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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28) 따뜻한 인연이 있는 곳 –Danau To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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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538회 작성일 2018-03-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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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인연이 있는 곳 –Danau Toba
 
김 기 역
 

2016년 1월 8일 앞뒤 가릴 것 없이 딸아이와 함께 ‘Medan’행 비행기에 올랐다.두 달전부터 꼭참석해 달라는 친구 ‘Richard’의 결혼식 초청장과 그의 통화가 마음을 움직였다.
 
Richard는 나와 띠동갑 동생뻘인데 성격이 남자다우면서도 행동이 반듯하여 좋은 친구로 생각하며 보아왔었다. Medan에 자주 출장가던 시기에 한국 식품에 관심이 많다며 직접 찾아와 많은 것들을 묻고 논의하면서 서로 간에 신뢰감이 생겨났고 급기야 결혼식에까지 초청을 받은 셈이었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를 결혼식 참석만을 위해 다녀오기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딸아이의 방학인 시기라 함께 갈 수 있고, 또 그곳엔 Toba 호수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주변분들로부터 Toba호수 이야기를 듣자 마자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된 셈인데 화산 활동으로 생긴 칼데라 호수이면서 그 크기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칼데라 호수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경상남도만한 크기이며 그 깊이가 450미터가 넘는다면 도대체 얼마나 큰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Toba 호수 안에는 Samosir 섬이 있는데 섬 면적이 630km2 로 719.9km2의 싱가폴만한 크기라고 하니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식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전통결혼식이 아닌 현대식 결혼이어서 커다란 연회장을 통째로 빌려 내외곽에 손님들이 꽉꽉 들어찼다. 우여곡절 끝에 축하인사와 선물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외국인 친구가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축하해주는 것에 대해 무척 고맙다며 Richard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호텔로 돌아와 딸아이를 재우고 다음날 Toba호수에 갈 버스 일정과 Samosir섬에 들어가는 배편을 숙지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Richard였는데 자기들 신혼여행을 조금 미루고 멀리서 온 친구들을 위해 Toba호수를 2박 3일로 갈 터이니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결혼을 축하해주러 온 것이지 너에게 신세지러 온 것이 아니다’라는 내 얘기에 우리 말고도 싱가폴, 자카르타, 술라웨시에서 온 친구들이 9명이나 더 있고, 이 친구들과의 추억을 위해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첫번째 드는 생각은 ‘사람과의 인연을 참 소중히 생각하는 친구로구나’라는 것, 두번째 들었던 생각은 과거에 식인 습성이 있었고 지금도 한 성깔 하는 바딱족들이 많은 Toba주변에 대한 경계심이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속물같지만 ‘여행경비도 많이 줄일 수 있겠구나…’라는 세번째 생각이 들었었다.
 
1월 9일 아침 정말로 호텔 앞으로 미니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에 올라서자 싱가폴에서 온 커플과 술라웨시에서 온 두 친구, 그리고 자카르타에서 온 두 친구, 그리고 Medan에 사는 Richard의 가장 친한 친구 세명이 있었다. 다들 젊고 팔팔한 젊은이들이며 미혼인데 나 혼자 어린 딸까지 대동한 중년의 아재였기에 조금 서글펐지만 여행을 즐거워하는 딸아이를 보니 흐뭇하기 그지 없었다.
 
4시간 정도의 차량이동 후 호수에 다다르자 차량정체가 심각했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항구로 들어가는 차량들과 나오는 차량들이 속절없이 뒤엉킨 상황이었다. 기사분과 다음날 픽업시간을 맞추고 모두 하차하여 항구로 걷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의 어시장처럼 시장들이 펼쳐지고 좌판들이 펼쳐져 있었다.
 
항구에 들어서자 호수에 비치는 햇살들이 물비늘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분명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바다 내음이 전혀 없이 찰랑찰랑 파도 치는 부두 모습이 참 아이러니했다. 
 
배에 올라 Samosir 섬으로 향하는 길에 Richard가 Toba호수와 Samosir에 대한 전설을 들려줬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와 유사한 느낌이었다. Richard는 싱가폴 친구들과 나를 배려해서 또박또박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옛날 옛날 이곳에 Toba라는 청년이 낚시를 하다 낚은 대형물고기의 화신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모하여 결혼하여 살게 되는데 그 조건은 여인의 정체를 아무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었어. 둘은 아들을 낳았는데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웠지만 아들은 자랄수록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 Toba가 홧김에 보르장머리 없는 것이‘물고기의 자식’이라며 아들을 꾸짖고 말았지. 이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아들을 산 높은 곳으로 피신하게 하고 자신은 슬픔 속에 강물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이 때 천둥,번개와 폭우로 강물이 범람하게 되고 Toba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아. 불어난 강물들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사람들이 이 호수 이름을 Danau Toba로 지어 주었고 호수 안의 섬에도 Samosir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바로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의 이름이 Samosir였대.”
 
이야기가 웬지 서글픈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눈앞에 펼쳐지는 Samosir 섬은 이야기 속의 서글픈 아들의 모습이 아닌 무척 웅장하고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모습이었다. 
 
