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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33) 경제 발전(위기)과 중앙은행의 독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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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287회 작성일 2020-04-0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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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발전(위기)과 중앙은행의 독립성
 
김성석 / UPH 경영학부 교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여러 번 연준이 지속적으로 이자율을 높인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발전된 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많은 나라들이 이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제도를 바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쉬웠던 국가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없더라도 중앙은행이 정부의 시책을 시행함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또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더 높아지는데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면서부터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갖추기까지의 상대적으로 긴 시간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의 중요성을 어떤 면에서 잘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32년간 수하르또 정권하에서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의 역할과 그 결과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정책 금융의 실행처로서 중앙 은행
1965년 9월 30일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반공산주의 성격이 강하던 군부의 장성들을 죽이고 집권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루도 못되어 이 사태는 군부에 의해 진압됩니다. 9.30 사태는 군부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지원하던 모습을 지녔던 수카르노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습니다. 이 후 수카르노는9.30 사태를 수습하면서 등장한 수하르토에게1967년에 정권이 이양되게
 됩니다. 수하르토는 유엔과 IMF와 같은 국제 기구의 복귀와 말레이시아와의 대립 정책의 청산 등으로 구질서(orde lama)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신질서(orde baru) 시대를 시작합니다.
 
1945년 헌법과 빤짜실라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내세운 신질서 하의 정부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경제였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1966 한 때 1500%에 이르렀던 (Hill, 2001, p.45) 초인플레이션입니다. 지나친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존하는 구질서 시대의 정책의 실패를 본 신질서 정부는 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지나친 역할을 줄이고 시장과 민간에게 참여 기회를 주는 정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Grenvile, 1990, p.134). 이런 정책 기조에 의해 수많은 제도들이 바뀌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중앙은행의 변화입니다.
 
수하르토 정권의 첫번째 내각인 암페라 내각(Kabinet Ampera)은 1966년 7월 그동안 내각의 일부로 편재 되어있던 중앙은행의 위치를 독립적인 국가 기구로 격상시키게 됩니다. 이러한 조치는 그동안 하나의 은행(Bank Tunggal) 정책의 폐지를 의미하며 또한 중앙은행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첫단계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그 역사를 서술하면서 1966 당시 여전히 인도네시아 국립은행 제1국으로 불리웠지만, 중앙은행으로서 정치적인 결정으로부터 자율성을 지키며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BI, 2007)
 
이후 1967년 시행된 은행법(UU No.14/1967)에 따라 기존의 ‘하나의 은행’(Bank Tunggal) 정책이 폐지되고, ‘하나의 은행’으로 묶여 있던 은행들은 중앙은행과, 여러 개의 국립은행들로 구분되게 됩니다. 중앙은행에 대해서도 1968년 새로운 중앙은행법 (UU No.13/1968)이 시행되게 됩니다. 다시금 중앙은행은 인도네시아은행(Bank Indonesia)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몇 가지 변화를 가져옵니다. 대표적인 것은 중앙은행으로서 상업은행의 업무를 취급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1953년의 네덜란드의 상업은행인 자바은행(De Javasche Bank)을 중앙은행의 업무를 담당함으로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시작했기에 지녔던 상업은행의 성격을 이제 완전히 지우게 된 것입니다.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었던 상업은행으로서의 역할은 다른 국립은행들에게 이전되었는데, 예를 들면 이리안 자야에 있었던 상업은행의 역할을 하던 중앙은행 지점은 폐지되고 수출입은행이 그 업무를 인수하게 됩니다(BI, 2007).
 
1968년 중앙은행법은 루피아의 가치 안정과 경제 성장과 또한 일자리 창조를 통한 국민 생활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중앙은행의 주된 업무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통화 정책의 시행, 은행의 감독과 쇄신 등의 일반적인 중앙은행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국가 발전을 뒷받침하는 역할, 특별히 ‘정책 자금 조달’의 역할을 부여받게 된 것입니다.
 
중앙은행 뿐 아니라 다른 국립은행들의 역할도 1967년 이전에는 정부 재정 적자의 융자에 머물렀습니다(Grenville, 1990.p.133). 그러나 새로운 변화 속에서 처음으로 일반 국민들의 저축을 통한 자금을 확보하기 시작하였고 실제로 국립은행들은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약 80%의 경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였습니다. 중앙은행은 여러 국립은행을 통해 정부의 정책 금융의 방향에 따라 특정 산업과 사업들을 지원하는 자본을 조달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만 인도네시아은행은 중앙은행으로서 직접적인 자본 조달의 양과 분배를 통제가 아닌 여러 국책은행들과 새롭게 등장한 민간은행을 통한 간접 통제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은행은 일반적인 금융 정책으로 알려진 지급 준비율 정책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은행권을 감독하여 그 총량을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은행이 중앙은행으로서 행한 여러 통화 정책 조차도 실제적으로는 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Grenville, 1990. p.140).
 
1967년 이래로 인도네시아은행은 독립된 정부 기구가 되었고, 인도네시아은행 총재, 재무부 장관, 그리고 통상부 장관으로 구성된 통화위원회가 있었지만, 통화위원회의 의장은 인도네시아은행 총재가 아닌 재무부 장관이었습니다. 또한 정부의 대출은 국회 (MPR)의 동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골까르당(Golkar)으로 대표되는 집권당을 반대할 수 있는 야당의 힘은 매우 약했습니다. 이런 사정들로 인하여 중앙은행으로서 인도네시아은행의 독립성은 부족하였습니다.
 
