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1) 울렌 센따루 박물관 (Museum Ullen Sentalu)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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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카르타>
울렌 센따루 박물관 (Museum Ullen Sentalu)-1
사공 경
자연 그대로 길을 따라 곡선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은 직선의 강박, 직선적 사고에 길들여진 우리를 두려움과 설렘으로 안내한다. 지하에 위치하며 동굴모양으로 산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어졌다. 동굴을 뜻하는 구워 (Guwo), 바위를 뜻하는 셀로(Selo), 산을 뜻하는 기리(Giri)라는 단어로 합쳐져‘구워 셀로 기리’라고도 한다.
울렌 센따루 (Ullen Sentalu)라는 이름은 자바어로“ULating bLENcong SEjatiNe TAtaraning LUmaku”이다. “사람들은 오일램프를 켜고 구불구불한 인생을 걸어간다.”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박물관은 자바의 깊은 철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흑백사진이나 흑백사진 같은 그림들로 전시되어있다. 흑백사진(그림)은 소리가 없어서 더 큰 울림으로 우리를 역사 속으로, 성찰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1997년에 3월 1일, 자바 문화를 지키고 싶은 하르요노(Haryono) 선생님은 개인 별장을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당시의 족자 부지사 빠꾸알람 8세 (Pakualam VIII)가 준공식을 올렸다. 박물관을 건립할 때 4개의 끄라톤(Keraton)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즉 족자의 끄라톤 족자 (Kasultanan Jogja, Hamengkubuwono 왕가)과 빠꾸알람(Pakualam), 솔로의 끄라톤 솔로(Kasunanan Surakarta)과 망꾸느가라(Mangkunegara) 이다.
춤과 가믈란 방 Ruang Tari & Gamelan
웰컴(Selamat Datang) 방을 지나 춤과 가믈란 방에 들어가면 전통 악기인 가믈란 (Gamelan)과 가믈란 연주와 함께 하는 춤 그림이 있다. 그림 속에 그들은 몸으로 하는 언어, 춤으로 정직하게 아름답게 시대의 격정을 소리치고 있다. 첫 번째 그림에는 구스띠 누룰 (Gusti Nurul) 망꾸느가라의 공주가 스림삐 사리 뚱갈 (Serimpi Sari Tunggal) 춤을 추고 있다.
하나를 뜻하는 뚱갈 춤의 명칭처럼 무용수가 공주 한 사람이다. 그녀는 네덜란드 베르낫(Bernard) 왕자와 줄리아나(Juliana) 공주를 위해 춤을 추었다. 네덜란드에서 춤을 추었지만 그림 속에는 솔로의 끄라톤 망꾸느가라의 가믈란 연주가 그려져 있다. 박물관에 누를 공주를 기념하는 방도 있다. 가면이란 뜻의 또뼁 (Topeng) 춤 그림도 걸려 있다. 자바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하여 변장하면 액운을 막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중국 공주와 자바 공주의 그림이 따로 걸려 있다.
두 그림은‘골렉 메낙(Golek Menak)’춤의 스토리와 관계가 있다. 즉 술탄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두 공주가 춤으로 대결하였다. 마침내 자바 공주가 이겼다. 중국 공주 그림을 보면 공주 뒤에‘골렉 메낙’춤을 만든 술탄(Sultan) 하믕꾸부워노 (Hamengkubuwono) 9세가 앉아 있다. 그 시절의 끄라톤 마따람은 술탄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 한 가지 춤을 만들어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즉 술탄이 예술적으로도 완성되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Gua Sela Giri
터널(굴)처럼 보이는 박물관 벽에 끄라톤 마따람의 가계도가 걸려 있다. 가계도에 의하면 1755년 기얀띠 (Giyanti) 조약을 맺었을 때 끄라톤 마따람은 두 개의 끄라톤, 족자와 솔로로 나누어졌다.
1813년, 끄라톤 족자는 까술따난(Kasultanan)과 빠꾸알람(Pakualam)으로, 1757년 끄라톤 솔로는 까수나난 (Kasunanan)과 망꾸느가라 (Mangkunegara), 즉 끄라톤 마따람(Mataram)은 네개의 끄라톤으로 나누어진 셈이다.
17세기부터 시작된 끄라톤 족자에서 가장 큰 인물은 술탄 하믕꾸부워노 9세 (Hamengkubuwono IX)이다. 그는 1940년에 족자의 술탄으로 취임했으며, 군과 종교 지도자, 재무부 장관, 안전부 장관과 같은 정치지도자도 겸임하였다.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인도네시아 부통령직도 수행하였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그의 얼굴은 항상 심각한 보인다.`“말을 많이 하지마세요. 중요한 것만 말하세요. 삶의 언어로 말하세요.”라고 사진 속의 그는 소리치고 있다. 끄라톤 족자에서 임무를 행하는 사령관은 망갈라 유다 (Manggala Yudha)라고 불리며 왕자가 사령관이 될 수 있다.
