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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42) Sjahrial Djalil (샤리알 잘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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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224회 작성일 2018-06-2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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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ahrial Djalil
 
김현미

Kemang timur  66번지. 탄성을 자아내는 박물관을 구경하는 내내 궁금증이 일었던 그, 소박하기 그지 없는 침상에 누워 있던 그를 보았던 첫 장면이 스틸컷처럼 남아 있다.
그는 2013년 박물관 시상식에서 최고의 개인 박물관으로 선정된Museum di Tengah Kebun의 설립자이며 소유주이다.
 
 
19세기는 작가의 시대, 20세기는 평론가의 시대, 21세기는 컬렉터의 시대라고 했던가. 컬렉터는 도대체 어떤 힘으로 탄생하는걸까? 

작품은 작가에 의해서 한번 태어나고, 컬렉터에 의해 두 번 태어난다고 한다. 눈의 호사스런 즐거움, 작품을 소장하는 물욕, 과시를 위한 취미로 치부하기엔 그들의  열정과 헌신은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1976년 Sjahrial Djalil는Kemang 의 4200평방미터의 집터를 구입하여, Temi라는 젊은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1980년17개의 부속실로 구성된 박물관을 준공하였다. 2009년 박물관으로 등록된 이후 2012년 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 박물관은 그 건물 자체로 역사적 의미가 담긴 400년 된 동인도 회사의 벽돌65000장과 기상청 건물의 고벽돌 15000장과 경첩을 가져와 건립하였으며, 문은 Meester Cornelis 건물의 유일한 여성교도소 부킷두리에서 가져온 것으로 만들어졌다.
 
 
박물관은 주제에 따라 가장 선호되거나 중요한 유물의 이름을 따서, 일본, 명나라, 가루다라이언 룸, 선사시대 등등으로 명명되어 있고, 욕실 내부조차 청나라 시대의 라운지 의자19c 프랑스 석유 램프로 장식 되어져 있으며,  각나라의 국빈들이 받았던 귀품으로 채워져 있다.
이들 63개국 21개주를 대표할 만한 2400여개의 귀품들은70~80% 이상이 크리스티나 경매등 해외에서 구입되어졌다고 했다.
 
 
 
 
이들 예술품은 단지 보기위한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사용되어지는 거울과 의자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실제 사용 목적에 맞추어 진열되거나, 의도된 불규칙함으로 지루하지 않은 배열방식을 가지고 있다.
컬렉션은  새로운 창조이다.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 컬렉터들에겐 열정과 안목 없이 닿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눈 앞의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이미지를 그려낸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들인 한 점 한 점이  쌓여가며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가 되어감에 더 알고 싶고, 그 이야기를 계연성 있게 풀어 줄 그 무엇을 찾기 위해,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며, 더 깊숙한 알지 못했던 이야기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하나만으로  알 수 없었던 문화와 배경이 큰 그림이 되어, 대중들에게 그 아름다움에 묘미를 더해 주는 것이다.
 
 
1942년생으로 어린시절 역사와 정치에 관한 책을 좋아 했던 그는 20살이 되던 해부터 광고 일을 시작하여, 인도네시아 광고 기업인 Ad Force Inc 를 설립하였으며, 이런 그의 성공에 바틱 공급자였던 아버지는 그가 인도네시아의 유물을 찾아오는 것으로써 인도네시아 국가의 존엄성을 알리기를 원했다고 한다.
 
Museum di Tengah Kebun은 지역 사회에 최초로 환원되는 비영리 사립 박물관으로 컬렉터에게 미술품은 분신과도 같은 것으로, 그는 향후 15년간 박물관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 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고 한다. 대개 컬렉션 기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관건은 가족들의 동의를 받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하니 독신의 삶을 선택한 그의 결정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실제로 박물관에서 관리를 하던 50여명의 직원 모두 남자였고, 같이 골동품을 수집하였던 그의 조카 역시 독신이다)
 
 
 
 
 
 
 
 
 
 
 
나 역시 인테리어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위에 일상적인 컬렉터들을 알고 있고, 골동품을 접할  기회가 제법 있었다. 20년 전 아트 딜러인 지인과  중국 출장을 가서 북경의 시골 창고를 뒤져 찾은 대형자기가 있다. 난 그 많은 자기중 유약이 흘러내리는 모습과 색상이 자연스런 하나를 골랐다. 그 후 그  자기는 지금까지 거실 한켠을 채우고, 내 마음이 울렁일 때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잠잠히 식혀주는 그늘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내 마음에 아름다움으로 와서,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마음에 평화를 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사실 이때 추가 구입품이 있었지만, 다른 것은 모두 흘러가 버린 수업료가 되었고, 단지 이 항아리만이 내 안에 남게 되었다.
 
 
컬렉션을 할 때 각자의 분명한 기준들이 있을 것이다.  박물관급들만 모을거라든지,  문화품에 속하는 생활용품을 한다든지 등의 품목과 시대에 집중된 컬럭션 등이 되겠다.
나 역시 제법 시행착오를 거쳤고,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 이제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물건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각자의 걸어온 길과 가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아름다움을 맘에 들이는 일 , 그 아름다움에 심취해 깊이를 더 해 가다 보면 인간 본연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이렇듯 컬렉터들은 내재화된 작품의 가치를 찾아 숨결을 넣어주고, 단절되었던 역사적 가치를 연결하여 그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코드를 찾아, 다수 문화소비자의 마음에 울림을 주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 울림과 감동이 밑거름이 되어 문화가 발전되지 않았을까.
 
이제 그러한 컬렉션들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전시된 문화 공간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문화 소비자의 체험의 장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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