독립적 국가 기관이지만 실제로 이 시기에는 정부의 정책을 시행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던 것은 인도네시아은행 총장 들의 행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신질서 시대의 초기 약 15년 인도네시아은행 총재는 라디우스 프라위로 (Radius Prawiro, 1966-1973) 와 라흐맛 살레 (Rachmat Saleh,1973-1983) 두 분이었습니다. 1968년 중앙은행법에 따르면 중앙은행 총재의 임기는 5년이었는데, 프라위로는 인도네시아은행 총재를 역임한 이후 통상부 장관 (1973-1983), 중소기업부 장관 (1978-1983), 재무부 장관 (1983-1988), 경제금융 산업과 개발조정 장관 (1988-1993)을 역임합니다.
반면 살레는 통상부 장관(1983-1988)을 역임합니다. 이 분들의 행보는 분명히 그 분들이 그 분야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결과임을 의심할 여지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 총재로서 그들의 역할은 금융 정책의 독립보다는 정부 정책의 실행에 중점을 두었던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인도네시아은행(BI) 트위터 계정)
 
2. 경제 성장과 경제 위기
중앙은행의 독립성과는 상관없이 1967년 이후 시장 중심과 민간 참여로 바뀐 경제 정책의 변화는 인도네시아에 눈에 띄는 경제적인 성과들을 가져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는 초인플레이션 현상이 단기간에 사라지고 안정된 것입니다. 1969년의 인플레이션은 15%로 억제됩니다(Hill, 2001). 물론 석유 가격의 폭등 시기인 1973,4년에는 30%가 넘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으로 관리됩니다. 더 나아가1971-1981 시기에는 실질 GDP 성장률이 7.7%에 이르고 적어도 5%에 이르는 결과를 이루어냅니다 (Hill, 2001. p.24). 1968년에 15% 정도이던 2차 산업과 55%에 이르던 농업의 비중이 1974년을 기점으로 약 30%대로 비중이 같아지고, 1980년 초기에는 25% 이하로 농업의 비중이 들어들고, 2차 산업과 서비스분야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Hill, 2001. p.29). 정책 금융으로 산업 구족의 개선이 급격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정부의 정책 금융과 시장이 함께 성장하는 데에는 분명히 충돌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Hill, 2001, p.57). 관 주도의 금융과 자본 시장이 성장은 상대적으로 느렸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는 1977년에 다시 주식 시장을 개설하였지만, 주변의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그 발전 속도는 느렸습니다. 예를 들어 1992년을 기준으로 볼 때, 인도네시아 주식 시장은 GDP 대비 7%였습니다. 반면 필리핀은 36%, 타이는 59%, 싱가폴은 109%, 그리고 말레이시아는 153%에 이르렀습니다 (Hill, 2001, p.57).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정책 금융과 보조금이 주도하던 금융은 시장의 자율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갔습니다. 1983년 은행 관련법의 개정으로 금융 시장의 자유화가 이루어지고, 인도네시아은행은 중앙은행으로서 은행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을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여 시행하게 됩니다.
 
정책 금융과 보조금의 잘못된 산업 또는 기업에 투자되고 더불어 국민경제 발전에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정부 주도의 금융 정책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Hill, 2001, p. 57). 예를 들어1974년 원유가의 폭등으로 국영 석유회사인 뻐르따미나(Pertamina)는 당시 인도네시아GDP 1/6에 이르는 수익을 내게 됩니다. 당시 정치인들이 뻐르따미나를 사금고처럼 사용하였었는데, 1975년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해외 채무 변제 능력이 상실되어 국유화해야 했습니다. 이 국유화로 인도네시아 정부의 해외 채무는 이전에 비해 두배로 증가하였습니다. 1975부터 1977년까지 뻐르따미나에는 전체 은행권의 대출의 27% 이상의 대규모 자금이 투자되어야 했습니다(Grenville, 1990, p.138).
 
어쩌면 독립적이지 못한 중앙은행으로, 중앙은행이 정부의 정책 금융의 집행자가 되었을 때 치루어야 할 댓가는 이 정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율성을 가지고 금융 정책을 펼치지 못한 중앙은행은 결국 금융 위기를 불러오고 국민 경제 파국을 가져옵니다 (Sucipto, 2008). 수찝또(2007)는 수카르노의 구질서(Orde Lama) 시대가 초인플레이션이 끝난 것과 수하르토의 신질서(Orde Baru) 시대가 경제 위기로 끝난 원인을 독립적 금융 정책을 가질 수 없었던 중앙은행에서 찾고 있습니다. 두 번의 큰 실패가 경험 이후 1999년에 인도네시아 중앙은행법이 개정이 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법 조항으로 명시가 됩니다.
 
*참고 문헌
Bank Indonesia, (2007) Sejarah Kelembagaan Periode 1966-1983. https://www.bi.go.id/id/tentang-
bi/museum/sejarah-bi/bi/Pages/sejarahbi_1.aspx
Bank Indonesia, (2007) Sejarah Kelembagaan Periode 1983-1997. https://www.bi.go.id/id/tentang-
bi/museum/sejarah-bi/bi/Pages/sejarahbi_1.aspx
Greenville, S. (1990). Kebijaksanaan Moneter dan Sektor Keuangan Formal. dalam Anne Booth dan Peter McCawley (eds.), Ekonomi Orde Baru, LP3ES, pp.132-165.
Hill, H. (2001). Ekonomi Indonesia ed ke-2. Pt RajaGrafindo Persada.
Sucipto, H. (2007). Independensi Bank Indonesia dari masa Orde Lama dampai Orde Reformasi dan prospeknya ke depan (Doctoral dissertation, Universitas Gadjah Mada).
 
* 이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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