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130) 쿠키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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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를 추억하다
김현숙
쿠키 하나
눈부신 하얀 햇살
반짝이는 비늘하나 허공을 난다
무중력을 거스르고 땅에 닿으려는 몸짓,
이내 저쪽 어딘가로 사라진다
티셔츠에 박힌 털 하나
올 사이로 빠져
가슴 안쪽을 찌른다
오래 전 가룻(Garut),
오른발이 꺾인 채
절룩이며 내게 오던 아이
그 이상한 몸짓이
골동품이 된 편견을 부수고
오랫동안 열지 않은
냉동고 속 모성애를 달구었다
자카르타 찌네레(Cinere),
가룻의 아이와 똑닮은 너를
이산가족 상봉하듯 만나고
'가룻'하고 입술을 내밀면
에델바이스 군락을 싸고돌던
맑은 바람소리가 났다
쿠키 둘
서로 비껴가는 운명을 만났다
설렘은 짧고
그리움은 길어
가룻의 골목마다 서늘히 내리던 그늘
사려는 덜하고
열정은 넘쳐
땅속에서 부글거리던 뜨거운 눈물
살다가 이상한 일이 생겼다
단 한 번 가본 곳이 고향이 되고
그토록 짧았던 인연이 자식처럼 가슴에 묻히는 일이
(사진=조현영/manzizak)
**시작노트
가룻(Garut)이 종종 그리운 가장 큰이유는 나의 애견, 쿠키와의 인연을 맺어준 곳이기 때문이리라. 네덜란드 강점기에 '자바의 스위스'로 불렸다던 명성답게, 단내 나는 서늘한 공기와 초록으로 덮인 경치가 사뭇 이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곳에 사는 지인의 강아지가 눈에 밟혀 자카르타 오자마자 헤어진 가족을 수소문하듯 찾아나섰던 아이가 바로 쿠키였다. 3년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된 전부였지만, 우리가족 모두 서로가 그와 더 특별한 사이였음을 은근히 자랑하곤 한다. 그 후로 가끔씩 나조차 낯선 나를 발견한다. 단 한 번 가본 곳을 고향인양 그리워하거나, 잠깐 스친 인연을 가슴에 묻고 아파하거나.
*이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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