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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25) 맹그로브 숲에 가면 발가벗은 너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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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361회 작성일 2020-02-05 10:32

본문

맹그로브 숲에 가면 발가벗은 너를 만날 수 있다
 
시. 최장오
 
 
맹그로브 숲에 가면
바다가 가져다 준
달고 짭조름한 맛을 볼 수가 있지
썰물이 가져다 준 질그릇 닮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길게 난 상처를 치료하듯 둥그렇게 색칠을 하지
맹그로브 숲에 가면 맑은 수채화를 그릴 수 있어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낸 크로키 같은 영화
서로가 기대고 엉켜 영화를 볼 수가 있지
서로의 둥지를 떠나 함께 동행하는 친구
뿌리와 뿌리 사이로 숨바꼭질하 듯 서로 몰래 만나지
맹그로브 숲에 가면 친구를 만나 가벼운 영화를 볼 수가 있어
 
밀물에 밀려온 이야기들
구름과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들
자잘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개펄 같은 이야기
맹그로브 숲에 가면 갯 냄새 묻어나는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짠물을 퍼 올려 너를 정화하듯 하얀 부정맥의 촉수들
천수천안관음보살이 현신인 양 자비로운 천 수를 흔들어
바닷물 머금은 새초롬한 향기를 전해주지
 
머물 데 찾아 오대양을 휘 돌아 닿은 곳
생명을 품어내는 넉넉한 모성을 볼 수가 있지
물속에서 썩지 않는 강한 모성을 볼 수가 있어
맹그로브 숲에 가면 마른 품에 너를 안을 엄마의 포근함을 만나지
 
맹그로브 숲에 가면 발가벗은 너를 만나게 되지
성난 군중의 함성처럼 밀려오는 바람을 피해
맹그로브 잎사귀에 숨어있는 발가벗은 너를 만나지
 
 (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 /Aditya Irawan)
 
 
**시작 노트
 
오래 전 치기만만한 시절에 텐트 하나없이 찾았던 만리포 해수욕장,가끔씩 그때 생각에 공포스런 전율을 느낀다.
 
잔잔하게 포말을 일으키던 바닷물이 갑자기 폭풍을 동반한 해일이 되어 몰아치던 밤, 도망치듯 숨어든 소나무 숲은 무섭게 울부짖던 바다로부터 미약한 우리를 밤새도록 지켜 주었다.
방풍림의 고마움도 모른 채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해수욕장……
 
날로 인간 세상이 빠르게 진화해 가는 것 같지만 자연 앞에서 늘 작아지는 우리는, 맹그로브 나무 뒤에서 발가벗은 채 떨고있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이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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