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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55) 읽어야한다. 배워야한다. 사이자-아딘다 도서관과 물따뚤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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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180회 작성일 2018-09-2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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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야한다. 배워야한다. 
 사이자―아딘다 도서관과 물따뚤리 동상
 
사공 경
 
 
1. 사이자―아딘다 도서관 (Perpustakaan Saidjah Adinda)
 
유럽의 아시아 지배를 마감하게 한 소설 『막스 하벨라르』 속의 어린 연인들의 이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서관이 반뜬 주 르박 군 랑까스비뚱에 있다. 르박 군 랑까스 비뚱은 『막스 하벨라르』가 태어난 곳이고 작가 물따뚤리가 부지사로 일한 마지막 장소이며, ‘사이자ㅡ아딘다’라는 특별한 이야기의 중심 배경이기 때문이리라.

검은 배경에 낭만적인 글씨체로 하얀색으로 ‘사이자 아딘다 도서관’이라고 적혀 있다. 부셔지고 부셔졌던 처참한 사랑이지만 그들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은 지금도 하얀색으로 흐르고 있었다.
 
 
르박 군 지방정부는 사이자-아딘다 문서보관국 및 도서관의 건물 준공식(2017년 12월 27일)을 기념하여 책 분류와 유치원, 유아원생들에게 도서관을 주제로 하는 사생대회를 개최하는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현재 도서관에는 약 1천여 권의 장서가 비치되어 있어 아이부터 성인까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민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도서관 건물 위쪽에는 <행운, 자연, 건강>을 상징하는 초록색으로 ‘사이자 아딘다’라고 적혀 있었다. 1층 벽면에는 순다어로 ‘잘 오셨습니다.(Wilujeng Sumping.)’ 라고 청색으로 쓰여 있었다. 청색은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유, 상상력, 신뢰, 지혜, 자신감>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도서관은 3층 건물로 지붕은 어두운 붉은색이고 유리창을 많이 사용한 현대적 건축자재로 지어진 건물이다. 일부 벽은 굵은 대나무로 장식하였다. 대나무는 인도네시아 서민들, 특히 눈물의 역사를 쓰는 랑끼스비뚱 주민들의 상징이다. 또 다른 건물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벽기둥이 아래로 좁아지는 건축양식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르박 군에 있는 바두이(Baduy) 종족의 논밭에 있는 곡물 창고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지역의 주민들이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진정한 농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이자와 아딘다가 처음 만날 때 어린아이여서일까. 어린이들이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어린이관이 제일 잘 꾸며져 있었다.
 
 
도서관 외벽에는 문명에 물들지 않고 산간 오지에 숨어 사는 바두이 족 흰색 전통 복장을 한 소년, 소녀가 책 읽는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바랑처럼 생긴 흰색 천으로 된 가방을 메고 『인도네시아 문화』라고 적힌 빨간색 책을, 어떤 아이는 청색 표지의 책을, 다른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어깨 너머로 책을 보고 있다. 배경으로 바두이 전통 가옥이 보이고, 개울물이 바위 사이사이로 흐르고 있다.
벽화를 통해, 문명과는 등을 돌린 채 그들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는 바두이 족들도 교육을 통해, 문자 해독을 통해, 현대화 물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르박 지방정부의 강렬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과거 네덜란드 식민통치 시대 때 가난하고 못 배워서 갖은 고난을 당했던 사이자-아딘다로 대표되는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벽화는 사무치게 말하고 있다.
 
도서관 복도에 네덜란드에 있는 에드워드 도우웨스 데커르 (Eduard Douwes Dekker) 동상 사진이 걸려 있고, 아래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인도네시아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시대에 그는 그들을 위해 피를 토하며 나섰고 유럽인들에게는 이방인이 되었던 그의 모습은 단아하고 신념에 차 보였다.
 