그는 왕족이라기보다 근엄한 군인의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다음 그림이 족자의 술탄비(妃)인 라뚜 끈쪼노 (Ratu Kencono)의 그림이다.
족자 최고의 부자 슬탄 하믕꾸부워노 7세(Hamengkubuwono VII)의 3번째 부인이기 때문에 아들이 왕이 될 수가 없어서 눈이 슬퍼 보이는 것일까. 3D 그림이라 라뚜 끈쪼노의 눈과 신발 끝이 방문객을 계속 따라간다. 그만큼 외로운 것일까. 허나 외롭다는 것은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더 구체적이고 사람답게 만드는 게 아닐까.
다음 그림은 왕족의 묘지인 이모기리 (Imogiri) 묘지를 보여준다. 이 묘지를 방문하려면 바띡 천으로 된 끔븐 (kemben)을 입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규칙이 있다. 공주는 특별한 옷을 입고 참배한다. 솔로, 족자의 끄라톤에서 무희들이나 신부가 착용했다는 끔번. 중간에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키는 마름모 모양이 있는 끔번을 착용한다는 것은 이 왕족묘지는 신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른 쪽에는 술탄 하믕꾸부워노 7세의 손녀인 수하르띠 (Suharti) 공주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녀는 미모가 특출하고 영리하여 남편은 자랑스럽게 그녀를 해외 국가 행사에 많이 데려 갔다고 한다. 그녀의 표정은 자부심으로 당당하다.
족자 끄라톤 빠꾸알람과 관련되는 전시실의 한 그림에는 인기가 많았던 술탄 빠꾸알람 8세(Pakualam VIII)의 모습이 보인다. 술탄 빠꾸알람 8세가 의자에 앉아있고 술탄비와 딸, 후궁 등 술탄에 사는 모든 여자들은 술탄의 바로 뒤쪽, 바닥에 앉아 있다. 남자들은 술탄 앞에 앉아 있다. 이 그림은 남자가 자기의 가족, 특히 여자를 잘 지켜야 하는 막중한 의무를 잘 보여 준다. 그 시대에는 여자가 약자였음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일종인가보다.
솔로에 위치한 끄라톤은 까수나난이라고 하며, 술탄은 빠꾸부워노 직함을 받았다. 그 중에 1945년 술탄 빠꾸부워노 12세 (Pakubuwono XII)는 취임할 당시 약관 20세였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할 때 친구들이 그의 이름 Raden Mas Suryo Guritno을 부르지 않고 애칭으로‘보비 (Bobby)’라고 불렀다. 그는 많은 사람들, 특히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이 있어서 59살까지 술탄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한다.
부인이 6명 있었는데 술탄비(妃)가 된 부인은 없었다. 술탐비의 역할을 그의 어머니가 하였다. 그의 어머니 아긍 (Ageng) 여왕은 피아노를 잘 치고, 바이올린을 잘 켜기도 했다. 네덜란드어와 스페인어도 능통한 현대 여성이었다. 아긍 여왕은 권력을 상징하는 곳간열쇠를 들고 다니었다.
솔로 끄라톤 망꾸느가라 (Mangkunegara) 최고의 술탄 망꾸느가라 7세는 띠눅 (Tinuk)이란 부인과 구스띠 누룰 (Gusti Nurul) 공주 하나만 두고 있었다. 누룰 공주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춤도 잘 추었지만 말 타기를 좋아해서 말 타는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 속의 그녀는 말을 타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거침없이 가고 싶다고 흔들리는 가슴으로 외치고 있다.
Kampung Kambang
자바의 중심 네 끄라톤의 유산 보관실을 지나면‘물 위에 있는 마을’을 뜻하는 깜뿡 깜방 (Kampung Kambang) 방이 나온다. 시골이란 뜻의 깜뿡과 “물에 뜨다.”란 뜻의 깜방에서 유래되었다. 실제로는 방 주위에 물길이 있을 뿐이다.
깜뿡 깜방에는 다음과 같은 전시실이 있다.- Ruang Syair untuk Tineke (띠느끄 공주의 시의 방)
보비의 여동생 ‘띠느끄 (Tinneke)’공주를 기념하는 방도 있다. 그곳에는 친구와 친척들이 띠느끄를 위해서 쓴 시들이 보관 되어 있다. 시 원본은 네덜란드로 적혀 있었지만 인니어로 번역해 넣는 것이다.
시 옆에는 누가 쓴 시인지 누가 보냈는지 사진이 함께 있다. 제일 유명한 시는 말을 타던 미모의 누룰 공주가 쓴 시이다. 그 시는“여자가 국가의 기둥이다. 여자가 훌륭하면 국가도 번영하고, 여자가 나쁘면 국가도 쇠퇴한다.”라고 쓰여 있다. 또 자신을 황금 새장에 갇혀있는 새로 표현하며 자유를 원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허위와 위선에 찬 궁중생활보다 그녀는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리라. 흑백사진으로 된 그 방 은 자체가 시이고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눈물이었다. (2편에 계속)
*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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