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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53) 가정부, 유모, 운전기사와 공생공존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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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475회 작성일 2018-09-1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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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부, 유모, 운전기사와 공생공존 하기 프로젝트!
 
- 인도네시아 사람 관리를 위한 합리적인 매뉴얼 필요하다 -
 
김순정(순정아이북스 출판사 대표, 북칼럼니스트)
 
 
인도네시아에 살게 되면서 나를 웃게도 만들고 슬프게도 만드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겼다. 바로 가정부(Pembantu) 유모(Suster) 운전기사(Sopir) 그들이다. 인도네시아에 살면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저렴한 인건비로 그들을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000개 섬에 다종족이 퍼져 사는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종족과 만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가사노동을 해주는 가정부, 유모, 운전기사를 쓰기 위해서 반드시 부자일 필요는 없고 중산층 정도면 그들을 고용하여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할 수 있다.
아시아게임을 2번이나 치르고 올림픽까지도 넘보고 있는 나라지만 아직도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처럼 중산층 이하 국민들의 소득과 삶의 질은 매우 떨어진다. 그런 탓에 저소득층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거주 외국인 집에 일자리 찾고 한국인은 본국에서는 쉽게 쓰지 못하는 그들을 고용하면서 좀 더 편안한 삶을 보장받으며 살아간다.
 
물론 추가 ‘가계 고정지출’이 발생하지만 그들을 고용하지 않으면 더운 나라에서 생산적인 일과 효율적인 비즈니스를 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날씨도 덥고 낙후된 도로와 대중교통시설로 자가운전이 쉽지 않아 현지 도로 사정에 익숙한 운전기사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집안의 청결 유무가 아내의 몫이지만 여기서는 가정부가 대신한다. 그 덕분에 나는 아이 둘을 양육하면서도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고 한국과 일을 할 수 있고 가끔은 책도 읽을 수 있다. 또 쇼핑몰이나 슈퍼마켓에서 장도 편하게 보고 수월하게 음식준비도 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 발령받은 주재원이나 사업하시는 분들의 아내들은 올 때는 오기 싫어서 울지만 갈 때는 가기 싫어서 운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하신다. 이렇듯 인도네시아에서 행복한 생활을 위해 없으면 불편한 그들. 하지만 사람이 잘못 들어오면 없을 때보다 더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호불호가 갈리는 그들은 정말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이 행운일까? 불행일까? 우리는 평화로우면서도 지혜롭게 그들과의 공생공존법을 찾아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 (사진=김순정)
 
-한국에 없었던 새로운 인간관계에 도전하기:
  현지인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그래서 한국인이 인도네시아로 이주하거나 정착하기에서 꼭 한번 겪어야 할 일이 있다면 가정부 유모 운전기사와 잘 지내는 일이다. 나 역시 그들을 고용하고 함께 지내면서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이 인간관계를 지혜롭게 잘하고 싶었다.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운 도전이자 숙제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가족처럼 편한 관계로 대할까? 아니면 ‘상하 관계처럼 대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출퇴근하는 운전기사를 제외하곤 가정부와 유모는 한 지붕 아래 한 식구처럼 같은 공기 마시며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보다 더 자주 보면서 얽혀서 지내니 특별한 관계로 다가왔다.
 
타국에서 행복하고 재미있게 삶을 배가시키려면 현지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해 그들과 아름답게 공생 공존하려는 노력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관련 서적부터 열심히 찾아서 공부하였다. 나는 어떤 편견도 없이 그들과 소통하며 객관적으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했다. 나는 인간적인 관점과 문화적인 관점 그리고 신앙적인 관점, 비즈니스적인 관점 등 종합적인 프레임을 고려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문화가 달라도 너무 다른 현지인들:
손님인 우리가 그들의 삶을 먼저 이해하고 들여다보기
 
