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하눙 브라만티요 감독과 양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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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하눙 브라만티요 감독이 양칠성에 관련한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는 얘기를 몇몇 경로를 통해 전해 들었다.
한번은 자카르타 필름위크에 참석한 <파묘> 제작사
측 김영민 PD에게 들었고 바로 며칠 후엔 몇 년 전 귀국해 현재는 투자자문사에서 일하는 전 CGV 인도네시아 법인장에게서 들었다.
물론 양칠성의 생애를 영화화한다는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랫동안 논의되면서도 결국 영화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넘기 힘든 허들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측의 문제는 우쯔미 아야코 박사의 저서에서 양칠성이 일본군 동료들과 함께 기미가요를 부르고 천황폐하 만세를
마친 후 네덜란드군에게 처형당했다는 뜬금없는 이야기가 있어 그를 친일 매국노처럼 몰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나중에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도네시아 측의 문제는 제작비의 문제보다는 시나리오의 문제였다고 보인다. 역사적 고증이
필요한데 대체로 그 부분에 정통한 사람들은 그간 영화제작 논의에서 대체로 소외되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가
나오더라도 역사가들이나 한국 또는 인도네시아 양쪽으로부터, 또는 일본으로부터도 항의나 반론이 나올 여지가
있을 거란 리스크를 안고 제작비를 투입해야 한다는 게 껄끄러웠을 것 같다.
내가 처음 양칠성 영화와 얘기를 들은 것은 <발리에서의 영원한 휴일(Forever Holiday in Bali)> 을 찍은 소나무시네하우스 측으로부터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이었으니 대략 2018-2019년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양칠성을 포함한 다른 두 사람의 실존인물들을, 비록 그들이 살았던
연대와 장소는 각각 다르지만 영화적 상상력 속에서 한 개의 스토리 속에 담아낸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양칠성(왼쪽)과 가룻 영웅묘지에 있는 그의 묘비
그후 인도네시아 역사 동호회이자 저평가된 인도네시아 독립영웅들을 발굴하고 그 가족들 생계를 지원하는 일을 하는 야야산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Yayasan HIstorika Indonesia)가 2018-2022년
사이 가룻(Garut) 군의 한 도로를 '양칠성로'라고 이름 붙이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하던 과정에서 자기들끼리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도 나오기도 했고 이후
한국재단(Korea Foundation)에서도 양칠성 영화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고 들었다.
마지막으로 또 다시 양칠성 영화 이야기를 들은 것은 2023년 가룻 군청에서 독립기념일이
조금 지난 8월 25일(금) 자카르타 소재 JS 루완다 호텔 볼룸에 즈음해 가룻에 투자한 한국기업가들을
초청해 '가룻군 투자의 날(Malam Pesona Investasi
Garut)' 이란 제목의 성대한 행사를 열고 그 자리에서 가룻군 측이 직접 양칠성 영화를 제작하겠다며 관련 프레젠테이션과 함께 제작비
모금을 요청했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진의가 의심스러웠던 것은 전혀 의외의 일이기도 했거니와 그들이 만들어 보여준 영화제작발표 PPT가 너무 허접했기 때문이었다.
당일 아침 가룻군수가 영화사 사람들을 데리고 대사관에 가, 지금은 재외동포청장으로 영전한
이상덕 당시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를 접견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서 해당 영화 제작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이상덕 대사의 약속을 받았다는 군수의
발언, 해당 영화사의 프로필을 인터넷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사실 등에서 이게 다 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생각했던 대로 영화화 작업은 단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한 채 무산되고
말았다.
영화제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한 군수의 설명 역시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독립전쟁 이야기인데 전쟁 장면이 많이 들어가 제작비에 부담을 느꼈다니.
그런데 이번에 들은 하눙 브라만티요 감독의 양칠성 영화화 의향은 그 말을 전한 사람들의 중량감으로 인해 상당히 신빙성 있게 다가왔다. 내가 나름 양칠성 전문가에 속하니 나중에 하눙과 미팅을 주선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 자리에는 나보단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눙 브라만티요 감독은 2000년대 중반 처음 감독 데뷔하자마자 인도네시아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상들을 쓸어 담으며 일찌감치 인도네시아 영화계를 이끌 차세대 선두 감독이란 꼬리표를 단 인물이다.
2022년에는 <7번방의 선물>을
리메이크해 580만 명 넘는 현지 관객을 불러들이며 대박을 터트렸다.
그런 인물이 정말 진지하게 양칠성의 에피소드를 영화화하려 한다면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작년 말 가룻에 실제로 양칠성로가 생겼고 필자도 올해 뒤늦게나마 현장을 방문하며 7년 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그 일을 성사시킨 히스토리카 협회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인들에게 그런 민족적 감동을 불러 일으킨 사건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참에 인도네시아 성골 출신 감독이 양칠성의 영화를 만든다면 그 역시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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