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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07) 별 볼 일 없으신가요? (남십자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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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017회 작성일 2019-10-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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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으신가요?
-남십자성 이야기
 
노경래
 
어렸을 적 새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세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말 별 볼 일 없게 된 것 같습니다. 마음에서 순수가 사라지면 별도 같이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인도네시아, 특히 자카르타에서는 별을 보려 해도 잘 보이지도 않지만, 가끔 바람이 서늘한 밤에 뜰 앞에 나서 보면 머리 위에는 유명한 길라잡이 별들과 은하수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설마 북극성이나 북두칠성이 어디 있을까 찾지는 않으시겠지요? 인도네시아 적도 지방에서는 북극성은 보이지 않고, 북두칠성도 중간에 사라집니다. 대신 남십자성(南十字星)은 인도네시아에서 거의 연중 볼 수 있습니다.
 
 
남십자성은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1개가 아닌 4개의 대표적인 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남십자성이라기 보다는 남십자자리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일반적으로 혼용되고 있습니다. 라틴어로는 Crux, 영어로는 Southern Cross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남십자성을 Bintang Pari(‘가오리별’) 또는 Gubuk Penceng(‘갈퀴 보관소’)이라고 합니다. 
 
옛 항해자들에게 남십자성은 대표적인 길라잡이 별이었습니다. 아마도 나침반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남극을 찾을 때 주로 이용된 내비게이션 별이었을 것입니다. 북반구의 북극성(Polaris)에 해당하는 별자리인 셈이죠. 남십자성은 북극성과는 달리 천구(天球; 별들이 거기 같은 거리에 콕콕 박혀 있다고 가정한 상상 속의 둥그런 하늘 천장)의 남극(celestial south pole)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항해자들이 남십자성을 찾는 이유는 천구의 남극 중심에 밝은 별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십자성은 원래 켄타우루스자리의 일부였으나, 1679년 프랑스의 천문학자 Augustin Royer에 의해 독립된 별자리로 표시됩니다.
 
오늘날 국제천문연맹이 공인한 별자리(Constellation; 하늘의 별들을 찾아내기 쉽게 몇 개씩 이어서 그 형태에 동물, 물건, 신화 속의 인물 등의 이름을 붙여 놓은 것)가 88개가 있고, 이중에 남반구에 속하는 별자리는 48개인데, 남십자성은 작지만 모양이 매우 뚜렷하고 밝아 오래 전부터 남반구의 길잡이별 역할을 해왔습니다.
 
 
북반구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남십자성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옛 항해자들은 남반구로 가기 위해 우선 오리온자리를 먼저 찾았을 것입니다. 오리온자리는 천구의 적도(celestial equator)에 걸쳐 있는 눈에 띄는 큰 별자리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꾼인 오리온에서 기원합니다. 옛 항해자들은 오리온의 검(Orion's Sword)의 방향을 기준으로 남쪽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후 남십자성을 찾았겠죠.
 
남십자자리는 알파별(Acrux), 베타별, 감마별, 델타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밝은 별인 알파별은 우리의 눈으로 보면 88개 별자리 중 12번째로 밝으며(겉보기 등급 0.86),  지구에서 510 광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알파별의 빛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포르투갈인들이 말라카 해협을 탐험하기 시작한 무렵에 알파별을 출발하여 초속 약 35만Km를 달려 이제 우리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남십자성이 밝기 때문에 옛날에는 항해자들을 선발하기 위해 시력검사를 할 때 남십자성을 찾는 것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옛 항해자들이 남극을 어떻게 찾았을까요? 정확히 천구의 남극에 존재하는 별자리는 없습니다. 천구의 남극에 가장 가까운 별자리는 천구의 남극에서 1° 가량 떨어져 있는 시그마성(Sigma Octantis)인데, 이 별은 겉보기 등급이 5.45등급으로 어둡고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구의 남극에는 좀 떨어져 있지만 밝고 모양이 십자인 남십자자리를 찾는 것이 훨씬 용이하였을 것입니다.
 
 
천구의 남극을 찾기 위해 남십자자리의 세로축에 해당하는 감마별과 알파별을 연결하여 4.5배 연장한 지점을 찾거나, 감마별과 알파별의 연장선과 Southern Pointers의 알파 및 베타 켄타우루스 사이를 직각으로 연장하는 선이 만나는 교차점을 찾았다고 합니다.
 
남십자성은 남위 35°(호주 캔버라 인근) 이남에서는 연중 관찰이 가능합니다. 남위 35° 이상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관찰 가능 시간이 줄어들며, 북위 25°(오키나와 인근)에서는 한 두 달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평선에 아래에 있게 됩니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당연히 남십자성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인도네시아(남위 10° ~ 북위 5°)에서는 10월을 제외하고는 특정 시간 대에 연중 관찰이 가능합니다. 물론 자카르타는 맑은 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육안으로 남십자성을 볼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서구에서는 남십자자리에 대한 유명한 신화나 전설이 거의 없는데, 이는 원래 남십자자리가 켄타우루스자리의 일부였고, 남반구의 별자리 이름의 대부분은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이후인 16세기부터 생겨나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또한 십자가라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어 다른 전설을 추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반면, 남반구의 많은 국가나 단체에서 남십자성을 문양이나 로고에 사용하고 있으며, 애국가, 가요, 시 등에서도 남십자성을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반구 원주민의 신화나 전설에는 십자가가 아니라 새나 가오리 또는 농기구의 생김새를 가진 별자리로 인식하였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농업 국가가 많고,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가 많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중국의 대부분 지역과 한국에서는 남십자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신화나 전설을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가요나 문학 작품에서 남십자성이 종종 언급되고 있으며, 남십자성은 주로 ‘희망’의 상징으로 많이 인용되었습니다.
 
현인의 <고향만리>(1948)의 가사는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 속에 보면/ 꽃이 피고 새도 우는 바닷가 저편에/ 고향 산천 가는 길이 고향 산천 가는 길이/ 절로 보이네/ 보르네오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을/ 알아주어 우는 거냐 몰라서 우느냐/ 기다리는 가슴 속엔 기다리는 가슴 속엔/ 고동이 운다’입니다.
 
이 노래는 태평양 전쟁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일제에 의해 자바, 보르네오, 수마트라 등에 끌려가서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가야 했는데, 일제가 패망하자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며 기쁨에 들떠 있는 - 실제로 그들은 바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범재판에 회부되는 등 고초를 겪지만 - 이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라고 합니다.
 
이육사는 <노정기(路程記)>(1937)에서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중략)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춰 주도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육사는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에서 쫓기듯 살아온 지난날의 여정에서 남십자성을 희망의 좌표로 여겼던 것입니다.
 
요즘은 바빠서 별 볼일 없다는 분들을 위해서나, 날씨가 좋지 않아 남십자성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고 하는 게으른 분들을 위해 별자리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앱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라도 별자리를 찾아 나서서 어렸을 때 새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세던 기억을 회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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