내가 인도네시아에 처음 와서 놀란 것은 입주식 가정부 방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아무리 남의 집에서 일한다지만 쉬고 잘 곳이 너무도 협소하고 열약했다. 식사할만한 작은 식탁조차 없고, 정수되지 않은 찬물로 목욕해야 하는 그야말로 한집에서 살면서 바라보는 것조차 안쓰러웠다. 이 더운 나라에서 에어컨 설치는 꿈도 못 꾸는 그들의 강퍅한 삶.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인도네시아에 대한 문화적인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성 인권 차원이었을까? 아니면 말로만 듣던 동남아 여성들의 열약하고 팍팍한 삶이 고스란히 느껴져서였을까?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저렇게 산다는 것이 마음 아팠고 그들에 비해 풍족하게 사는 나는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마저 몰려왔다.
 
내가 만난 가정부와 유모들은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남의 집 살이’를 강행한 어린 소녀부터 이혼 후 혼자되어 남편대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학비를 벌기위해 나온 그녀들까지 그 사연들도 정말 다양했다. 지금도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아침에 청소할 때마다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지 예쁘게 화장을 하고 당둣(Dangdut) 노래를 흥얼거리던 능글스럽지만 유쾌했던 오자. 한국의 포대기인 겐동(Gendong)을 능숙하게 착용하고 와르떡(Warteg) 음식의 진수를 선보였던 에띠. 감기 기운이 있는 날이나 피곤한 날은 만병통치약 카유풋 오일(Cajuput oil)을 바르고 동전으로 끄로깐(Kerokan)을 즐겼던 띠니. 귀신이 무서워서 매일 밤 방에 불을 켜고 잠이 들었던 애미. 파리, 모기, 바퀴벌레, 개미 떼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잡았던 이나, 한식이 낯설어 동치미를 국으로 알고 팔팔 끓이고 양념에 재워둔 생소고기를 스시처럼 접시에 담아왔던 이들까지.
 
실상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이 불행할 것이라는 나의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그들은 항상 밝고 낙천적이었다(한국에서의 바쁘게 살다 온 나로서는 인도네시아식 친절과 그들의 미소에 반해버렸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여성들을 볼 때마다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장점이 있는 그들이다. 열악한 환경도 잘 견디는 참을성과 인내심은 정말 대단했다. 참을성과 인내심은 세계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더워도 대부분은 히잡을 쓴다. 그게 안쓰러워 내가 덥지 않냐고 물으면 어려서부터 착용해 와서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강인하다. 가정을 책임지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여성이 많고 임신 후에도 씩씩하게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더운 나라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부지런하다. 평균 기상 시간이 새벽 5시이다.
 
더욱이 먼저 화내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으니 참 신기할 노릇이다. 또한 대부분 신앙심이 매우 깊었다. 종교를 중시하여 하루에 몇 번씩 기도를 드리며 하루에 2번씩 아침과 오후에 목욕으로 자신의 몸을 소중하고 청결하게 다룬다. 쁠란 쁠란(Pelan Pelan)~묵묵히 인내할 줄 아는 사람들. 자유로운 영혼으로 현재를 즐길 줄 알아 큰 땅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 듯 웃고 지낸다.
 
하지만 때로는 목숨보다 소중한 돈 앞에서는 정말 약한 그들이다. 교육률이 낮아서인가. 아니면 이슬람 종교로 인해 많이 소유한 사람의 물건을 함께 나눠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외국인을 대하는 사회 인식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범죄인지 기본적인 부분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성질 급하고 이해관계를 분명히 따지는 한국인들은 그들과 지내면서 많은 답답함과 속상함을 호소한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오랫동안 그들과 일해 온 나의 친한 지인이 한 말이 기억난다. 인도네시아 사람과 가까이서 함께 일을 해보니 그들만의 특징이 있다고 했다. 첫째, 너무 느리다. 뛰어오라고 해도 뛰지 않는다. 둘째, 피니쉬가 어렵다. 끝마무리가 잘 안 된다. 셋째, 한국 사람과 일하면 다 한국 사람이 돈을 투자하는 줄 안다. 넷째, 나쁜 말은 하지 않는다(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해하지 않을까 해서). 다섯째, 식민지 근성이 있어서 그런지 시키는 일만 잘한다. 결국엔 창의력이 없고 일의 성장 발전 가능성이 적다는 소리 로 받아들여진다.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와 가치관과 마인드와 경험이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그들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그들과 문제에 봉착하다: 어디까지 이해하고 케어(Care)할 것인가
 
