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169) 슬픔은 손가락 사이에 머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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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손가락 사이에 머물고
최장오
슬픔이 폭우처럼 쏟아지던 날
청개구리도 그렇게 울었을 게야
남의 땅에다 도둑 묘 쓰고 비에 젖을까
비에 떠내려 갈까,
지난 사 년간의 시간이 미끄럼틀 같은
야자수잎에서 내려오고 또 내려온다
보이는 슬픔과 보이지 않은 슬픔 사이엔
분명 경계가 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수시로 찾아온다
손가락사이에 남아있던 슬픔은 손을 들어
인사 할 때마다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놀이터에 쌓이는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가
먹구름 같은 천둥소리 되어
벌써 명치 끝으로 내려 앉았다
슬픔은 손가락 사이에서 머무는데
아침 해는 창문 너머 그 자리에 또 찾아온다
(사진=조현영/manzizak)
*시작노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수많은 일들을 떠올리며 아직 그 사이에 남아있는 슬픔 하나를 봅니다.
손을 흔들어 보지만 가시처럼 박혀, 세월도 떨어낼 수 없는 깊은 자리.
놀이터 옆 정원, 자그마한 꽃나무 그늘에 즐거움, 아픔 모두 묻어버린 도둑묘. 이것이 우리와 3년을 살다 간 애완견 쿠키의 변변치 않은 안식처입니다.
멀리있는 딸은 가끔씩 수화기 너머로 쿠키를 떠올리지만, 나는 가까이 두고도 내색할 수 없어 손가락만 자꾸 내려다봅니다.
* 이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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