 
 
선착장과 바로 연결된 숙소에서 방을 나누고 식당에 모여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뒤 두 친구가 나서서 웃음버섯으로 만들었다는 부침개와 맥주를 사들고 와 게임을 하자고 했다. 이마에 동물 이름을 붙여두고 서로 질문을 던져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자기 이마 위의 동물 이름을 맞추는 게임인데, 최후까지 동물이름을 맞추지 못한 두 사람은 웃음버섯과 맥주를 먹거나 숯으로 얼굴을 칠해야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가고 몇몇은 웃음버섯과 맥주로 실없이 웃어대며 어쩔 줄을 몰라하는데 중년인 나로서는 정말 오랜만의 놀이였고 바보처럼 낄낄대며 웃어도 하나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게임이 끝난 후 찰랑거리는 파도 위의 정자(?)에서 멀리 보이는 별빛들이 우수수 쏟아질것만 같아 보였다.
 
“아빠는 네가 매일 저런 짙은 어둠속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네 꿈을 키워가면 좋겠어…”라고 하자 딸아이가 씨익 웃는다. 사실 이 이야기는 딸아이의 할아버지, 즉 내 아버지가 나에게 들려주신 말이다. 해남 땅끝에서 진도로 넘어가 배를 타고 두시간이 넘는 거리에 ‘독거도’라는 섬에 여름방학을 보내기로 했고 그때가 1984년이다. 기센물살의 파도가 팡팡 터져 대는 독거도의 커다란 바위 위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보며 나에게 해주신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때 나도 국민학교 4학년이었고 그 날밤 보았던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잊지 못한다. 그 때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클레멘타인’노래를 딸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모기 때문에 방으로 피신하고나자 노래를 부를만한 분위기가 못되어 그만 두고 말았다.  
 
 
아침이 되자 모두들 분주해졌다. 식사를 신속하게 마치고 짐들을 챙겨 한 방에 모아 잠금장치를 확인한 뒤 모두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 앞에 모였다. 6대의 오토바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토바이를 나눠 타고 섬 안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푸른 숲과 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중간중간 너무 예쁜 집들이 있어 물어보면 외지인들이 지어놓고 종종 놀다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Ricahrd 말로는 Toba호수 근처와 Samosir 섬의 개발권은 철저하게 현지 토착민들에게 있는 것이어서 주소지를 그 곳으로 옮겨 살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곳의 자연 환경은 편법(현지 토착민들 명의로)으로라도 집을 짓고 연중 잠시나마 쉬어 가는 곳으로 충분하게 느껴졌다.
 
 
오토바이의 매력은 기동성도 있지만 여럿이 함께 달리면 묘한 동료애와 전투력이 생기는 것이었다. 마치 예비군복을 입으면 동질화 되는 예비군처럼… 뜨거운 햇볕과 더위 때문에 멀리 가기 힘들다고 판단이 들자 모두 숙소로 돌아와 짐을 찾고 배를 기다렸다. 통통거리는 배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공간이 많았고 이곳저곳 둘러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푸르디 푸른 하늘에 각양각색으로 떠다니는 뭉게구름들 사진들을 찍으며 딸아이와 이야기 나누다보니 어느새 미니버스가 기다리는 선착장에 다다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Toba호수를 직접 보고 거닐어보았다는 성취감에 잠시 뿌듯해졌다. ‘둘째 아이가 자라 4학년이 되면 그 때 또 와야지…’ 다짐하며 버스에 올랐다. 
 
Richard는 이후에도 120미터 길이의 Sipiso-piso 폭포와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한 Berastagi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그곳에서 온천을 함께하며 우리는 또다른 추억들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지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격의없이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아침 Djarum Group이 운영한다는 꽃이 만발한 놀이동산은 정말 깨끗하고 예뻣으며 15도 정도의 기온 덕분에 정말 상쾌하고 즐거웠다. Medan에 다시 돌아와 기념품들을 사기 위해 들른 시장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한 과일들과 물건들이 가득했다.딸아이는 토끼와 말 구경에 정신이 없었고 평소에는 입도 대지 않던 옥수수를 신나게 뜯어 먹고 있었다.아쉬운 작별의 시간에도 슬픔같은 것이 끼어들 틈새가 없었다. 서로 환하게 미소지으며 “우리 또 만나요!” 인사했고 그것이 서로 거짓이 아님을 느꼇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멈춤없이 흐를 것이고 점점 줄어들어가는 수명 속에서 우리는 조바심 나는 삶을 살 수도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호의가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면 그 웃음소리들과 추억들이 따뜻한 액자로 남아 가슴에 걸린다. 살다가 보면 불현듯 바라보게 되는 그 액자에 가만히 웃고있는 그들을 보면 내 발걸음은 어느새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이 되도록 살아가라고 Toba에서의 친구들에게 배웠고 그러고 싶어졌다. 야속한 시간도 따듯한 추억들 앞에서는 속절없는 신세가 된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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