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178)Lalapan 속에서 만난 흐릿한 기억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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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lapan 속에서 만난 흐릿한 기억 하나
최장오
▲까마중(인도네시아에서는 Ranti 또는 Leunca로 불림) (사진=구글이미지 캡처)
천둥이 먹구름처럼 번져오면 시름은 먼
기억의 저편으로 마중한다, 유월의 장마 끝에 피어난 샛노란 오이 꽃인 냥……
엄마 등 위에 잠든 아이,
여물지 않은 손가락 사이 새까만 까마중 알갱이
잠꼬대처럼 매달려 있다
마늘 밭에서 천덕꾸러기 같이 마늘 대 위로 웃 자랐던 까마중
마늘보다 더디게 익어간다
황량한 사막의 둔덕처럼 텅 빈 마늘 밭,
선인장인 듯 그럭저럭 서너 그루만 서 있다
장마비에 질척하게 익어가던 새카만 까마중
입 속에서 터지며 던지는 아릿한 달콤함이 엄마의 등 냄새를 닮았다
채 익지못한 까마중 한 알 입 속에서 또 터진다
마늘 향기 같이 아린, 흐릿한 기억을
Lalapan 속에서 다시 만났다
***시작노트
마당 끝 혹은 채마 밭 가장자리, ‘땡꼴’로 불리던 앙증맞은 열매가 있었다. 달콤하고 행복한 어린시절 기억이 내 손끝에서 묻어난다.
그 땡꼴을 인도네시아의 식탁 위, 채반(‘Lalapan’이라 부름)에서 발견하고 천둥 같은 그리움이 먼동이 되어 다가왔다.
어머니 등에서 잠을 자던 내가 본능적으로 알아버린 행복이 이런 맛 아니었을까?
추수가 끝난 마늘 밭에 남아있던 까마중(땡꼴)……
사월의 김매기에서 살아남은 것은 우연을 가장한 어머니의 손길이었음이 나를 아리게 한다.
▲ Lalapan-인도네시아 모듬 생야채, sambal에 찍어 먹는다.(사진=구글이미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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