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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48) 자카르타 그리고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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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399회 작성일 2020-07-2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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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그리고 전염병
 
노경래
 
 
남부 자카르타에 있는 리뽀몰 끄망에 자주 들렀다가 그럴듯한 레스토랑들이 있는 끄망 라야로 가곤 한다. 리뽀몰에서 끄망 라야로 가기 위해서는 차량 두 대가 교행이 어려운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그 골목길을 지날 때 마다 느끼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참 무던하다고…….
 
그 골목길의 초입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오르막길이다. 그런데 그 오르막길에는 항상 하수구의 물이 넘쳐 흘러내리고 있다. 오르막길 위쪽의 하수구가 더 이상 연결되지 않고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두 발로 걷는 자는 이 시커먼 물을 신발 바닥에 적시지 않고는 이 길을 오르내리지 못한다. 
 
그 오르막길 중간은 한 뼘 정도 깊이로 가로로 길게 파헤쳐진 포트홀이 있는데, 이 포트홀에 하수구 물이 고여 작은 시궁창이 되어 있다. 이 길을 지나는 차나 오토바이는 이 포트홀을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물론 이 오르막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차나 오토바이 바퀴에서 물이 튀기지 않을까 긴장하며 지나간다.
 
이 포트홀 옆 길가에는 조그만 와룽(warung)이 있다. 이 와룽에서 포트홀 쪽으로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전거 한 대가 놓여 있다. 이 자전거는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어 이게 진짜 자전거인지 조각가 뇨만 누아르따(Nyoman Nuarta)의 작품인지 헷갈린다. 이 자전거를 그렇지 않아도 좁은 길에 떡하니 놓은 것은 지나가는 차나 오토바이의 바퀴에서 시궁창 물이 튕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와룽 주인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두 사내가 허리를 쭉 펴기도 어려운 낮은 높이의 비좁은 와룽 속에서 물건을 판다. 봉지 커피나 여러가지 스낵과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네모난 유리 상자에는 여러 종류의 담배가 담겨져 있다. 시궁창이 흐르는 길 옆에서 담배나 과자를 파는 것을 보니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을런지 의심이 들지만 그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도 담배를 물고 핸드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번뜻하게 들어선 리뽀몰과 바로 인접한 이 와룽, 와룽 앞 길을 흐르는 시궁창 물, 그 길을 조심스럽게 지나는 차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토요타 벨파이어를 타고 이 길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시궁창 물이 자신들의 신발에 묻는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이 더러운 물이 묻은 차 바퀴를 자기 손으로 직접 세차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궁창 길을 매번 걷는 사람이나 오토바이로 건너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자카르타 북부 루아르 바땅 지역 수상가옥  (사진: 노경래)
 
뭔가 잘못된 것에 대해 항의하거나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 싫은 소리 하기 싫어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그런 행동을 기대하는 것 자체를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애써 그렇게 생각해도 여전히 화가 난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관심을 갖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말라리아 같은 유행성 전염병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카르타에서 또 발생될 것이다. 
 
사실 자카르타는 지난 400년 동안 여러가지 전염병을 겪었다고 알려져 있다. 예부터 자카르타는 국제도시로 외국인의 출입이 잦고, 더구나 유럽인들이 거주를 시작하게 됨에 따라 각종 전염병에 노출이 되어 왔다. 그것보다도 자카르타의 열악한 공중보건과 위생이 여러가지 전염병을 불러왔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바타비아를 점령한 이후 바타비아는 여러 차례 콜레라를 겪었다. 바타비아에 도시가 건설되고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슬럼가가 생겨나고, 거주자들이 강에 쓰레기를 버리자 콜레라가 발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콜레라를 무기로 전쟁을 하기도 하였다.
 
쿤(Coen) 총독이 지배하던 1629년에 마타람 이슬람 왕국의 술탄 아궁이 바타비아를 마비시키기 위해 강물을 막고 물에다 동물의 사체를 버리는 전술을 구사했다. 
그 전술은 실패했다. 어차피 네덜란드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전투가 아니었다. 역사학자 아돌프 호이큰(Adolf Heuken)는 자신의 저서 <자카르타 유적지들(Historical Sites of Jakarta)>에서 “마타람 군인의 절반가량이 굶주림, 병, 과로, 처벌 및 네덜란드 총탄으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쿤 총독은 1629년 당시 바타비아에 창궐한 콜레라로 인한 복통으로 죽었다. 
 
술탄 아궁 자신도 1645년 전염병으로 죽고 족자에서 인도양 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이모기리(Imogiri) 언덕에 있는 술탄 왕족의 묘지에 묻혔다.
술탄 아궁 묘지로 오르는 계단 아래에는 바타비아에 있었던 쿤 총독의 묘지에서 도굴해 온 유품이 묻혀 있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바타비아에서는 1600년대에 문둥병이 발생하는데, 문둥병 환자들을 바타비아와 땅그랑 경계 지역에 격리시켰다. 몇 십 년 지난 후 이 지역 문둥병 환자들은 뿔라우 스리브 섬 중에서 바타비아에서 가장 가까운 비다다리(Bidadari) 섬으로 이전 격리되었다. 이삼십년 전에 이 섬에서 수백 개의 사람뼈가 발굴되었는데, 이 사람뼈와 접촉한 한 발굴 요원이 최근에 문둥병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동인도회사가 군무원이나 유럽인들을 위한 병원을 짓기 전에 중국인 공동체가 1640년에 먼저 바타비아에 병원을 건립하였다.
 
동인도회사는 1700년대에 장티푸스, 말라리아, 수두, 이질로 인한 사망자를 기록하였다. 네덜란드 식민정부는 1800년대에 공중보건소, 백신 접종자 양성 학교, 병원 등을 바타비아에 건설했다.
 
이들 의료 관련 시설들은 고위층과 그 가족들을 위해 운영되었고, 항상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바타비아 원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원주민들은 전염병(hawar)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자무(jamu)나 주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바타비아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은 말라리아라고 할 수 있는데, 1733년 말라리아로  2천명에서 3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말라리아는 적도 일대에서만 발생되는 전염병이지만 주로 사람들의 열악한 위생 및 공중보건 시스템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된다. 말라리아는 1939년에도 바타비아에서 유행하였다. 
 
바타비아에서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많았던 이유는 바타비아에는 망그로브가 자라는 해안 저지대의 진흙탕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고고학자인 짠드리안 앗따히얏(Candrian Attahiyyat)에 따르면, 망그로브 숲을 거주지, 항구, 어류 양식장 등으로 개조한 후에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버려진 연못 등이 기생충을 옮기는 모기의 좋은 서식처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1900년대 초반에도 바타비아는 연달아 콜레라로 거의 마비되었다. 
 
예전에 자카르타를 휩쓴 병의 병원체가 여전히 오늘도 존재하고 있다. 지금 건너고 있는 이 오르막길에 시궁창물이 멈추지 않는 한 자카르타에서 전염병은 다시 발생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 특히 이 지역 주민 – 하수구를 연장하여 시궁창 물이 이 길에서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도록 구청에 연락하여 조치를 취하게 하거나 항의하거나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항의하는 사람은 예의 없는 사람일테니까…….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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