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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66) 거북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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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638회 작성일 2018-12-1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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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의 눈물
 
조은아 글, 그림
 
 

신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갔을 때였다. 
평소 같으면 이층 계단 난간을 타고 주루룩 내려와 내게 폭 안기던 작은 아이가 그 날은 왠일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계단 밑에 닿아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참고 참았던 눈물이 팍 터져 내 품에서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야?”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이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거북이가... 거북이가... 으앙~” 하고는 계속 큰소리로 울기만 했다.
뒤 따라 나온 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윤진이 거북이 때문에 그래.”
“거북이가 왜? 학교에 거북이가 있어?”
“아니, 오늘 학교에서 어떤 영상을 봤는데, 바다거북이 코에 긴 빨대가 들어갔는데 그걸 꺼내려고 하니까 거북이가 엄청 아파하면서 피가 막 났어.” 
 
‘도대체 아이들한테 뭘 보여 준거야’
우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 차에 태워 돌아오는 데, 도대체 그게 뭔지 궁금도 하고 아이를 울린 것에 대해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그날 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나는 유투브를 뒤져 코에 빨대를 꽂은 거북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아이가 보았다던 코에 빨대가 박힌 바다 거북이 영상은 나도 차마 끝까지 보기가 힘들 만큼 처참했다.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쉽게 뽑히지 않고 괴로운 거북이가 내는 울음과 줄줄 흐르는 핏물을 보며 수의사가 꿈인 작은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이해가 되었다. 

바다에는 빨대 공격을 당한 거북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쓰레기가 담긴 시커먼 비닐 봉지를 그대로 삼긴 거북이, 버려진 낡은 그물에 몸이 감긴 채로 살고 있는 바다물개, 플라스틱 쌓이고 쌓여 위가 파열돼 죽은 채로 발견된 고래도 있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바다 동물들의 수난사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 지는 영상들은 밤새 보아도 끝이 없었다. 
 
‘신의 섬’이라 부르고 있는 발리의 바닷 속도 그야말로 쓰레기장이었다. 저 바다에서 수영복을 입고 놀았다니. 피부병에 걸리지 않은 게 다행이구나 싶었다. 이대로라면 2050년에는 바다 속 생물의 무게보다 바다 속에 떠도는 쓰레기의 무게가 더 무거워질 전망이란다. 이제 겨우 32년 남았다.
이것은 바로 어제 오늘 시작된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플라스틱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영국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도로 지구를 점령해 나갔다. 저렴한 가격에 뛰어난 유연선과 탄력성, 강도와 내구성을 조절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가진 이 놀라운 만능 소재는 유리, 나무, 철, 종이, 섬유 등을 대신하여 케첩통부터 자동차까지 자유자재로 변신하였다. 심지어 우리의 화장대, 욕실, 부엌까지 점령했다. 

피부 각질 제거용 세안제나 치약, 샴푸, 세제, 약품 등에 들어있는 마이크로비드(Microbead)는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 나일론 등으로 재탄생된다.
1mm보다 작은 이 플라스틱 조각들은 정수 과정에서도 걸러지지 않고 하수구를 통해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이 작고 반짝이는 마이크로비드를 물고기 알로 착각한 바닷새들은 이미 주식처럼  먹으며 살고 있다. 일본에서 잡은 멸치의 80%는 체내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 플라스틱을 먹은 굴은 내분비교란물질을 배출하고, 바닷물로 만든 소금 평균 1kg당 550~681개의 미세플라스틱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작아지고 쪼개져도 플라스틱은 결코 썩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고 오히려 자석처럼 외부 오염물질을 끌어당겨 그 생존력과 위해력을 키워나간다. 
플라스틱이라는 신소재 개발의 기적은 한 세기도 되기 전에 지구의 재앙이 되어버렸다. 
 
한동안 우리는 ’웰빙‘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많은 주부들이 ’오가닉‘ ’친환경‘ 소재와 재료에 대해 예민하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건강해졌는가? 
친환경 소재로 만든 집에서 오가닉 음식과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고 꼬박꼬박 운동을 한다면 우리는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정말 믿고 있는가?
 
향 좋은 샴푸와 세제를 사용하고, 화장품을 쓰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플라스틱 성분이 함유된 그릇과 포크로 플라스틱이 위장에 가득한 태평양산 물고기를 먹고 있다. 공기와 물과 토양은 또 어떠한가?
과연 내가 아침마다 한 움큼씩 영양제를 먹는 의미는 무엇인지 내 자신에게 되물어보았다.
 
세계 쓰레기 해양 투기 2위국 인도네시아. 
최근 인도네시아도 연간 10억 달러의 예산을 들여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을 70%이상 감축하겠다고 공언하고, 재활용 플라스틱을 발리 내 도로 건설에 활용하는 등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제 길거리에서 파는 조각 과일, 음료 할 것 없이 비닐봉지에 넣어 먹고, 음식 찌꺼기, 캔, 종이 할 것 없이 한 플라스틱 봉투에 꾸겨 넣어버리고, 담배 꽁초는 길거리에, 집 앞 개천은 쓰레기와 빨래와 아이들이 공존하는 생활 모습도 곧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그 많은 오물과 쓰레기들이 비만 오면 강물을 따라 강 하류 마을로 범람해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는 현실도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피 눈물을 흘리던 거북이를 만난 이후 우리 가족도 학교도 ‘Green Education life'를 실천 중이다. 스트레스 없이 가정에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음식물과 쓰레기를 구분하고 재활용품으로 모으고, 학교 준비물을 담은 지퍼백에는 각자의 이름을 써서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했다. 
어렵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일명 ‘냉파’(냉장고 파먹기)를 하면서 자연적으로 부엌도 집안 정리도 하게 되었다.  하루에 한 사람이 한 장의 플라스틱 봉투만 줄여도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먼저 나서 어른들을 설득하고 있다.
 
이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시발점이 되어 32년 후에도 내가 계속 맛있는 생선 구이를 먹을 수 있길, 이건 정말 간절한 바람이다.  

(그림/조은아)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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