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128) 프라무디아를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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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무디아를 기억함
시. 채인숙
우리는 모두 망명자였다
꺾어진 길목마다
적도의 풀이
칼날처럼 흔들렸다
기도는 하지 않았다
서로의 죽음을 목격하였으나
나를 거부하고서야 비로소 내가 되는
망명의 독본을 완성할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삶을 구걸할 수는 없었다
부루의 망루에서
편인지 적인지 모를
누군가의 눈길에 갇혀있을 때조차
브란타스 강이
피로 물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조차
그림자극의 인형들은
오직 그림자의 힘으로
인생을 벼린다
하물며 인간이야!
프라무디아 전시회에서 (사진=manzizak)
*프라무디아 아난타 투르 (Pramoedya Ananta Toer)
:인도네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로 손꼽히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수없이 거론되었다. 수하르토 체제 아래 강제수용소와 가택 연금, 출판 금지 등의 핍박을 받으며 체제 저항의 상징적 존재로 알려졌다. 필기도구조차 허용되지 않는 부루 섬 수용소에서 구술로 완성한 ‘부루’4부작은 28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자신을 가두고 원고를 불태웠던 수하르토 정권이 막을 내린 후에도 그는 여전히 스스로가 ‘내적 망명’ 상태에 놓여있다고 고백했다. 2006년 그가 타계했을 때 세계의 언론들은 제3세계 탈식민지 문학의 큰 별이 졌음을 애도하였다.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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