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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47) 이슬람과 사원건축에 대한 오해와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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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241회 작성일 2018-08-0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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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과 사원건축에 대한 오해와 편견
 
김의용 / 군나다르마 대학(University Gunadarma) 건축학과 교수
      PT.MAP Architects & Engineers Indonesia 법인장
 
 
I

 삶이 어렵고 힘들 때, 가치관이 혼재되어 기준이 흔들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용기이다. 흔히 삶의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이 건축이고, 그 중에서 종교건축은 신의 존재를 체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신에게로 향하는 신앙심이 발현될 수 있는 공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한다. 성스러운 공간과 속세의 공간을 구분지어 속세에 찌는 인간들의 삶을 정갈하게 해주고,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과 고단한 세상사를 신에게 의지함으로써,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하게하여 다시금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가지게함이 종교가 가지는 현실적인 순작용일 것이다.

<사진1. 왼쪽부터 라뚜레뜨 수도원(프랑스), 롱샹성당(프랑스), 바람의 교회(일본) >
 
인간 구원의 종교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눔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공동체적 삶을 추구해야한다. 공동체적 삶의 근본은 청빈과 공유이며, 이의 건축적인 실현이 종교건축이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신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고, 안식을 영위할 수 있는 종교건축의 엄숙성은 화려한 장식과 값비싼 치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본질인 공간연출에 의해 이루어진다. 특히 새로운 원형을 창조하고자 했던 근대건축은 새로운 재료의 정직한 사용으로 청빈하고 검소하나 신성한 공간을 실험했다. 라 뚜레뜨 수도원에서 보이는 검소한 빛과 롱샹 성당의 풍성한 빛,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투명한 빛은 종교건축에서 빛으로 빗어진 공간의 시(詩)로 읽혀진다.
 
II

인도네시아는 흔히 과거와 현재, 인간과 신, 그리고 다양한 문화와 인종들이 서로 뒤섞여 공존하는 조금은 명쾌하지 않는 경계를 가진 땅이다. 어쩌면 이러한 불분명한 경계가 외래종교의 토착화를 통해(때때로 외래종교끼리의 교배도 가능했다) 인도네시아만의 독특한 종교적 정체성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외래 종교 중에서 가장 늦게 유입되었으나, 가장 강력하고 많은 신자를 거느린 이슬람은 인도네시아 최대의 종교이다. 전국적으로 2,000여개의 사원이 있는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대표적인 사원인 이스티크랄(Masjid Istiqlal)은 최대 수용인원 12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단일 사원이다.(수용인원 수에는 외부 중정의 기도 공간까지 포함한다) 이 사원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기념하는 모나스(Monas)  광장과 면해 있는데, 독립이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토 대통령은 근대건축을 국가적 통합과 강력함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하고 강력한 상징적 도구로 생각했고, 이를 장려했다.(특히 그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반둥공과대학 토목과를 졸업하여, 건축에 대한 일정 정도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사원의 명칭인 “이스크랄(Istiqlal)”이란 단어는 네덜란드와 일본의 450년 식민지배를 이겨내고 탄생한 공화국을 상징하는 산스크리트어로 ‘독립’을 의미한다. 
 

< 사진2. 두개의 거대한 중정으로 이루어진 사원 >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소인 메르데카 광장 인근으로 사원의 위치를 선정하고 1961년에 착공하여 1978년 2월 22일, 17년만에 완공하게 된다. 이 사원은 건축 공모전을 통하여 프레드히 실라반(Frederich Silaban)이라는 인도네시아 건축가의 신앙(ketuhanan)이라는 작품이 선정되어 건립되었다. (건축가 실라반은 개신교 신자였으며, 식민모국인 네덜란드에서 건축을 공부한 유학파였다.) 매우 모던한 건축언어를 사용한 이 사원은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 대통령의 근대건축에 대한 의지와 애정이 있었기에 당선되어 완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 가톨릭과는 매우 상반되는 개방적 태도를 보여준다. 한국의 교회나 성당은 신자가 아니면 공모전에 참여 조차할 수 없는 매우 밀폐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종교를 믿어야만, 신자여야지만 꼭 종교건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인데, 한국의 종교는 여전히 밀폐적이고 자폐적이다).
 
대부분의 종교건축이 그러하듯 이스크랄 사원도 다소 직설적이긴 하지만 상징으로 가득하다. 이 사원의 7개의 출입문은 이슬람의 7개 천국을, 5층 건축물은 하루 5번의 기도와 이슬람 신자의 5대 의무 그리고 빤짜실라 5대 원칙을 의미한다. 내부의 지름 45m 돔은 독립년도인 1945년을 의미하며, 사원 내부의 12개 기둥은 1년 12달과 선지자 무하마드의 탄생일인 12일, 미나렛의 높이 66.66m는 코란의 6,666개 구절을 의미한다.
 

< 사진3. 거대한 공간은 이용자를 압도한다. 내부공간의 거대함이 엄숙함과 경건함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
 
종교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건축적인 측면에서도 이 사원건축은 독특한 공간구성과 이슬람 종교의 특성을 매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슬람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평등함을 표현한 균등한 공간 구성, 내외부 공간의 불분명한 경계, 개방적 공간구성 등 기하학적 질서 체계를 사용하면서도 건축 공간의 다양함을 매우 뛰어나게 표현하고 있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진4. 이스티크랄 사원건축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인 중정과 회랑이다.>
 
 
III
 
비이슬람인의 입장에서 이슬람 사원은 약간의 두려움과 생소함이 섞여진 느낌을 가진 공간이나, 실상 사원은 이슬람인들에게는 일종의 마을 회관이자 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이며, 이방인과 여행자에게는 여행자 안내소 역할도 한다. 또한 신자들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저금리로 융자해주는 지역의 서민 대부금융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슬람 신자들에게 사원은 종교적 행사를 치르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공공주민센터의 역할도 수행하는 개방된 공공공간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실지로 필자가 방문했던 많은 사원 건축들은 외국인에게 어떤 적대적 행위나 느낌을 표현하지도 않았으며 개방적이고 호의적이었다. 

구원과 신에 대한 믿음을 표출하는 장소인 종교건축은 세속과는 다른 공간적인 감동과 희망이 있어야 한다. 신과 인간의 만남을 위한 장소의 제공이라는 종교건축의 목적은 최소한 도덕적이어야하며, 다른 건축보다 더욱 윤리적인 당위성과 철학적 고뇌가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원건축이 시도했던 근대건축의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자고 했던 이슬람 사원건축의 공간구성들은 종교건축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며, 인도네시아 근대건축에서도 의미있는 작품으로 남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스티크랄 사원은 기도시간을 제외하면 언제든지 외국인이던, 다른 종교인이던 입장과 관람이 가능하다.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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