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보물을 잉태한 항아리 > 인문∙창작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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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45) 보물을 잉태한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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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000회 작성일 2018-07-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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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잉태한 항아리
                       
                                김현숙
 
자카르타 국립박물관 보물관에서
할머니의 고추장 단지를 보았다
바스러질 듯 윤기 잃은 갈색 항아리가
시간이 머물지 않는 유리관 속에 누워있다
 
섭씨 1,000도가 넘는 머라삐의 용암과
천 년의 세월을 화산재 아래 버티며
금세공품들을 품어낸 그 항아리
 
드라마틱한 이야기 하나 없이
농부의 곡괭이에 슈퍼보물을 잉태한 그는
훤히 보이는 관 안에서 아직도 산후조리 중이라지
 
불 가마에 두 번 구워진 몸은
고열에 터진 황금장식 속 진흙처럼 말라붙고
컴컴한 배 속은 열기 식은 분화구만큼이나 공허하다
 
그래도 몸에 금칠 한 번 한적 없는 항아리가
보물관의 한 가운데 누워있다
텅 빈 자궁을 훈장인 양 드러내고
에어컨 아래 빙하기를 견디고 있다
 
 
*** 시작노트
자카르타에 있는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가면 고향을 만날 수 있다.
장독대의 항아리와 오래된 사기그릇들, 할머니 옷장 속의 한복과 닮은 직물들, 절에서 보던 불상과 석상들……
실로 많은 것들이 유년의 기억에서 튀어 나온 듯 정답다.
 
그 중 유독 내 눈길을 잡아끄는 건, 머라삐 화산재 속에서 천 년을 버티다 발견된 보물 관의 항아리다. 이를 보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을 위해 무한한 희생을 바친 소박한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진다.
가슴 뭉클한 잉태의 사연이 있는 그 곳, 오늘도 그 곳의 안부가 궁금하다.
 
 
               (사진=조현영)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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