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24) 인도네시아의 그 곳- 보물창고 루마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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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그 곳- 보물창고 루마자와
글,사진 / 김현미 ( 인테리어 INPLAN 공동대표)
육중하고도 정교한 조각의 대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인도네시아 자와의 전통가옥인 루마자와는 joglo 양식으로 지어진 높은 천장을 가진 보물창고였다.
오지연구가이자 여행가인 SANTOS부부의 컬렉션 취향을 따라 이들 수집품들은 색채에 입혀진 속도에 따라 그 강약의 리듬감이 느껴지도록 배치되어 있었고, 시대를 달리하는 비비드한 칼라의 섬세한 패브릭 소품과 함께 세련되게 가공 된 페리도트처럼 빛나고 있었다
천정에서 바닥까지 늘어 뜨려진 선명한 빛깔들의 휘장들은 사냥 전 색색의 물감으로 온몸을 치장하여 두려움을 떨쳐 내었던 몸짓이였으며, 그 사이로 빛나는 조그마한 귀품들은 그 긴장감 위에 아롱거리는 기름방울 같았다.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저런 빛깔이 존재 했었던가? 놀라운 빛깔들의 원석들은 진귀한 빛깔을 내거나, 때로는 되바라진 촌스러움을 풍기며, 거친 고재 나무조각 사이 숨바꼭질 놀이를 하듯 숨어 있었다.
이리얀자야 아스맛 원시조각은 그 거친 숨결 그대로 전쟁에 사용되어지는 방패에 새겨져 있었으며, 그 모습 그대로 집의 울타리와 장식의 역할도 해내었다 . 죽음도 삶처럼 일상으로 맞닥뜨려진, 먹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아야 했던 그 하루 하루의 거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42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루마자와는 비밀통로를 지나가듯 한 면의 휘황찬란함에 마음을 빼앗기면 이내 다른 쪽 문이 열리면서 또 다른 매력의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좁은 계단을 지나 문을 열면 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기대 되는 거대한 보석상자 속에 풍덩 빠진 기분이었다.
루마자와의 각 방 천장은 각 수집품들이 지닌 특유의 양식과 맞물리도록 만들어져 있었는데, 바틱방에 이르러 나는 그 절정의 아름다움에 놀라웠다. 벽을 가득히 채운 바틱작품은 가지런한 진열대를 빼곡히 채우고도 넘쳐나 천장에 이르렀고, 천장으로 모아진 빛은 바틱의 형형색색의 모양 그대로 아름다운 꽃잎을 만들어 아래로 다시 흩뿌리고 있었다.
바틱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족히 1~2년은 소요 된다고 한다. 나는 점묘화를 감상하듯 바틱의 점 하나 하나가 어떻게 선을 이루고 그 선이 어떻게 문양을 만들고 휘돌아 나가며 하나의 면을 채우면서 작품을 완성 시키는지 세밀히 살펴 보았다.
문양을 찍고 촛농을 떨어뜨려 선별적 염색작업을 무한반복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 각각의 점들은 어느 예술가의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었던 생활의 흔적이였으며, 어찌 할 도리 없는 노곤한 반복과 함께 찬란한 영감으로 뭉텅그려진 시간들을, 그 농축된 삶의 깊이를 담백하게 풀어 내고 있었다, 기계적인 육체적 노동만이 아닌 그 한 점 한 점 혼신을 다했을 그 진심이 꽃잎이 되어 내 마음에 각화 되었다.
이렇듯 일상의 바다에서 캐어 올린 생활예술품이 뒤섞여 있는 개인박물관은 그들 부부가 걸어 다녔을 오지의 험난한 길들과 이 귀한 것들에 응당한 대가를 치렀을 그 수고로움이 그대로 투영되어 보였다. 이들 수집품들은 진열장 속 박제된 상태가 아니라, 현재에도 입고 사용되는 여러 생활용품과 자연스레 섞이고 배치되어 삶이 곧 예술과도 같은 응집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그날 루마자와 개인박물관에 몸을 푹 담그고, 피로를 씻었다.
그 축제와도 같은 알록 달록한 색채를 보며, 무장해제된 자유를 느꼈다.
( 2014 루마자와 문화탐방기 중 )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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