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181) 어떤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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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혼
김현숙
칠년이나 우리와 지내던 아이가
팔자를 고치게 생겼다
허고헌날 바람을 피우던 남편과 헤어진 뒤
돌배기 딸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이리저리 남의 집 살이하며 아이를 건사했다
초등학교 동창인 서른 여섯 늙다리 총각과
2년을 사겼다는데, 다음 달 결혼을 한단다
신원은 확실하니 마음이 놓이다가도
자꾸 손해를 보는 것 같다
결혼하면 혼자 시골로 내려가
아픈 몸으로 농사짓는 시부모를 도와야 한단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만 하기로 했단다
고된 바깥일은 안 해도 된단다
가뜩이나 편한 팔자 더 편하게 생겼다
팔자를 고치려면
도무지 몇 번을 다시 살아야 하는가
그래서 바뀌는 걸 당신은 본 적이 있는가
건기인지 우기인지
바람도 끈적이는 오후,
별반 새로울 것도 없을 삶에
아이는 오래 묵은 물건들을 차곡차곡 챙긴다
복잡한 마음의 갈피를
헌 옷 속에 담아 꾹꾹 누른다
(사진=조현영)
** 시작노트
7년을 가족처럼 지냈던 아이를 떠나 보내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인생의 선배가 되었다가, 엄마의 마음이 되었다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선택을 하든, 선택을 당하든, 동아줄처럼 질긴 게 남녀 간의 인연인 줄 알면서도 말리고 싶은 마음 또한 숨길 수가 없습니다. 현실의 고충보다 인연의 소중함에 가치를 두는 삶을 살기 바라며……그래도 지금의 팔자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고 또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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