나도 그동안 가정부와 유모와 운전기사 때문에 몇 번의 피해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일을 하기로 결정이 나면 안정성 확보를 위해 KTP(인도네시아 주민등록증) 사본을 받아두지만, 막상 피해가 생겼을 때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를 호소할 길은 경찰을 부르는 일인데 인도네시아는 경찰이 오히려 더 큰 무리한 요구(?)를 해온다는 것은 모두 알고 계실 것이다. 그래서 피해가 발생해도 ‘해외에 사는 기회비용이다’ 생각하고 스스로 안위하고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는 ‘한인 신문고’라도 개설되면 얼마나 좋을까? 오죽 답답하면, 한인회에 조심스레 요청하고 싶은 마음 간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그런다고 해결이 될 문제는 아니지만, 치안이 불안하고 좀도둑이 많은 이 나라에서 ‘한인 신문고’라도 생기면 ‘한국인들은 그런 공동체가 있다!’고 입소문이라도 난다면 조금이라도 방지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나는 반대로 궁금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어떤 점들이 좋고 불편한지를 말이다. 내가 아는 그들은 한국 K-POP 정도는 이해하고 대체로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인에 대한 호감은 있지만 기본적인 한국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또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서는 좀 버거워하는 눈치였다.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 현지인 적응 능력지수’를 높이려면 상황에 따라 두 가지 태도를 균형 있게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첫 번째는‘가족경영 스타일’로 대하는 것이다. 기존 고정관념을 조금 벗고 그들과 친구처럼,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업무 효율성 위주의 고용주와 피고용인으로 지내는 것이다. 사회생활 하듯 비즈니스 파트너를 대하듯 그들을 대하는 것이다. 나는 두 가지 태도가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해 나의 동거인들과의 관계개선 유지를 위해 조금씩 적용해 보았다. 여기서 그들과 함께 공생 공존했던 지혜를 조금이라도 공유하고자 한다.
 
Action 1. ‘가족경영 스타일’ : 고정관념을 깨고 친구처럼 지내기
 
나는 그들에게 월급을 주지만 기본적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 비용으로 그들을 쓴다는 것은 큰 행운이자 기회인지도 모른다(그들이 일반규범과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딴마음만 먹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어차피 그들에게 ‘뇨냐(Nyonya)’라고 불리는 타국에서 온 매달 월급을 주는 안주인에 불과하지만 서로 통하고 공감하고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나눌 때 행복은 배가되고 서로가 성숙할 수 있는 배움의 길로 인도한다고 나는 믿는다. ‘프랜드 십’이든 ‘가족 같은 마음’이든 내가 그들과 잠시 스쳐 가는 인연일지라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관계로 남길 바란다.
 
나의 인도네시아 동거인들은 단순히 가사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다. 든든한 지킴이이자 조력자로 일인다역을 충분히 해준다. 이방인인 나보다 인도네시아 사회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고 인간관계도 더 긴밀하다. 또 나이 상관없이 격의 없이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문화인 탓에 정보에도 능한 편이다. 또 그들은 나의 바하사 인도네시아 선생님이다. 아파트 매니지먼트에서 사람이 찾아왔을 때나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나 나를 대변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고 또 여행지 놀러 가서나 장을 보러 가면 나를 대신해서 물건값을 흥정해 주는 중계자 역할도 해준다. 또 운전기사는 충실한 수행비서 역할도 감당한다.
 