 
2. 물따뚤리 동상과 사이자-아딘다 동상
 
도서관 옆에 있는 물따뚤리 박물관 정원에는 물따뚤리, 사이자, 아딘다 청동 동상이 있다. 물따뚤리 동상은 크기 2.5M이며 무게는 400Kg로 의자에 앉아 엄숙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책의 크기가 사람보다 더 크다. 이는 책은 학문의 보고로서 정신적 양식으로 육체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철학적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물따뚤리 동상은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고 현실에 타협하지 않았던 혁명가의 모습이 아니라 큰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은 문맹을 퇴치하여 많은 지식과 깨달음을 얻어 다시는 식민 지배를 당하지 말자는 그의 외침인 것이다. 동상 뒤에는 책장도 있다. 마치 물따가 책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다. 목적이 있는 삶을 위해, 삶의 핵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읽어야한다고. ‘성장하고, 배고프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라. 행동, 아픔, 감정이 없는 침묵은 죽음이다.’라고. 그는 큰 책을 읽는 모습으로 절규하고 있다.
그는 식민지 통치자에 대한 비판과 원주민들의 비참함이 왜곡된 봉건제도에서 비롯된 식민주의임을 깨닫게 하는 것도 읽어야한다, 배워야한다는 것을 그는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사이자, 아딘다 동상은 각 1.8M, 무게 150Kg이다. ‘물따뚤리 박물관에 잘 오셨습니다.’라고 팔을 내뻗어 방문객을 영접하는 모습이다. 소설 속처럼 물소 등에 올라 탄 모습이나 배고픈 땅을 떠도는 농부의 모습이 아니라 굳건한 모습이다.

아딘다는 존경의 눈빛으로 물따뚤리를 바라보고 앉아 그에게 바칠 꽃을 손에 쥐고 있다. 책장을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식민의 아픔을 담고 있고 앉아 있는 의자 옆에 빈자리가 있어서일까. 우리의 ‘소녀상’이 떠올랐다. 그 빈자리에 하늘을 감싸 안은 초록이 내려와 평화를 말하고 있었다. 그 여백은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우리의 ‘평화의 소녀상’처럼.
 
 
이처럼 사이자-아딘다 모습은 소설 속의 아프고 남루한 소년소녀 모습이 아니라. 창의적인 예술작품으로 형상화되어 사람다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역사의 진보인 것이다.
아딘다가 쥐고 있는 꽃은 소녀상의 어깨 위의 있는 새처럼 <자유, 해방, 평화>를 외치며 식민지 박해에서 능멸 당했던 이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기를 절규하고 있다.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인도네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프라무디야(1925-2006)는 40여 년 간 (1948-1999년) 가택연금· 투옥· 유배를 당한다. 그는 “물따뚤리를 모르는 정치인은 분명 악랄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인도네시아 역사와 인간애를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프라무디아(프람)는 생전에 물따뚤리의 동상을 세우고자 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인을 인간애로 감싸 안은 물따뚤리를 존경하고, 인도네시아 공산당(PKI) 예술인 동맹인 렉끄라(LEKRA)를 통해 물따뚤리를 계속 소개하였다. 1959년 그는 물따뚤리 탄생 140주년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고 제안했으나 당시 수카르노 대통령은 거절하였다. 허나 렉끄라는 계속 물따를 추모하였으며 1964년 물따뚤리 문학 아카데미를 결성한다.
 
물따뚤리는 지식인의 의식을 각성시킨 원동력이고, 인도네시아인들에게도 조국이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프람은 강조하고 있다. 프람은 물따뚤리를 인도네시아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꼽았다.
프람은 생시에 물따뚤리의 동상 건립을 수카르노 대통령에게 몇 번이나 제안했으나 이미 기득권이 된 수카르노는 그가 네덜란드인이라는 이유로 매번 거절하였다. 인도네시아에 뿌리박혀 있는 부패가 식민 시절부터 군수나 왕족으로부터 이어지는 부패한 엘리트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구체화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엘리트였으므로.

2006년 4월, 타계할 때까지 프람은 언젠가 물따뚤리 동상이 건립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동상 제막식이 2018년 2월 12일 물따뚤리 박물관 개관과 함께 있었으므로 그의 확신은 그가 죽고 난 후 12년 뒤에 현실화 되었다. 이처럼 어느 나라든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동상의 그림자는 동상이 세워지기까지의 아프고 고달팠던 긴 시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평화의 소녀상’의 그림자의 의미처럼.
 
사이자와 아딘다의 동상 앞에 서서, 두 슬픈 연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이자. 너를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어. 실을 짤 때나 천을 만들 때나 벼를 찧을 때도.’
‘내 사랑 아딘다, 네가 오는 소리가 들려. 멀라띠 흰 꽃을 잔뜩 머리에 이고 풀숲을 헤치고 오는 너의 치맛자락 소리가...’
 
물따뚤리가 소리친다. “인간의 과제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라고.
아. 부셔지고 부셔졌던 사람들아.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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