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소식 [인터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싸워 온 30년…이제는 전세계와 함께" 한인뉴스 편집부 2020-01-3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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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윤미향 이사장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설립 30주년 맞은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 인터뷰
"물론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죠. 하지만 주변의 손가락질과 낙인 속에 숨어있던 할머니들은 지난 30년간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되었고, 인권·평화 운동가로서 수많은 미래 세대들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30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윤미향 이사장은 서울 마포구 정의연 사무실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30주년을 맞는 정의연 활동의 성과를 이같이 평가했다.
정의연의 시초는 1990년 창립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이사장은 1992년 정대협 간사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운동에 처음 발을 디뎠고, 정대협에서 사무국장, 사무총장을 거쳐 2005년에는 상임대표를 맡았다. 이어 2018년 정대협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2016년 창립)과 통합될 때 정의연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윤 이사장은 "28살 때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만난 사람들이 정대협 선배들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었다"며 "청춘이 사라진 할머니들처럼, 나에게도 청춘이 이 운동과 함께 했다"고 말했다.
◇ 정대협과 함께 '인권·평화 운동가'로 변모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정대협 활동 초기 가장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여자'라고 일제의 만행에 짓밟힌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가락질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을 극복하는 일이었다고 윤 이사장은 회고했다.
위안부 피해는 1990년대 초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공개 증언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생존자 할머니들의 가족, 친지들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주기도 했다. 수요시위 현장에 나와 '뭐가 자랑스럽다고 데모를 하느냐. 그건 우리 민족의 수치다'라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같은 시선 때문에 매일같이 정대협 사무실 문 앞을 서성이다 돌아가기를 반복하다 며칠만에 용기를 내 증언한 할머니도 있었다고 윤 이사장은 회상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아픈 기억을 다른 사람 앞에 내놓는 것은 할머니들에게 참 힘겨운 일이었다. 윤 이사장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에 아무 말 없이 헛기침이나 눈물로만 답하는 할머니도 있었다고 한다.
윤 이사장은 "하지만 이제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부끄럽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없어졌다"며 "할머니들도 자신들의 한을 푸는 걸 넘어 베트남·우간다·코소보·이라크 등 전 세계의 또다른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한과 상처를 풀어주는 인권 운동가로 변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여전히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계산법은 이렇게 전 세계와 연대하며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국 이어 전세계에 '김복동 센터' 설립할 것…우간다 센터는 일본 방해 공작으로 착공 무산"
정의연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고 김복동 (1926∼2019) 할머니를 기리고 전 세계에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김복동 센터'를 미국에 세우겠다는 계획을 지난 28일 밝혔다.
윤 이사장은 "김복동 할머니는 생전에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해 미국 사회가 나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해왔다"며 "김복동 센터를 통해 미국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리고, 무력 분쟁지역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 한해 시민사회와 기업 등 각계의 후원을 받아 오는 11월 25일 세계여성폭력 추방의 날에 센터를 개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정의연이 첫 김복동 센터가 들어설 장소로 희망했던 곳은 원래는 우간다 글루 지역이었으나 일본의 방해로 착공이 무산됐다는 게 윤 이사장의 설명이다.
정의연은 당초 우간다 내전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고발하고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해 센터 건립을 추진키로 하고 부지까지 매입했다. 그러나 착공식을 앞둔 상황에서, 글루 시장이 생존자 대표에게 전화해 "왜 일본 문제를 우간다에 가져와 문제를 만드느냐"며 위협했다는 것이다.
윤 이사장은 "협박 배후에 일본 정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눈물을 머금고 김복동 센터 건립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센터 때문에 피해자들이 정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면 그건 김복동 정신에 어긋난다는 생각에서였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2012년부터 마련한 '나비기금'으로 우간다, 코소보, 콩고 지역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다. 착공이 무산된 우간다 김복동센터 부지도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녀들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경작지로 활용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방해에 굴하지 않고 미국에, 더 나아가 전 세계에 '김복동 센터'를 세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문희상안, 2015년 한일 합의보다도 후퇴…체계적인 위안부 피해자 진상조사 필요"
윤 이사장은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일간 강제징용 배상 판결 관련 갈등의 해법으로 발의한 '기억·화해·미래 재단 법안'(문희상안)에 대해 "과거사를 희생양으로 삼아 한일간의 불편한 관계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문희상안'에 대해 "가해자는 반성도 사죄도 배상도 하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국이 나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거부한 민간 위자료를 주고 청구권을 말소하려고 한 것은 2015년 한일 합의보다도 후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 의장은 자기가 내놓은 해법이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취지를 존중하는 안이라고 했지만, 이는 가해자가 직접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한참 어긋나 있다"며 "이는 두고두고 문 의장의 치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이사장은 "현재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은 오로지 시민단체의 몫"이라며 정부 차원의 입법과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일본은 매년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위안부 문제를 역사에서 지우려고 하는데, 우리 정부는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사나 자료 수집을 적극적·체계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 이사장은 "전 세계 각국에 흩어진 위안부 관련 증거자료를 대대적으로 발굴해내고 이를 정리하는 것이 먼저"라며 "이후 이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 각 나라 도서관과 연구기관에 보급·확산하는 한편, 다른 나라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 이야기가 실리게 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강의 도중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정의연으로부터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고발당한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이야기도 나왔다.
윤 이사장은 "류 교수가 강단에서 할머니들을 상대로 2차, 3차 가해를 일삼는 상황에서 고발은 피해자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구제 방법이었다"며 "역사의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일을 과연 '자유'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류 교수는 거기에 분명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김복동 할머니 같은 인권활동가 전 세계에서 만들어나갈 것"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정의연의 향후 계획에 대해 윤 이사장은 "보편적인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가지고 전 세계에 위안부 문제를 알려나가는 활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연은 지난해부터 '세계 전시성폭력 추방의 날 교사워크숍'을 개최하고 한국과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전 세계 교사·교육활동가를 초청해 일본군위안부 문제 교육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는 전 세계에 흩어진 동포 활동가들을 초청해 '세계 코리안 여성 네트워크'를 열고 각 나라의 상황을 공유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윤 이사장은 "30년 전 누구도 이 운동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수요시위가 28주년, 1천400차가 넘을 거라고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이제 전 세계의 시민사회가 위안부 문제에 공감하고 일본 정부에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복동 할머니가 우간다의 여성 인권 활동가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었듯이, 전 세계에 그와 같은 수많은 평화인권 활동가를 양성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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