이렇게 함께 매일 부딪히면서 나의 일손을 도와주는 그들에게 공과 사를 딱 정해서 선을 지어 대하기 어려웠다. 똑같은 현실이라도 기왕이면 그들을 존중해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을 새로운 가족처럼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식구처럼 여기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불편함이 없었다. 나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잘하는 그들에게 나 역시 그들의 남편(아내), 아이들, 남자(여자)친구까지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곤 하였다. 가족이란 같이 식사를 하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공동체 아니던가(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아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잘하는 편이라 생각한다).
 
가정부 에까(EKA)와 유모 미니(MINI)는 정직하고 성실해서 내가 가장 신뢰했던 이들이다. 그녀들은 정말 내가 동생들처럼 대하는 친구들이다. 둘 다 람뿡(Lampung) 시골 출신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것보다 자카르타에서 일하면 백만 루피아 정도 더 받을 수 있기에 먼 자카르타행을 감수했다. 그녀들은 식사 때가 되면 대충 와르떡의 길거리 음식이나 인도미 라면을 사다가 세끼를 해결하였다. 나는 함께 삼발뜨라시, 템뻬 고랭, 깡꿍, 른당, 나시고랭, 미고랭, 소또아얌 등을 만들어 먹자고 제안했다. 미니는 인도네시아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았다. 그녀는 나의 인도네시아 요리 스승이었다. 평소에도 인도네시아의 향신료와 음식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인도네시아 음식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요리법을 알려주었다. 그녀들을 통해서 인도네시아 음식이 다채롭고 강렬한 맛이 가득하다는 것을 더욱 느꼈다(사실 제대로 된 요리라기보다는 붐부 뻔예답(Bumbu Penyedap) 즉, 조미료를 굉장히 많이 사용해서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반대로 나 역시 그녀들에게 한국의 음식을 해주고 싶어서 삼계탕, 불고기, 오징어볶음, 잡채 등을 할 때는 일부러 넉넉하게 장을 보다가 직접 음식을 해주었다. 한국 과자나 라면도 즐겨 먹을 수 있게 하였다. 한국에 다녀올 때면 작은 선물이라도 사다 주었다(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처음에는 뇨냐가 해준 음식을 먹기를 불편해하고 미안해하더니 이내 익숙해졌는지 곧잘 먹게 되었다. 그녀들이 피곤해할 때면 남편과 나는 비타민이 든 영양제를 챙겨주었고 감기에 걸리면 한국에서 사 온 감기약도 건넸다. 함께 살면서 그녀들의 건강까지 염려해야 하니 이게 가족 아닌 가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한 그녀들의 가족이 아프거나 힘든 일들이 있을 때는 기꺼이 남편의 동의를 받아서 도왔다.
 
집에서 가정부, 유모와 함께 만들어 먹은 소또아얌 (사진=김순정)
 
가족처럼 따듯하게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더니 더 열심히 일해준 것은 물론이고 고스란히 사랑과 감사로 되돌아 왔다. 난 그저 그들이 마음으로 기억하길 바랄 뿐이지만 쭈띠(Cuti)로 고향에 다녀올 때면 뚜한과 뇨냐를 위해 빈손으로 올 수 없다며 끄르뿍(Keruput)이나 간단한 그들만의 별식을 선물로 건넸다. 또 자신의 가족들이 자카르타에 오면 일부러 인사하러 오곤 했다. 자신들의 상황이 더 빠듯할 텐데 나까지 배려하는 마음이 그 선물의 값어치를 떠나서 타국에 사는 기쁨과 소소한 행복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가족경영 스타일 Tip>
1. 그들도 진심으로 대하면 진심으로 대한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은 말과 태도로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2. 함께 먹는 데서 정이 생긴다. 함께 음식도 만들어 먹고 매월 외식도 같이 해보자.
3. 일정 금액 내에서 가족이 아플 때나 결혼을 할 때 지원하기
4. 대화의 공통점을 찾아서 그들의 사생활을 조금씩 공유하기. 함께 인도네시아 TV 시청도 괜찮다.
5. 나에게 불필요한 것은 아낌없이 기증하기: 크기가 맞지 않은 옷이나 방치된 주방 도구들, 아기용품 등을 기증한다.
6. 그들의 환경을 개선해 주자. 대부분 방이 비좁기 때문에 쾌적성이 중요하다. 그들의 베개나 이불 등을 시원한 것으로 챙겨준다.
 
