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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89) 내 눈 앞에 마시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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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154회 작성일 2021-11-1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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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 앞에 마시멜로
 
조현영 
 
 
인도네시아 코로나 상황이 많이 가라앉고 있다. 점점 내려가는 공식적인 코로나 수치들은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모른척 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백신접종률도 높아지고 여러 커뮤니티 활동 규제도 완화되니 적어도 겉으로는 ‘위드 코로나’ 시대로 가까워지는 듯 하다.
 
자...이제 2년 여를 꼼짝없이 갇혀 지낸 시간에 대한 보상을 좀 받아야겠다.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한다.
 
탁 트인 공간에서 지루하지 않게 운동할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활동. 골프를 다시 하기로 했다.  
 
                                                                       (사진=조현영)
 
구력만 따지면 나는 이미 프로급이어야 하지만 그 동안 꾸준히 할 수 없기도 했고 명랑골프를 지향하는 나는 여전히 ‘백돌이’다. 무엇이 됐든 변화와 발전이 있으려면 그 만큼의 투자와 노력이 비례해야 하는데 나는 그저 공 칠 기회가 될 때 어쩌다 한번씩 나가는 정도였으니까, 구력 20년 백돌이의 핑계지만 사실 아쉬움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에 공만 후딱 치고 부랴부랴 집으로 오지 않아도 된다. 시간에 쫒길 일이 없어졌다. 내 시간을 나누어야 할 대상이 이제 없기에 나는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신이 났다.
 
마침 친한 지인들도 골프를 시작했다. 약속을 하고 설레이며 그날을 기다렸다. 중년의 나이에 무엇인가 설레임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되게 기분 좋은 일이다. 젊어지는 기분이랄까…온라인 샵에서 골프용품을 찾아보고 입을 골프복이 없다며 투덜대는 일도 즐거웠다.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카트를 운전하며 느껴지는 바람이 좋았고,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그늘진 길을 걷는 것도 좋았다. 풀숲에 빠진 공 옆에 핀 고운 빛의 꽃은 또 그렇게나 예뻤다. 먹구름 덮힌 잿빛 하늘 아래 초록잔디 위 그 사이에 서 있을 때 시공간에 머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좋았다. 같은 곳을 향해 땅을 밟고 걸으며 나누는 지인과의 유쾌한 대화도 좋았다. 아이스커피 아닌 살 얼음 얼린 냉커피가 좋았다.
 
스코어만 빼면 모든 것이 좋았다.  
 
나는 명랑골프를 지향한다. 함께 치는 지인들의 실력이 늘어가고 나보다 멀리 가는 비거리를 옆에서 보고 있자니 샘이 났다. 아닌데, 나는 명랑골프를 지향하는데…아 샘이 난다... 나는 명랑골프를 지향.…나 잘 치고 싶어졌다.
 
욕심이 명랑을 넘어서면서 공 치러 나갈 생각뿐이었다. 골프연습장에서 무식하게 휘둘러댔고 급기야 혼자 라운딩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코어까지 좋아보겠다고 명랑을 버리고 욕심을 부린 결과는 참혹했다. 옆구리가 아팠다. 며칠 지나 괜찮은 것 같아서 또 나갔다가 다시 아파졌다. 무리한 스윙과 과도한 힘의 불균형의 결과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스트레스성 늑골 골절 쯤 되는 것 같다. 골프병이라는 별명까지 있는 것을 보니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싶은 이상한 안도감과 함께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집에 눌러앉아 안정을 취해야만 했다.
 
평소에 뭐든 열심히 하지 않는 내가, 열심히 해서 탈이 난거다. 분하다.
 
며칠 뒤에 정말 참가하고 싶던 라운딩 일정이 있다. 정말이지 가고 싶다. 두 마음이 요동친다.
(아직 완전히 좋아지진 않았지만 살살 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아서라.. 완전히 나을 때까지 쉬어야 다음에 더 안전하게 오래 즐기지…)
 
나는 지금 마시멜로를 눈 앞에 둔 어린 피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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