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59 ) 그와 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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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사진이야기
조현영
내 똑딱이에 찍힌 그의 뒷모습 (사진=조현영 /manzizak)
지난 사진들을 뒤졌습니다. 과거의 시간 속에서 자주 헤메이는 내 몹쓸 버릇이기도 하지만, 사진 생활 중 함께 했던 그에 관한 것들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어설픈 사진을 찍고 다니는 나의 사진 생활 틈틈이 그가 끼여 들곤 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어느 날 사진 모임에 나타난 그는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섬세하고 자기 생각과 감정을 조목조목 잘 이야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회원들의 빵빵한 카메라들 틈에 끼여 똑딱이 (콤팩트 카메라의 애칭) 들고 출사 쫓아다니던 내가 인상 깊었단 말이라던가, 어설프게 찍어놓은 내 사진에 대해 남겨준 진심 어린 조언도 기분 좋게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때로 그는 내 사진이 의도한 바를 정확히 알아채기도 했습니다. 뜻밖의 동질감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혼자 유럽여행 중에 찍어 올린 내 사진을 보고 ‘서두르지 말라고, 천천한 여행자의 걸음을 걷다가 마음에 들어올 때 사진기를 들라’ 던 댓글을 보며 아차, 고스란히 들켰구나 싶었습니다. 또 언제인가는, 조촐한 사진 출품회에서 내 사진과 얽힌 어이없던 해프닝에 함께 열을 내고 심지어 대신 나서 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는 마치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는 세일러문, 아니 세일러Pak 같았습니다.
드디어 내가 똑딱이를 버리고 마지막 월급을 털어 첫 DSLR 카메라를 사던 날, 나의 삼식이 렌즈를 골라준 이도 그였습니다. 그의 자상함에 도움을 청했더니 기꺼이 시간을 내어 의견을 보태주었습니다. 그 카메라 지금까지 잘 쓰고 있지요.
그는 사진만 봐도 누가 찍은 것인지 알 수 있는 자기만의 분명한 사진 스타일을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사진 속에 속내를 드러내고 인생의 의미를 담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 그는 요리 솜씨도 좋아 사진으로 뽐내기도 했었지요.. 그의 사진들도 좋았지만 거기에 담긴 그의 마음은 요즘 말로 고퀄입니다.
사진동호회의 모임이 자연스럽게 잦아들던 때에도 사진 전시할 기회가 있을 때면 적극 참여하고 응원해 달라던 솔직한 그가 2012년 공동사진전을 하던 때에 말했습니다.
‘나에게 사진은 힘들었던 시절에 세상을 향해 잡을 수 있었던 끈이었고, 사진을 하면서 여러 상황이 안정되어 갔고, 사진은 그 자체를 넘어 소중한 가치로 남아 있다’고.
오래오래 사진해서 10년 뒤에는 개인전을 하고 싶다고 꿈을 말하던 그가 너무 일찍 사진을 놓았습니다.
벌써 1년이 더 지났습니다
그의 부고를 듣던 날, 난 무엇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많이 아파서 한국으로 간다는 소식에 안심한 지 두 달만이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떤 순간 그가 불쑥 떠오르곤 합니다. 함께 사진 활동을 했던 다른 이도 그렇다고 합니다.
카메라 살 때 도와줘서 고맙다고 내가 밥 산 건 잘 한 거 같아,
많이 아프다 했을 때 기어이 입원실로 찾아간 것도 잘 한 것 같아,
이사 간 사무실 좋다고 자랑할 때 화분 하나 들고 가 건승을 빌어줄 걸..
오랜만에 반쪽이 된 모습을 봤을 때 더 힘차게 응원해 줄 걸..
그의 멋진 사진들에 더 많이 박수 쳐 줄 걸…
인문창작클럽에 나를 추천해주어 고맙단 말을 그때 못한 것 같아..
이런 무쓸모한 생각들이 카메라 만질 때면 스스륵 스쳐가곤 합니다.
그의 사진이 올려져 있는 사진 사이트에는 그의 이름으로 된 페이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내 SNS 친구 목록에도 그의 이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는 떠났는데 그곳에는 남아 있습니다. 그의 사진들을 넘겨 보다가 눈길이 머문 사진 몇 장, 주인 허락도 없이 가져와 그가 그려낸 빛으로 그를 기억합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 색, 분위기..
당신의 사진인 줄 알아보겠노라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진출처 :故박상훈님 flickr 페이지
*사진출처 :故박상훈님 flickr 페이지
*사진출처 :故박상훈님 flickr 페이지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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