Action 2. 고용주와 피고용인으로 지내기: 권위적 관리자 모드로 대하기
 
위에서의 경우처럼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면서 그들과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지만, 대부분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태도가 안 되어 있어서 실망인 경우가 더 많다. 항상 미소 짓고 웬만하면 화를 내지 않은 인도네시아식 친절에 때론 감동이지만 때론 사람 속을 알 수 없게 만들거나 무책임하게 행동한 경우이다.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친절하다가도 자신의 상황이 바뀌면 의리가 정말 없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의리’라는 단어는 인도네시아처럼 다민족이 사는 나라에서는 오히려 불편한 코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만약 당신이 성향이 좋지 못한 현지인과 동거해야 할 상황이라면 단호하게 그들과 고용주와 피고용인으로 대면하면서 지낼 필요가 있다. 한순간 그들이 절도범으로 돌변하여 더 악화된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선은 우리가 그들에게 잘 대해주었는지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 고용주는 피고용인 가정부나 유모 그리고 운전기사에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부는 그들이 가난하고 정식 교육을 덜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이 땅의 주인들이고 우리가 그들의 땅을 잠시 돈 주고 빌려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엄연한 직업인이다. 더욱이 그들도 부모에게는 소중한 자식이며 한집안의 가장이며 아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모르면 잘 가르쳐주고 잘 대접해 주면서 원리 원칙하에 기준을 세우고 권리와 의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물론 인도네시아에서 살려면 그들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대비하고 방지책을 세우는 것은 필요하다. 세상이 갈수록 험해져서인지 인도네시아 거주 한국인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아무래도 한국인은 금전적인 부분에서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피고용인들이 대부분 저소득층이어서 삶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그래서 일상이 가불의 연속이다. 때가 되면 ‘누가 아프다, 아이의 학비를 내야 한다, 오토바이가 고장 나서 바꿔야 한다’ 등의 이유로 돈을 빌려 달라고 요구한다. 그럴 때는 거절을 쉽게 못하는 나의 성격상 매정하게 자를 수도 없고, 모르는 척할 수도 없어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무한정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말없이 결근하는 운전기사는 출근 못하는 이유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변명한다(변명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다 똑같은 모양이다). 그 핑계들은 앞뒤 이해가 안 되는 모순투성일 때가 많다. 고용 관계 내용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개인 사정만 요구한다. 출근한 지 며칠 안 된 운전기사가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며칠 쉬게 해주고 백만 루피아의 조의금까지 주었더니 바로 그만둔 적이 있다. 또 어떤 운전기사는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해서 잠자고 있는 핸드폰을 빌려주었더니 그다음 날부터 잠적까지 한 적이 있다.
 
무방비 상태의 한국인들은 언제나 작게는 집안의 수저부터 핸드폰, 귀중품, 자동차 분실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불안하다. 특히 간이 큰 회사 직원들은 회사의 공금까지 횡령하니 이 정도면 ‘외국인은 호구인가? 기본적인 양심은 있고 부끄러운 줄은 알까? 죄책감이라는 것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때로는 그들이 감정표현을 안 해서 힘들 때가 있다. 좋게 보면 온순한 것이지만 그들이 네, 네(ya ya) 해도 겉과 속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적정한 대응을 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자바 정신이 그들의 행동 양식이자 미덕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대화의 기술이 서툴거나 자신의 상사에 대해서 진심 어린 대화를 꺼리는지도 모르겠다.
 
