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73)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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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참는 사람
조연숙
세상에는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참는 사람이 있다. 말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말이 많고 가볍다고 하고, 말을 참는 사람들에겐 진중하거나 음흉하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럴까?
심리 관련 글들을 정리해보면, 말을 하는 사람은 △생각난 말은 반드시 해야 하거나 △주목을 받고 싶거나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거나 △그 상황을 지배하고 싶거나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주로 말을 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거나 트러블메이커가 된다.
말을 참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을 수줍어하거나 △책임 지는 것을 싫어하거나 △말로 인해 다른 사람과 불편해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가끔 내용을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에도 침묵한다. 물론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할말이 없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글로 어떤 이는 그림으로 말을 대신한다. 이 글에서 말이 없는 사람이나 과묵한 사람이라는 표현 대신 말을 참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할 말이 있지만 참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해서이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발언권은 개인의 성향만이 아니라 권력에도 영향을 받는다. 한 회사의 사장과 직원이 회식을 한다면 사장이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도 사장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것이다. 같은 직급의 직원들이 밥을 먹는다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말을 할 것이다. 친구들끼리 모였다면 말을 많이 한 사람이 밥값을 낼 가능성이 높다.
여의도에 있는 국회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다. 국회의원과 기자들의 공방을 보면 말을 잘못해서 곤란해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소문을 공론화했다가 망신당하는 사람, 한쪽의 말만 듣고 정의의 사도로 나섰다가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실수를 하는 사람, 또 급한 마음에 준비 안 된 말로 횡설수설하면서 다른 국회의원들과 국민의 시간을 빼앗는 사람, 답변을 피하기 위해 요리조리 말을 돌리는 사람, 이말저말 옮기며 편가르는 사람, 듣는 사람이 불쾌할 정도로 무례하게 말을 하는 사람, 정치적 욕심이 앞서서 주변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는 사람 등.
말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침묵은 고문이다. 기침감기를 20일 가까이 앓는 동안 무엇보다 불편한 건 말을 맘대로 못하는 거였다. 한마디 할 때마다 기침이 나니, 얼굴 마주하는 사람과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화도 어려웠다. 약의 영향인지 스마트폰을 보면 울렁거려서 문자도 못하겠고. ‘말을 참는 사람들은 답답해서 어떻게 견디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론 ‘말을 줄이라는 신호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은 내 의견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언젠가 여럿이 식사를 하러 갔는데 ‘아무거나’라며 무엇을 먹고 싶은 지 말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본인은 안 좋아하는 음식만 시켰다고 속상해 하는 말을 들었다. 단체 활동에 대해 회의를 하는데 침묵만 하다가 말을 한 사람이 원하는 활동이 결정되니 맘에 안 든다며 빠지는 사람도 보았다. 친구1과 친구2 사이에 다툼이 있었는데 친구1은 본인 입장을 말했고 친구2는 말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친구1의 입장을 지지하게 되자 친구2가 억울해하는 상황도 있었다. 책임회피나 무관심때문에 침묵하는 사람은 덜 하겠지만, 용기가 없어서 적당한 때에 필요한 말을 하지 못하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거나 억울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말하기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침묵을 하는 사람에게도 늘 어렵다. 진솔하게 재미있게 용감하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 “고기는 중간정도 익히고, 버섯소스를 함께 주세요. 와인은 단맛이 적은 걸로 추천해 주세요”라고 자기 취향을 알고 여기에 맞춰 정확하게 주문할 수 있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적절한 때 자기 말을 멈추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추임새를 넣고 잠시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어쩌다가 말없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편안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마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과 침묵하는 사람 모두가 바라는 경지가 아닐까?
오늘도 당신은 말을 할까말까 고민하는 순간을 여러 차례 마주칠 것이다. 당신만이 아니라 나도 그럴 것이고. 갑자기 ‘그냥 그런 걸 가지고 뭘?’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짜장면과 짬뽕 중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너무 흔한 일이어서 일까?
*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와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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