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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50) 당신은 자랑스런 한국 교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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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1건 조회 6,354회 작성일 2018-08-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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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랑스런 한국 교민입니다!
 
조은아
 
 
아시아게임으로 인도네시아 전체가 들썩들썩한 요즘, 수도인 자카르타는 평소보다 더 많은 이방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당연하다. 자카르타에 살고 있지 않은 나 조차도 자카르타 밤 나들이를 하게 되는 걸 보면, 이 땅을 찾아온 이들이나 이 땅에 살고 있었던 이들 모두에게 특별한 설레임 일 것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나는, 나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년 간의 재외국민생활 중 가장 깊은 생각을 하게 한 사건 아닌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시안 게임 개막식이 있은 며칠 후, 나는 한국에서 방문한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자카르타의 어느 한국 식당을 가게 되었다. 역시나 꽤나 북적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나의 거주지가 자카르타가 아니다 보니 긴 자리는 갖지 못하고 그저 아시안 게임과 각자의 삶을 안주 삼아 맥주 한 두잔 가볍게 즐기고 일어서 나가는 중에, 살짝 열린 방문 안쪽으로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했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 출전한, 꽤 유명한 어느 팀의 감독과 TV로 한번쯤은 봤음직한 기자 몇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 저 분들…반갑네…’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가던 그 순간, 정말 우연히 나는 듣지 않아도 될뻔한 그들의 대화를 듣고 말았다. 누군가 감독에게 교민을 위한 사인을 해 달라고 부탁한 모양이었다. 감독은 단 몇 초의 여지도 없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교민? 교민들이 해 준 게 뭐 있는데 싸인을 해줘?” 
 
그리고 이어지는 조롱 섞인 웃음들. 누구 하나 ‘당신이 틀렸소’라고 얘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는 열악한 선수촌 시설에 대한 토로였다.
술 마신 자의 오만인가, 들은 자의 교만인가. 어떻게 내 감정을 정리해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생각보다 더 많이 좋지 못했던 체류 여건이 그들을 예민하게 만든 탓이리라 생각하면서도 울분이 삭혀지지 않았다.

‘이런 인격을 가진 자가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그 밑에서 꿈을 키워 나가는 선수들까지 걱정’이라는 오지랖까지. 
교민으로서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팀을 꾸려 사비로 응원팀을 꾸리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티켓 구매 대행이며, 응원 도구 제작을 한 사람들이 한 순간에 싸인 한 장도 아까운 존재로 전락시켜 버리는 그 감독의 말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그 옆에서 함께 웃던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 서넛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너희가 지금 이 타국에서도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열심히 식당을 꾸려온 교민인 이 식당 주인의 덕이고,너희 팀 경기에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던 사람들도 절반 이상은 우리 교민이야!’
당장이라도 뛰어들어가 따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그 식당 안의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 터이니 함부로 취객들을 자극할 수도 없었다.

‘그래, 차라리 내가 들었으니 다행이지. 넌 운이 좋았어’라며 자칫 벌어질 수 있었던 대형 참사를 내가 막았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아, 나는 또 내일 있을 그 감독 팀의 경기 관람을 위해 새벽에 현장 예매분 티켓을 사기로 했던가. 당장이라도 함께 가기로 한 친구에게 취소하자는 전화를 하고 싶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이번 아시안게임을 위해 정말 시간과 돈과 정성을 들인 교민들까지 다 싸잡아 들어야 할만한 말은 정말 아닌 것 같았다.
 
그들에게 메달은 그들을 응원하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 그들 개인의 영달이 90%이상이요, 나머지는 조국의 이름이 빛나는 것쯤이 되려나? 적어도 내가 아는 인도네시아 거주 한국 교민들은 모두가 훌륭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살고 있으며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만난 어느 교민 하나 내 나라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어떤 의견 충돌을 보이다가도 내 조국과 국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한 마음으로 응원했고 같은 마음으로 아파하고 위로했다.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처음 겪는 우기에 남편의 천식이 심해져 몇 일 동안이나 밤 잠을 못 자고 있었다. 당시에는 현지어가 서툴러서 근처 병원을 갈 엄두도 못내고, 당장 한국으로 갈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한 교민 커뮤니티에 사정 얘기를 하고 어떤 약을 사면 되는지 문의했다. 그랬더니 하루 만에 어느 아주머니께서 연락을 주셨다. 자카르타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잠시 왔다 갈 수 있겠냐고. 남은 약이 있으니 나눠주겠노라 하셨다. 급한 마음에 아침 눈뜨자 마자 처음 가보는 자카르타 시내 어느 아파트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제 갓 돌지난 아기와 세 살된 큰 아이. 낯선 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유독 사람을 많이 경계할 때였다. 고마운 마음에 차 한잔 대접하려했지만 낯선 사람들 틈에서 내 옷자락만 꼭 잡고 놓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아주머니가 손수 주스를 주문해 가져오셨다.
당신도 천식이 있어 서울의 큰 병원에서 약을 지어왔는데 곧 한국에 갈 일이 있어 돌아가면 다시 지을 수 있으니 가져가 남편을 주라 하셨다. 당신 스스로가 천식의 고통을 잘 알고 있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어린 애들하고 힘들어서 어쩌니…”하시며 손을 잡아 주실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버렸다. 그 날 나는 친정 엄마가 너무 생각나 밤새 울었다.

세상 어느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진심으로 남을 위로하며 살고 있을까. 짧은 견문과 다른 외국 친구들을 보더라도 난 자신한다. 우리들만 가능한 일임을. 우리가 이곳에서 재외국민으로 살고 있는 동안, 단 한번도 서로를 도와본 적 없는 이도, 크고 작은 도움을 단 한번도 받아보지 않은 이도 결코 없을 것이다.
 
나는 안다.
그 어느 나라 민족들 보다 한국인은 해외에서 더 빨리 현지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공부하고 그들과 더 빨리 친해져 한국을 알린다.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교민은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크게 웃고 가장 잘 뭉치는, 현지인들이 인정하는 가장 멋진 민족이다.
물론 때론 우리끼리도 서로 다른 이념, 종교, 생각으로 주거니 받거니 다툼을 벌일 때도 있다. 내 집안에서도 큰소리가 오갈 수 있는데 개개인의 그 많은 다름을 어떻게 하나가 되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디든 ‘한국’이라는 조국의 이름이 붙으면 우리는 하나가 되고 위대해진다.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나름 열심히 교민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국에서 오는 관람객을 위해 무료 픽업을 해주고, 경기장까지 카풀을 하고, 정보 나누고 목이 터져라 함께 응원한다. 그래서 나는 기죽지 않을 것이다. 길 가다가 만난 어느 이에게도 해 줄 수 있는 사인 한 장도 우리 교민에겐 아깝다는 그 옹졸한 치의 말은 나도 그를 무시함으로 공평해지기로 했다.

내가 오늘 목이 쉬도록 응원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너를 위함이 아니라 내 조국과 동포를 위함이니까.
언젠간 그도 알 날이 있으리라.  당신이 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서면서 그 어느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더 큰 환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서 터를 닦고 땀 흘리며 아름답게 살아온 우리 교민들의 노력이 큰 몫이었다는 것을.
 
2018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사진=조은아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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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su님의 댓글

punsu 작성일

국가대표 감독이면 실명을 밝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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