고용주가 피고용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한번은 유모랑 고급 레스토랑에 갔는데 자신의 식사와 음료를 별도로 시켜주지 않았다고 기분 나쁨을 대놓고 표시하면서 서럽다는 듯이 울거나 월급을 받은 그다음 날, 야반도주를 감행한 가정부(아침에 사람이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또 처음에는 순하고 참한 유모였는데 애인이 생기자 돌변하기도 했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겪을 때면 정말 당황스럽다. 또 청소기, 밥솥, 커피 메이커 등 한국 가전제품 작동법이 너무 어려워서이었을까. 고장 난 생활 전자제품이 한두 개가 아니고 AS해야 하는 상황도 빈번했다. 그들이 잘못 사용해서 고장 난 물건들에 대해서 정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말 책을 한 권을 써도 모자랄 만큼 별의 별 일이 다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인도네시아 땅과 인도네시아 사람을 사랑하지만 정말 상실감이 찾아온다.
 
한국인들은 이런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사전에 막아 보자 해서 <인니 tip> 밴드가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거나 안 좋았던 운전기사나 가정부, 파출부, 유모에 대한 신상 정보를 올려 공유한다. 그 밴드장님이 밴드 취지의 글을 올리신 것을 잠시 들여다보려고 한다. 모두 동감하시리라.
 
''개인적으로 이 밴드를 만들려고 했던 이유는 기사와 식모는 인도네시아 삶에서 교민사회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는 상황을 바꿀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만들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인이건 한국인이건 타인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는 범죄입니다. 우리 밴드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대부분 물건을 훔치거나 차량을 훔치거나 혹은 휴대폰과 돈 등 타인의 재물을 훔치는 행위에 대해서 올라온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경찰에 구속이 됐다거나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았다는 글들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 밴드 회원 분들의 수가 이렇게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사람을 잘못 고용하면 잠깐 몸은 편할지라도 그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대단하다. 한집안에서 감시할 대상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힘든 일인가. 그래서 ‘가정부복 유모복 운전기사복’ 있는 사람이 인도네시아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 중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인 스타일 Tip>
 
1. 교육 매뉴얼부터 만들자
회사 신입사원 워크숍처럼 한국인 집에서 일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교육 매뉴얼을 만들어 설명하자. 그리고 그들의 신상정보를 바탕으로 특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관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될 것이다.
 
2. 가정부와 유모, 운전기사의 업무 매뉴얼 만들기
우리 가정에 맞는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보자. 감정적인 대응이 아닌 객관적인 대응을 하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일하는 시간을 정확히 지켜 달라. 비용 지출 시에는 반드시 영수증 첨부를 해야 한다 등을 기재해 둔다.
 
3. 업무일지 작성하기
유모에게는 아기 우유 먹이는 시간대와 변을 본 횟수 등을 기록하게 한다. 운전기사에게도 출퇴근 및 특정 지출 사항을 노트를 기록하게 한다. 가정부가 지켜야 할 사항 등은 냉장고 입구에 붙여놓고 볼 수 있게 한다.
 
4. 그들과도 소통은 통한다. 지속해서 소통하기
가정에서든 회사에서든 직원과의 소통은 기본이다. 그들은 엄연한 피고용인들이니 소통은 기본이다. 소통은 업무 효율과 성장을 배가시키기 위한 기본이다.
 
5. 월급과 휴가를 정확하게 관리한다
매달 월급 및 보너스 지출 현황을 기록해둔다. 입사일과 퇴사일은 물론이며 가불현황이나 휴가를 간 날은 물론이고 식대 등도 기록해둔다.
 
6. 그들의 장점을 찾아서 칭찬해주기
그들도 잘하는 게 하나씩은 있다. 어떤 사람을 정리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음식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전자제품 수리를 잘한다. 사람마다 장기가 다 있으니 그것을 자주 칭찬해주면 그들 스스로 능력 발휘를 할 것이다.
 
7. KTP 사본 외에 <가족관계증명서> 작성하기
KTP 사본만으로는 사고가 났을 때 대처가 미흡하다. 입사할 때 미리 <가족관계증명서>를 만들어서 그들의 실거주 주소지와 가족들의 연락처까지 확보해두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사실관계만 남음을 명심하라.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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