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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61) 가는대로 간다 / 때마침 바다를 건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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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252회 작성일 2018-11-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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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대로 간다
 
박정자
 

일을 접고 만남을 줄이고 한적한 들녘이 되어 먼 산을 바라본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물줄기는 결 따라 흐르고 백양나무 숲은 반짝이고 구름은 산비탈 오르내리며 제 그림자를 지운다
 
그동안 너무 빨리 걸어 온 탓에 휘어버린 발가락을 허공에 펼친다 일렬로 늘어선 초침소리를 발가락 각도만큼 비틀어 비단잉어 등줄기에 걸쳐 놓는다 어떻게 병 속의 새가 허공을 날 수 있는지 그 오랜 물음의 유리벽이 깨진다 
 
풍경에는 밖이라거나 안이라는 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서 멀거나 가깝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맨드라미들 모여앉아 큰 입으로 수선떨어도 신발 옆에 곤히 잠든 고양이까지 다 안다 풍경의 밖에서 풍경의 안으로 이어지는 발소리를 풍경에도 안팎이 있다는 것을
 
풍경의 앞과 뒤를 겹쳐서 보여주는 먼 산도 사실은 물과 나무와 구름을 밖에서 안으로 감아 들이는 것이다 느리게 가는대로 가기로 한다 병 속의 새 어떻게 유리벽을 깨뜨렸는지 묻지 않기로 한다 새로운 물음에 갇히지 않기로 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때마침 바다를 건너는
 
박정자
 
 
1
젖으며 마르며 흔들리며
통나무 하나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밀물과 썰물에 몸을 맡기고
들며 나며 가라앉으며 솟구치며 
가고 있었다, 그런 것이 
순리이려니
 
2
굼실거리며 흘러와 저 멀리로 흘러가고 있었다 통나무 하나 물결 닮은 푸른 지느러미 흔들며 떠오를 때마다 한 줌씩 빛을 쏟아놓고 있었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어질까 너의 바다는 
 
3
짧은 눈인사로 스치는 여행지의 사람
너 그리고 나, 때마침 
바다를 건너다 곁을 지나며
손 높이 흔들어 반길 때조차
우리는 통나무보다 나은 것 없어서
들며 나며 가라앉으며 솟구치며
시작과 끝은 아예 없이 지워지며 
순간을 영원처럼 영원을 순간처럼
가고 있었다
 
 (사진=조현영 /manzizak)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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