 네덜란드 항공기가 가까워질때 천천히 땅으로 기울어졌다. 그 순간에 네덜란드 항공기는 멀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지금도 자바 남자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끄리스라고 했던 음뿌의 말이 떠오른다.
“자바의 모든 남자는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집에 한 자루의 끄리스가 있어야 합니다. 12세 이상의 남자는 끄리스를 차고 다녀야 했습니다.”
 
자바인들은 죽으면 선악에 관계없이 그 영혼이 선조로부터 받은 물건, 즉 가보(家寶) 안으로 들어간다고 믿는다.이 가보는 뿌사까(Pusaka)라고 한다. 끄리스는 대표적인 가보이다.
 
디뽀느고로 왕자의 부장품 kiai ageng bondoyudo 끄리스 빠모르에 촘촘히 박힌 문양의 여정을 읽어본다. 순간 칼날이 번쩍인다. 바람의 골짜기에서 번쩍 휘둘렀던 검. 지난 길은 허공으로 지우면서 끄리스와 함께 가자. 얼마나 먼 길을 말을 타고 달려왔나. 빠모르를 담금질하는 그 불꽃처럼 수백광년 인도네시아를 위해 이렇게 조용하게 불타리라.
 
▲끄리스 사진 (출처  id.wikipedia.org )
 
▲끄리스 사진(출처: researchgate.net)
 
 
 
<참고 출처 >
유네스코 ICHCAP웹사이트)
누산따라 끄리스 박물관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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